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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영준 Jul 14. 2023

[BIFAN 23] 내 안에

제 27회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엑스라지 12


**이 글은 스포일러를 일부 포함하고 있습니다.


01.

태아가 생기면 자라기 전에 유전자 검사를 미리 실시하는 미래 사회가 있다. 예외는 없다. 모든 임산부는 이 과정을 거쳐야 하고, 연구 결과에 따라 문제가 없다고 여겨지는 유전자를 가진 태아만 출산이 가능하다. 그렇지 못한 경우 사회 질서의 확립이라는 미명 하에 무조건적인 유산을 시행하도록 되어 있다. 마리 역시 7년 만에 생긴 아이의 상태를 검사받으러 왔다. 모든 지표가 정상이고 태아도 아주 건강하다는 기쁜 소식. 다만 문제가 하나 있다. D-4라는 유전자를 아이가 갖고 있다고 한다. 이 유전자의 경우 태어나 성인이 되면 강간범이나 연쇄 살인범이 된다. 연구에 따르면 한 치의 오차도 없는 100%의 확률이라고 한다. 사회의 규정에 따르면 역시, 강제적 낙태다.


영화 <내 안에>는 정해 놓은 규칙에 따라 아직 태어나지도 않은 아이의 성향을 유전자 검사를 통해 확인한 후 어떠한 예외도 없이 사전적 조치를 취하는 사회에 대한 이야기를 다루고 있는 작품이다. 이는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의 2002년 작인 <마이너리티 리포트>의 배경적 설정과도 일부 동일한 측면이 있다. 범죄가 일어나기 전 시스템의 예측을 통해 범죄자를 단죄하는 것과 아이가 태어나기도 전에 유전자 검사를 통해 존재 자체를 지우는 일 양쪽 모두에 존재하는 결과론적인 행위에 대한 맹목적인 믿음과 신념과 같은 것들. 영화는 이제 내일이면 건강한 태아를 만나지도 못하고 떠나보내야 하는 한 여성의 모습을 통해 이 지점에 놓여 있는 문제들을 상기시키고자 한다.



02.

이 상황을 받아들일 수 없지만 사회의 강제적 규정을 따를 수밖에 없는 마리는 하루 머물게 되는 병실에서 이브라는 또 다른 산모를 만나게 된다. 당장 내일이면 낙태를 당하게 되는 마리와 달리 한 달째 병실 생활을 하고 있다는 이브로 인해 영화는 자신이 구축한 설정에 의도적 균열을 일으킨다. 지금까지 영화가 관객들에게 주입했던 내용인 ‘나쁜 유전자를 가진 태아는 태어나기도 전에 낙태를 당한다.’는 내용에서 벗어난 다른 경우의 상황이 이브라는 산모에게 벌어지고 있음을 드러내면서다. 병원에 시스템에 의해 걸러져야 할 유전자로 인해 당장 낙태를 받아야 하는 상황에 놓여있지 않은 산모 역시 머물 수 있다는 뜻이다.


이브의 경우는 마리와 정확히 반대다. 출산을 하고 싶지 않지만 시스템에 의해 중절 수술이 금지된 경우다. 아이의 유전자가 장차 천재가 될 유전자를 갖고 있다고 판명되어 낙태가 금지되었고, 무사히 출산을 마칠 때까지 병원에서 나갈 수 없게 되었다. 그녀가 아이를 갖게 된 계기가 비윤리적이고 비인간적이며 폭력적이었음에도 불구하고. 한 사람은 아이를 사랑하는데 낳을 수가 없고, 또 한 사람은 아이를 증오하는데 낳아야만 하는 모순적인 상황이 사회의 시스템과 유전자 연구에 의해 발생하게 된 것이다.


영화는 마리와 이브 두 사람의 모습을 하나의 프레임 속에 함께 위치시키며 두 가지를 말한다. 하나는 시스템에 의해 사회가 운영되는 동안 그 과정에서 인간의 감정과 개인의 자유 및 권리가 모두 외면당하고 있다는 것. 그리고 또 하나는 그렇게 믿고 따르는 유전자에 의한 선별 과정을 거친 사회에서도 범죄가 일어나고 그로 인한 피해자가 발생했다는 사실이다. 그렇다면 이렇게 다시 물을 수 있겠다. 100%라고 확언했던 시스템에 대한 신뢰를 앞으로도 계속 가져갈 수 있을 것인가? 또한 성인의 인격과 사회성 및 도덕성과 같은 내재적 요소가 완성되는데 성장 환경이나 양육 방식과 같은 후천적인 인자들은 여전히 배제되고 무시당하는 것이 옳은가?



03.

“당신 아이는 착하게 자라고, 잠재적 천재인 내 아이는 나쁘게 자랄 수도 있어요. 양육 방식에 달려 있지만 시스템은 아무런 신경도 쓰지 않죠.”


후반부에서 의사 출신임이 밝혀지는 이브가 ‘편차(Deviation)’에 대해 말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같은 유전자라도 어떤 환경에서 어떤 방식으로 키워지느냐에 따라 충분히 달라질 수 있다는 것. 하지만 어떤 이유에서인지는 모르지만 영화 속 사회의 시스템이 그런 요소에 대해 이상하리만큼 아무런 신경을 쓰고 있지 않는다는 점을 꼬집으면서 말이다. 사회의 안전을 운운하는 세상이 정의에 대해서는 침묵하고 어설프게 완성된 규칙만 오랜 시간 묵묵히 따르는 것처럼 이 사회도 역시 그런 모습이다.


영화의 마지막, 두 사람은 서로가 안고 있는 아이러니한 상황을 전복시키기 위한 선택을 시도한다. 이 작품에서 가장 아쉬운 장면이 바로 여기라고 할 수 있는데, 이는 두 사람의 선택에 대한 문제라기보다는 이 거대한 담화를 펼쳐두고도 1차원적인 방식으로 문제를 해결하고자 하는 감독의 단순한 시도가 너무나 안타깝기 때문이다. 이 점만 제외하면 생명의 존엄성과 낙태에 대한 여성의 권리, 사회와 국가의 역할 등의 중요한 사회적 화두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는 좋은 작품이다.



니카 자코브레바 / 라트비아, 러시아 / 2023 / 14 min

World Premier / 12+

엑스라지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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