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영화제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조영준 Jul 15. 2023

[BIFAN 23] 우리의 내일

제 27회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엑스라지 9


**이 글은 스포일러를 일부 포함하고 있습니다.


01.

15년 전 실종된 동생 미래를 닮았다는 사람에 대한 제보를 받게 된 가족. 생김새와 모습이 똑같고 왼팔에 있는 큰 흉터도 있다고 한다. 이런 연락이 처음 있었던 것은 아니다. 긴 시간 동생에 대한 수많은 소식이 들려왔지만 한 번도 제대로 된 소식이 없었을 뿐이다. 우리(최서원 분)의 가족이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어려운 생활 속에서도 동생을 찾을 수 있다는 믿음을 잃지 않는 것뿐이었고, 이번에도 어김없이 그 소식을 확인하러 떠난다.


가족의 오랜 믿음과 희생은 보험 회사에서 걸려온 전화 한 통에 의해 금이 가기 시작한다. 미래 앞으로 가입이 되어 있는 사망 관련 보험이 다음 달 만료가 된다는 내용의 전화다. 문제는 지금 신고되어 있는 실종 상태로는 사망 보험금을 받을 수 없으며, 이와 관련한 사항의 변경은 보험이 만료되는 다음 달 전까지만 가능하다는 것이다. 보험사는 이미 수 차례 엄마 희정(양말복 분)에게 연락을 보내 이 내용을 안내한 상황이었고, 엄마는 이 사실을 가족에게 숨겨왔던 것이다. 이렇게 하염없이 유예되어 왔던 과거에 묶인 가족의 삶에 갑자기 제동이 걸리게 된다. 실종된 동생 미래의 상태를 실종에서 사망으로 바꾼다는 것은 그의 죽음을 인정한다는 뜻이고, 보험금을 받기 위해서는 그 과정이 반드시 필요하기 때문이다.


영화 <우리의 내일>은 실종된 딸에 대한 마음을 차마 저버릴 수 없는 엄마의 심리와 그를 이해하면서도 무거운 현실에 짓눌려 힘들어하는 다른 가족 우리와 민성(조승민 분)이 겪게 되는 갈등을 다루고 있는 작품이다. 동생의 실종이라는 과거의 문제로부터 이야기는 시작되지만, 극의 중심에 놓여 있는 것은 역시 사망 보험금이다. 감독은 이 가정에 동생의 사망 보험금이 아니면 하고 싶은 것을 모두 포기한 채로 기계처럼 일만 해야 하는 어려운 상황을 부여함으로써 인간성과 물질성 사이에서 갈등이 발화하도록 유도한다.



02.

극 중의 이 문제가 현실적인 문제처럼 관객들에게 다가오는 이유는 물질성을 선택하려는 우리와 민성 쪽에도 타당해 보이는 이유가 마련되어 있기 때문이다. 엄마가 딸을 지키지 못했던 그 순간부터 장장 15년에 가까운 세월을 두 사람을 그 곁을 떠나지 않고 책임을 다해 살아왔다. 막내딸 미래에 대한 죄책감과 회한으로 가정을 돌보지 않고 거리를 배회하며 전단을 붙이고 돌리는 동안 두 사람은 학교도 제대로 가지 못하고 일만 하며 가족의 삶을 대신 지탱해 왔던 것이다.


15년, 기약도 없이 조금만 참아달라던 엄마의 간절한 시간이 벌써 이만큼이나 흘렀다. 시간이 지날수록 늘어나는 것이라고는 가족의 대출금과 빚, 그리고 엄마가 가진 당신의 상실감에 대한 집착뿐이다. 23년 만에 잃어버린 아들을 찾았다는 이름 모를 사람의 이야기만 믿고 가능성도 희박한 일에 점점 더 가까워지고 있다며 헛된 희망을 키운다. 곁에 남은 딸과 아들이 제 삶을 포기하면서까지 가정을 지키려는 것을 보면서도 말이다. 최선을 다해왔던 그 이해가 엄마가 감춰뒀던 동생의 사망보험금 앞에서 모두 무너지고 만 것이다.


“우리는 가족 아니야? 엄마한테 나하고 오빠는 도대체 뭔데?”


영화는 엄마가 가지고 있을 우리와 민성에 대한 고마움과 아직도 찾지 못한 딸 미래에 대한 미안함 사이에 관객들을 밀어 넣는다. 아이러니하게도 두 감정은 서로 자리를 바꿔 위치했을 때 가장 이상적인 그림을 그려낼 수 있게 되지만, 인물들의 갈등을 쉽게 해소하도록 두지는 않는 것이다. 현재에 미안함이 커지게 되면 과거에 실종된 딸 미래를 포기해야 하고, 과거에 고마움이 커지게 되려면 다시 딸 미래가 건강하게 돌아와야 하지만 너무 오랜 시간이 지난 지금 그 가능성은 희박하기만 하다.



03.

가족 사이의 갈등 위에서 내내 중립적인 시선을 보이던 영화는 엄마의 결심으로 인해 다시 버스를 타고 돌아가는 순간 의미 심장한 장면을 하나 관객들에게 던진다. 쉽지 않았을 엄마 희정의 선택을 우리가 다시 번복시켜야 하는 상황을 맞이하는 설정을 제시하면서다.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그녀의 선택에 대한 정확한 근거를 마련하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지극히 낮은 확률에도 불구하고 막내딸의 죽음만큼은 인정하고 싶지 않아 했던 엄마의 마음과 동일하게, 우리에게는 우연의 일치일지도 모르지만 적극적인 확인은 필요한 상황을 만들어 준다. 맞을 수도 아닐 수도 있지만 그냥 모른 척하기에는 어딘가 찝찝한 구석이 남는 그런 장면.


영화 전반을 통해 가족의 선택과 갈등이 쌓이는 동안 여러 생각이 내내 머리를 떠나지 않는다. 어떤 선택이 더 나은 가치에 해당하는 걸까. 정말로 그 선택이 옳은 판단이라고 할 수 있는 걸까. 하지만 여기에 어떤 대답도 완벽한 정답이 될 수는 없다.



권한수 / 한국 / 2023 / 25 min

World Premier / 12+

엑스라지 9

매거진의 이전글 [BIFAN 23] 내 안에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