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넘버링 무비 26] 다큐멘터리 <류이치 사카모토 : 다이어리>
**이 글은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2026년 3월 31일 자로 작성되었습니다. (기사로도 송고되었으나 제목은 다를 수 있습니다.)
01.
다큐멘터리 작품의 문법적 측면에서 이 작품을 평가하자면 아쉬움이 짙게 남는다. 결과부터 이야기하자면 그렇다. 파편적이어서다. 한 사람의 일기, 매일이 독립적일 수밖에 없는 그 기록을 따라 선형적으로 늘어놓다 보니 어쩔 수 없다는 것 정도는 이해한다. 처음부터 온전히 기획되거나 준비되지 못한 채, 유족들이 제공한 자료라는 한계도 분명 있었을 것이다. 충분한 시간 속에서 짜임새 있는 구성을 마련할 여유가 있었다면, 흩어져 있는 기록 사이에서도 작품 스스로가 설 수 있는 길 하나 정도는 분명히 찾을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다. 시작과 함께 피아노가 어떻게 자연으로 돌아가는지 관찰하기 위해 뉴욕집 뒤뜰에 피아노 한 대를 놓아두던 류이치 사카모토의 모습을 생각하면 더욱 그렇다. 그 행위에는 단순한 관찰 이상의 의미가 있고, 이번 작품은 그 자리를 관통하며 선명히 드러내는 일에 실패한다.
처음부터 이런 이야기를 꺼낼 수 있는 까닭은, 그렇다고 해서 이 작품 <류이치 사카모토 : 다이어리>가 가진 의미가 퇴색되거나 변질되는 것은 조금도 아니어서다. 어떤 이야기는 이제 곁을 떠나고 존재하지 않는 이를 선명히 되돌려놓는 힘을 보여주기도 하지만, 한 사람의 존재성, 그가 남기고 간 생(生)의 흔적이 도리어 작품을 붙드는 경우도 있다. 2019년 봄으로부터 2023년의 다시 봄, 류이치 사카모토가 세상을 떠날 때까지의 기록. 이 경우가 그렇다. 이 시간은 오모리 켄쇼 감독에 의해 탄생한 플롯과 스토리가 아닌, 마지막까지 자신의 세상을 깊이 탐구하고 사랑하고자 했던 존재에 의해 선명히 그려진다. 어쩌면, 오늘 이 글 역시, 다큐멘터리 작품이 아닌 그에 대한 이야기가 될지 모르겠다.
02.
“나는 앞으로 몇 번이나 더 보름달을 볼 수 있을까?”
기본적으로 이 작품은 2020년 12월, 간에서 발견된 종양과 4기 암 선고를 시작으로 2021년 폐 전이와 합병증으로 공식 활동을 중단하게 되기까지, 그리고 2022년의 항암치료 시작 이후 타계에 이르기까지의 시간 전반을 담고 있다. 류이치 사카모토라는 인물이 살아낸 생의 마지막 3년 정도의 시간이 그려지는 셈이다. 그 과정에는 그의 외형적 변화와 함께 삶과 죽음을 바라보는 관점도 함께 놓인다. 얼마 남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현재의 이야기, 조금 더 정확히 말하면 무한한 시간 속에서 조금씩 사라지는 개인의 감각에 대한 지점이다.
사실 그는 이런 변화를 이미 한번 겪은 바 있다. 지난 2014년 갑작스럽게 인후암 3기 판정을 받으면서다. 자신이 겪게 될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던 암 투병을 하는 동안 음악과 세계를 바라보는 관점이 달라져 버린다. 얼마나 더 음악 활동을 지속할 수 있을지 장담할 수 없는 상황 속에서, 긴 시간은 아니지만 모든 활동 또한 잠정적으로 중단하게 된다. (1년 정도의 휴식기 이후 알레한드로 곤잘레스 이냐리투 감독의 요청으로 영화 <레버넌트 : 죽음에서 돌아온 자>로 활동을 재개한 이후 10년 정도 활동을 더 이어간 셈이다.) 당시 촬영 중이던 첫 번째 다큐멘터리 <류이치 사카모토 : 코다>(2018)의 방향이 반핵활동가이자 환경운동가로서의 모습을 담고자 했던 것에서 현재의 모습으로 선회하게 되는 이유도 여기에 있었다.
두 작품의 결말 이후 그에게 주어지는 삶의 형태는 분명 다르지만, 상황적으로 공유하게 되는 부분에 있어 유사한 지점들이 분명히 있다. (지난 작품 이후에는 조금의 시간이 더 주어졌고, 이번 작품의 끝에서는 그렇지 못했다.) 일종의 태도 같은 것이다. 그중에서도 가장 선명하게 드러나는 것은, 상실을 경험하는 와중에도 자신의 세계를 더욱 또렷하게 바라보려는 곧은 마음이다. 그는 무엇을 잃어가고 있는지를 인식하면서도, 동시에 무엇을 보고 듣고 느끼고 있는지를 놓치지 않고자 한다. 이렇게 지속되는 태도야말로, 변화를 감지한 이후의 시간 속에서 그가 어떤 방식으로 자신의 세계를 이어가고자 했는지 설명하는 하나의 단서가 된다.
03.
“무엇을 보든 마지막이라고 생각하면 슬프다. 내 인생이 끝났다.”
물론 마냥 긍정적일 수만은 없다. 상대적인 질량이 높은 음악은 체력이 부족하면 받아들이기 어렵다. 22년 2월부터 항암치료를 시작한 이후로는 부작용으로 손발 끝에 통증과 저림이 찾아오기도 한다. 피아니스트로서는 치명적이다. 무엇보다 자연의 섭리대로 죽는 것이 옳은 일인지, 항암제에 연명하며 그래도 살아가는 것이 맞는지에 대한 고민이 끊임없이 밀려온다. 장 뤽 고다르 감독이 몇 개월 앞서 안락사를 선택해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는 ‘그런 방식이 좋을지도 모르겠다’고까지 생각하게 된다. 삶에 대한 부정은 결코 아니다. 그도 그저 한 인간이었음을 생각하면 오히려 자연스럽다.
그렇게 ‘산다는 것이 번거로운 일’임을 깨닫는 과정에서도 류이치 사카모토는 자신의 세상을 쉽게 놓지 않는다. 2014년 이후 계속해 왔던 ‘소리의 가장 근원적이고 순수한 모습을 찾으려는 노력’을 마지막까지 놓지 않았고, 동일본 대지진을 기점으로 오랜 관계를 이어온 도호쿠 유스 오케스트라와의 정기 공연 무대에 오르기도 한다. 시기를 놓치면 위험할 수도 있는 항암 치료를 미루면서까지 자신의 연주를 녹음하기도 하고, 어떤 방법을 써도 1년을 넘기기 어려운 시점에서도 오케스트라 대작을 완성하는 일에 대한 열정을 잃지 않는다. 10여 년 전, 처음 암 투병을 시작했을 때와 조금도 다르지 않은 태도다. 당시 그런 그의 모습을 두고 나는 이렇게 썼다.
“작품 속 류이치 사카모토는 실망스러운 모습으로 이렇게 말한다. ‘건강이 나빠지고 난 뒤로는 아무리 최선을 다해도 하루에 8시간 이상을 일할 수 없게 되어버렸어요.’ 보통의 사람이라면 이미 두 손을 놓아버렸을지도 모를 상황에서도 그는 열정적이다. 마지막까지 자신의 죽음 뒤에 남을 것들에 대해 끊임없이 고민하는 모습도 보인다. 그의 그런 모습이야말로 진정 그의 삶을 지탱하고 있는 무언가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04.
“구름의 움직임 같은 음악을 만들 수 있으면 좋겠어요.”
이 문장은 작품 속에서 자연스럽게 흘러가는 대사 가운데 하나지만, 분명한 위치를 갖고 있다. 감각은 예전처럼 자유롭지 못하며, 연주가 점점 더 어려워지는 상황 속에서도 작업을 멈추지 않던 류이치 사카모토의 모습이 담겨있어서다. 오히려 그가 향하고자 하는 방향은 점점 더 분명해진다. 더 크고 화려한 음악이 아닌, 단순하면서도 이미 곁에 존재하는 소리. 그렇게 보자면, 이 말은 단순한 미학적 취향이 아니라, 자신이 놓인 조건을 받아들인 이후에 도달한 하나의 태도로도 읽힌다. 지금까지 고수해 왔던 삶과 음악적 구조나 태(態)를 강하게 붙잡으려 하기보다, 변화와 흐름 속에 자신을 맡기는 것. 그것은 더 이상 과거의 방식으로 연주할 수 없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동시에, 그 안에서 여전히 무엇인가를 만들어내려는 의지이기도 하다. 처음에 이야기했던 태도, 이 글을 통해 강조하고 싶었던 모습이다.
이 지점에서 드러나는 그의 욕망은 일반적으로 받아들여지는 의미의 ‘집착’이나 ‘미련’과는 분명히 구분된다. 잃어버린 것을 되찾으려는 욕심이 아닌, 지금 가능한 방식으로 계속 이어가려는 열정이다. 그는 자신의 한계를 정확히 인식하면서도 그 한계 안에서 멈추지 않는다. 오히려 그 제한된 조건 속에서 더 적절한 형태를 찾으려 한다. 사람은 자신의(생의) 유한성을 인식하는 순간, 쉽게 염세나 체념으로 기울고 만다. 그러나 류이치 사카모토는 그 방향으로 나아가지 않는다. 분명히 슬픔을 느끼고 상실을 자각하지만, 자신의 태도를 무너뜨리는 근거로는 삼지 않는 것이다. 그 감각을 끌어안은 채, 여전히 자신이 평생에 걸쳐 몰두하고 사랑했던 것 가까이에 머물고자 한다. 그곳이야말로 자신을 잃지 않을 수 있는 세상이라 여기는 듯이 말이다.
어떤 한 시기의 일시적인 변화가 아니다. 언제나 같은 모습으로 자신의 삶을 일구어온 그의 태도는 존엄성의 의미에 대해서도 다시 한번 생각하게 만든다. 류이치 사카모토에게 음악은 단순한 직업이나 성취의 수단이 아니었다. 그것은 세계를 감각하는 방식이자, 자신이 존재하고 있음을 확인하는 방법과도 같았을 것이다. 우리 삶의 존엄은 거창한 선택이나 극적인 결단, 명제처럼 내뱉는 문장으로부터 시작되는 것이 아니라 자신에게 주어진 삶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그 안에서 어떤 태도를 유지하며 살아가는가로부터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닐까? 하고 그의 모습을 통해 깨닫는다.
05.
결국, 다큐멘터리 <류이치 사카모토 : 다이어리>에서 우리가 마주하게 되는 것은 ‘끝을 향해 가는 사람’이 아니라, ‘끝까지 자신의 세계를 놓지 않으려는 한 인간의 모습’이다. 자신에게 주어진 시간이 점차 줄어들고 있음을 알면서도, 여전히 소리를 찾고 다음의 순간을 계획하는 그 모습은 고요하지만 단단하기에 결코 비극적이지 않다. 그런 그의 잔상이 채 사라지기 전에, 3년 전 먼저 개봉했던 <류이치 사카모토 : 오퍼스>(2023)를 다시 찾아봤다. 항암치료까지 미루며 녹음했다던 그 스무 곡의 연주와 모습이 담겨 있는 작품이다. 마치 한 권의 자서전을 소리로 남기고야 말겠다는 듯, 꼿꼿한 모습으로 100여 분에 가까운 연주를 모두 소화해낸다. (실제로는 약 열흘에 걸쳐 완성되었다고 알려져 있다.) 처음에는 감동적이기만 했던 연주가 이제는 모두, 하나의 증명처럼 느껴진다.
이 작품 속에서, 세상을 떠나기 전 병상에서의 마지막 그의 모습은 도호쿠 유스 오케스트라의 정기 공연을 핸드폰으로 지켜보는 장면이 된다. 산소호흡기를 착용하고 있는 류이치 사카모토는 그 너머로 울고 웃는다. 시간적으로나 공간적으로, 조금도 닿을 수 없는 자리에서 마주한 장면이지만, 처연히도 아름답던 그 모습을 아마도 평생 잊을 수 없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