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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영준 Dec 08. 2023

[SIFF 2023] 기지국

2023 서울독립영화제 상영작 : 페스티벌 초이스 단편 6


**이 글은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전자파랑 내가 아픈 거랑 아무 상관없는 거 아냐?”


울창한 숲 속의 땅굴로부터 두 사람이 기어 나온다. 처음부터 계속 이렇게 살아온 것처럼 문명과는 거리가 있어 보이는 두 사람. 이든(연예지 분)과 현호(우요한 분)는 오누이다. 누나 이든은 동생 현호가 전자파로 인해 아프다고 믿고 있다. 동생은 도시의 아파트에서 살 때 시도 때도 없이 코피를 흘리며 항상 피곤해했고, 밤마다 이상한 소리가 들린다고 했었다. 지금 이 숲 속에서 주기적으로 거처를 옮겨 다니며 땅굴을 파고, 전자파 차폐 텐트를 설치하고, 자신들의 위치가 드러나지 않게 위장, 은폐하는 이유다. 이렇게 지낸 지 벌써 3년이 지났다.


정작 현호는 자신의 상태가 이런 생활 속에서도 별로 달라지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여전히 원인을 알 수 없는 코피를 흘리고 있고, 크게 달라지지 않는다면 굳이 이렇게 힘든 생활을 계속해야 하는지 의문이 든다. 이 생활이 비정상적이라고 생각하지 않는 누나의 뜻이 너무나 확고하기 때문에 함께 따르고 있을 뿐, 도시가 그리운 마음이 훨씬 더 크다. 어느 날, 이들이 머무는 마지막 숲에도 기지국을 설치하려는 사람들이 나타난다. 이 숲도 더 이상 전자파로부터 안전하지 않다는 이야기이며 도시의 사정으로부터 분리될 수 없다는 뜻이다.


영화 <기지국>은 기술의 발전과 편의성만을 추구하는 현시대에 대한 고발이자 경계와도 같은 작품이다. 디지털 디스토피아 속에 갇힌 한 남매의 이야기는 우리가 지금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있는 통신 장치와 그를 위한 전자파의 이면을 향하고 있다. 박세영, 연예지 감독은 이 작품의 시작이 20세기 중 많은 시간을 일반적인 관행으로 삼아 온 흡연이라고 말한다. 대중이 담배의 해악에 대해 무지하여 쉽고 빠르게 길들여져 가는 동안 그 너머에 존재했던 산업 및 이해 관계자들의 비도덕적이고 근시안적인 행동에 문제의식을 가진 것이다. 이제 그 자리는 휴대폰과 인터넷, 눈에 보이지 않지만 우리 주위를 언제나 맴돌고 있는 전자파가 대신하고 있다. 그리고 이 산업 너머에서 자신들의 이익만을 좇는 이들의 모습은 과거와 다르지 않다. 두 감독은 세기가 달라지는 동안에도 바뀌지 않는 시대의 흔적을 이 작품을 통해 이야기하고자 하는 것이다.


만류하는 누나를 뿌리치고 문명의 이기로 가득한 도시로 내려가는 현호의 탈선은 그동안 억누르고 있던 충동이 숲을 향해 밀고 들어오는 문명에 대한 반동으로 그려진다. 다만 그런 동생을 따라 함께 내려왔지만 이든이 도시를 바라보는 시각은 완전히 다르다. 그 목적 자체가 다시 숲으로 돌아가는 것에 있기 때문이다. 한 가지 아이러니한 점은 숲으로 다시 돌아가기 위해서는 이든이 도시의 도움을 얻고, 동생의 상태를 호전시키기 위해서는 문명의 기술을 구해야 한다는 점이다. 비자발적인 외부로부터의 유입이 아니라 적극적인 수용이라면 현호의 말처럼 두 사람이 그 힘든 생활을 계속 이어갈 이유가 무엇인지 알 수 없게 되어버린다. 그리고 여기에는 해악에 대해 분명히 알고 있고 일부 피하고 줄이고 싶으면서도 여전히 기댈 수밖에 없는 우리의 모습이 담겨 있는 것 같기도 하다.



페스티벌 초이스 단편 6


박세영 / 한국 / 2023 / 극영화 / 31 Mins

연예지, 우요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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