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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영준 Jul 13. 2023

[BIFAN 23] X의 저주

제 27회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엑스라지 13


**이 글은 스포일러를 일부 포함하고 있습니다.


01.

이별이란 원래 그런 거야. 우린 서로 사랑하지 않아. 무더운 여름날 회전 기능이 고장 난 선풍기 한 대를 이유로 두 남녀가 이별을 앞두고 있다. 어떻게 그럴 수 있나 싶지만 지금 이 두 사람에게는 상대가 놓인 상황보다 자신의 컨디션이 훨씬 더 중요하다. 이별의 코 앞에 서서도 서로의 자존심은 내려지지 않는다. 자신이 사 준 것이니 바지까지 싹 다 벗어놓고 나가라는 지수(정수지 분)와 그걸 또 얄밉게 받아내며 한 치의 양보도 하지 않는 공학(권다함 분). 어쩌면 두 사람의 이별이 꼭 선풍기 때문은 아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상대에 대한 배려는 찾아보기 힘들다. 이 치사하고 더러운 상황 앞에서 약이 오를 대로 오른 지수는 공학을 향해 이렇게 말한다.


“너, 평생 안 설 거야.”


이처럼 영화 <X의 저주>는 이별 앞에서 이제 헤어지는 남자 친구를 향한 한 여자의 한 마디로부터 시작된다. 남자가 앞으로 성기능을 제대로 발휘하지 못하게 될 것이라는 이 무섭고 사악한 저주. 물론 이때까지만 해도 두 사람 모두 이 말이 어떤 결과를 가져오게 될 것인지에 대해 알지 못했을 것이다.


진짜 문제는 얼마 후 공학이 지수를 다시 찾아오면서부터 일어난다. 아니, 벌써 어떤 문제가 생겼기 때문에 두 사람은 예상치 못한 재회를 하게 된다. 지수의 말대로 공학의 홀로 서지 못하게 된 것이다. 약을 먹어봐도 병원을 가봐도 아무런 효과가 없다. 헤어지던 날까지는 제 기능을 충실히 잘해왔던, 나름대로 자신도 있었던 부분이기에 공학은 다른 이유를 생각할 수가 없다. 지수 역시 그 이유를 알 수 있을 리 없다. 그녀는 홧김에 순간적으로 자신이 할 수 있는 가장 나쁜 말을 했을 뿐이다.



02.

두 사람 사이에 놓여있는 공학의 신체적 문제는 중요한 요소가 아니다. 코미디의 장르적 속성을 차용하기 위해 이용하고 있는 장치일 뿐이다. 이는 두 사람이 연애를 하는 과정에서 겪었을 수많은 장애물과 문제의 대표성을 지닌 대상으로 보는 것이 더 타당하다. 어떤 문제가 생겼을 때 공학과 지수가 각각 어떤 모습을 보이고 있는지를 보기 위한 하나의 실험 장치에 가깝다는 뜻이다. 물론 이미 영화의 시작과 함께 등장하는 선풍기에 엮인 하나의 에피소드만 보더라도 두 사람의 성향은 충분히 알 수 있다. 다만 문제를 해결해야 하는 조금 더 긴 과정 속에서 서로의 모습을 바라보면서 어떤 이유로 이별이라는 결과를 맞이할 수밖에 없었는지를 헤아려 보기 위함이다.


이런 경우의 문제가 늘 그렇듯 어느 한쪽에 치우쳐 있지는 않다. 두 사람도 마찬가지다. 주변에 대한 배려는 상실하고 정해진 목적만을 향해 돌진하는 성향을 보이는 공학과 그 과정에서 다친 감정을 제대로 표현하기보다 부정적인 행동으로 먼저 표출하는 모습을 가진 지수의 모습. 타인의 개입 없이도 서로의 잘못을 깨닫게 되는 지점에서 두 사람은 자신들의 모습을 이제야 돌아보게 된다.


서로에 대한 미안한 마음과 자신의 잘못을 고백하지만 이미 매듭지어진 이별을 막을 수는 없다. X의 저주가 풀리고 공학이 자신감과 건강을 회복한 것이 유일한 다행이랄까. 단순한 구조의 형식과 가볍게 웃기 좋은 포맷을 하고 있지만, 지난날의 사랑과 자신의 방식을 한번 떠올리게 한다는 점에서 가볍지만은 않은 이야기가 이 작품 속에 녹아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김희수 / 한국 / 2023 / 19 min

World Premier / 15+

엑스라지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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