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조영준 Sep 24. 2015

#038. 스물

찬란했던 시절의 가장 아름다웠던 순간들

타이틀 : 스물
감독 : 이병헌
출연 : 김우빈, 준호, 강하늘, 정소민, 이유비
러닝타임 : 115분
등급 : 15세 관람가
개봉 날짜 : 2015.03.25. (국내)




01.

솔직하게 이야기하면 이 영화가 개봉한다고 했을 때  약간의 편견을 갖고 있었다. 어쩌면 작년에 개봉했던 <패션왕>의 절망감에서 아직 벗어나지 못했는지도 모르겠다. <패션왕>이 동명의 인기 웹툰을 모티브로  만들어진 작품이라고 알려져 있기는 했으나 실제로는 "주원"과 "설리" 등의 하이틴 스타들을 소비하기 위한 작품으로 밖에 보이지 않았기 때문에, 이 작품 역시 젊은 친구들을 데리고 또 얼굴 값으로 밀어붙이는 영화가 한 편 나왔다는 생각부터 들었던 것이 사실. 평소에 어떤 작품도 직접 관람하지 전까지 어떠한 선입견도 가지지 말라고  이야기했던 나였는데 반성했던 작품이 바로 이 작품 <스물>이었다.


02.

이 작품 <스물>은 이런 여러 가지 편견들에 일침을 가하는 영화라는 생각이 든다. 외적으로 가벼운 모습을 보이고 있다고 해서 그 내용이 그리 무의미하지만은 않을 수 있다는 사실을, 또한 청춘 스타들로만 구성된 캐스팅이라고 해서 극을 안정적으로 이끌어 나갈 수 없을 것이라는 통념적인 시선을 온전히 무너뜨리고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 상업 영화를 처음 연출하는 감독은 고리타분한 이야기들만 뱉을  수밖에 없다는 고정관념들마저도 무너뜨리는 모습마저도 이 영화를 통해 지켜볼 수 있다.


03.

메가폰을 잡은 "이병헌" 감독은 지난 2012년 <힘내세요, 병헌씨> 라는 페이크 다큐멘터리(Fake Documetary)로 데뷔한 신인 감독이다. 하지만 그는 감독이기 이전에 <과속 스캔들>(2008), <써니>(2011), <타짜 : 신의 손>(2014) 등의 시나리오 각색을 맡았던 재능 있는 각본가이기도 했다. 어쩌면 그의 그런 경험들이 이 영화 <스물>에 모두 녹아들어 굉장히 고리타분해 질 수도 있었던 소재들을 흥미롭게 풀어내도록 만들었는지도 모르겠다. 헐리우드로 따지면 <미션 임파서블 : 로그네이션>(2015)을 연출했던 "크리스토퍼 맥쿼리" 감독과 비교해 볼 수 있을 것 같은데, 각본가 출신으로 연출가로써의 안정적인 출발을 보이고 있는 점이 상당히 매력적이다.


04.

영화는 다소 가볍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시종일관 관객들에게 웃음을 던진다. 하지만 그 웃음들 속에는 잠깐이나마 깊은 폐부를 찌르고 들어오는 사회의 부조리함들이 녹아들어 있다. 이 영화의 장난스러운 모습들이 결코 가볍게만은 보이지 않는 이유다. 그리고 이 즐거움과 진지함의 간극을 넘나드는 감정들은 영화 전체의 분위기를 주도해가면서 "스무 살"이라는 단어가 갖고 있는 묘한 "경계인"의 모습을 잘 표현해 주고 있다. 사회적으로는 성인이 되었지만, 정신적으로는 아직 부족한 이들이 진짜 세상과 부딪히면서 어른이 되어 가는 모습을 적절히 잘 묘사해 내고 있다고 할까? (물론 그렇다고 영화의 엔딩에서 그들이 갑자기 어른이 되지는 않는다.)


05.

이 영화가 굉장히 유쾌할 수 있는 데는 출연 배우들의 능청스러운 연기가 큰 역할을 한다. 특히 "강하늘"과 "김우빈"은 전작들에서 의외로 굉장히 무게 있는 연기들에 집중해 왔기 때문에 이번 작품에서의 연기가 새롭게 다가온다. 솔직하게 이야기하면 평소에 연기를 잘 하는 것과 별개로 다양한 역을 소화할 수 있을까 싶었던 두 배우의 의외로 넓은 연기 스펙트럼을 확인할 수 있어 신선했다. 함께 등장하는 두 여배우 "정소민"과 "이유비" 역시 이들과 함께 잘 유화되면서 이 다섯 명이 이끌어 나가는 극의 전개가 결코 부담스럽지 않다.


06.

영화의 재미를 증폭시키는 또 다른 요소는 바로 스크린 밖에 존재한다. 영화는 모든 것을 관객들에게 직접 보여주지 않는다. 꼭 필요한 부분들만 시각적으로 제공하고, 보편적으로 충분히 상상이 가능한 부분들에 대해서는 관객들이 직접 떠올릴 수 있도록 스크린 밖에 위치시켜 놓는다. 행동의 결과가 스크린에 등장하기 전, 관객들은 이미 과거의 직, 간접적인 경험에 의해 예측을 하게 되고, 스크린 속에는 그 예측의 범주에 있지만 조금 더 과장된 결과물이 등장하며 관객들이 자연스럽게 과거를 돌이켜 볼 수 있는 여지를 제공하는 것이다. 감독의 영리한 연출이다.


07.

물론 그렇다고 영화 속 모든 부분들이 일반적인 스무 살들이 겪을 수 있는 현실적인 부분들과 맞닿아 있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 비현실적인 부분들까지도 현실에서 일어나기 불가능한 "공상"의 영역에 있는 것이 아니라, 어딘가에서 들어봤을 법한 영역들 속에 있기 때문에 우리가 함께 공감하고 웃으며 즐길 수 있는 것이다. 다만, 이 영화가 우리들의 스물을 성적인 코드로만 몰아가려는 모습에는 다소 아쉬움이 남는다. 물론 이 성적인 농담들이 관객들의 웃음을 유발하고 이 영화가 "병맛"이라는 코드를 끌고 가고 있다는 점을 직접적으로 보여주기 위한 장치이기는 하지만 우리의 스무 살이 너무 음란해져 버렸다.


08.

또한 "Air Supply"의 명곡인 "Without you"와 함께 등장하는 마지막 장면이 조금 아쉽게 느껴진다. 시작부터 끝까지 이 영화의 매력이었던 속도감을 왜 굳이 버리고자 했는지 잘 모르겠다. 펼쳐 놓은 이야깃거리들은 많은데 아직 닫지 못한 부분들이 많아서 그랬는지 엔딩에 가까운 이 장면에서 모든 캐릭터들의 에피소드를 일거에 해소하려는 듯한 초조함과 함께 전형적인 느낌을 받았다. 영화 전체의 분위기가 그리 무겁지 않았던 만큼 끝까지 동일한 분위기를 유지했었더라도 그리 나쁘지는 않았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09.

아쉬움이 없는 건 아니지만 영화 <스물>은 코미디 장르의 매력을 잘 살려내며 전체적으로 안정감 있는 모습을 보여주는 작품이다. 어떤 교훈적인 이야기들로 점철하여 우리들의 20대를 교훈하려고 들지 않은 것도 좋았고, 어떤 특정한 해결 없이 마무리 지어지는 에피소드들의 엉성함즐거웠다. 왜?어차피 우리들의 스물에 해답이라는 건 존재하지 않으니까 말이다. "이병헌" 감독이 다음엔 어떤 이야기를 들려줄 지 궁금해진다.




**이 글은 2013년부터 작성된 인스타그램 계정의 동일 연재 글을 바탕으로 재구성된 글입니다.


Copyright ⓒ 2015.

joyjun7 All rights Reserved

매거진의 이전글 #037. 코블러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