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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영준 Nov 14. 2015

#50. 더 랍스터

45일 안에 당신의 짝을 찾지 못한다면..?

이 글 <넘버링 무비>는 단순히 한 작품을 리뷰(Review)하는 글이 아니라, 각자의 다른 시선을 공유함으로써 영화의 다양한 매력을 알리고자 하는데 그 목적이 있습니다. 때문에 영화를 관람하신 직후에 이 글이 가장 효과적으로 전달될 것이라 생각하며, 내용과 관련하여 다른 해석이나 생각을 갖고 계시다면 자유롭게 이야기 나누어 주셔도 무방합니다. 단, 무단 배포 및 상업적 이용은 불가합니다.




1. 지난 부산국제영화제에서 가장 보고 싶었던 영화였지만 수강신청 한 번 제대로 성공해 본 적이 없었던 내 손가락으로 가능할 리 없었던 <더 랍스터>. 감독인 "요르고스 란티모스"의 작품이 처음은 아니었다. 전작인 <송곳니>(2009)를 통해 아주 독특한 이야기와 분위기를 그려냈었기에 이번 작품 역시 궁금했다. <더 랍스터> 역시 특이한 소재로 이야기를 풀어나가고 있다. 결국에는 아주 평범한 사랑에 대한 이야기이지만.


2. 특이한 소재라고 소개하기는 했지만, '45일 안에 짝을 찾지 못하면 동물이 되어야 한다'는 소재를 단순히 '특이한 것'만으로 받아들이기에는 생각해 볼 여지들이 많다. 사랑의 대상을 찾지 못한 이들은 왜 하필 동물이 되어야만 하는 것일까? 먼저 '사랑'이라는 감정을 이성의 영역에서 본능의 영역으로 던져 놓는다는 해석이 가능하다. 이성을 가진 존재(인간)으로서 실패했었던 행위인 '사랑'을 다음 번에는 본능적 존재(동물)로서 해결해 보라는. 아주 잔인하고 무자비한 해석.


3. 다음은 지극히 '인간'의 시선으로 바라본 해석이 가능하다. 동물이라는 존재의 사랑이 인간의 것보다 조금 더 본능적이고 단순할 수 있다는 시각에서 말이다. 영화 속에서 정해진 기일동안 짝을 찾지 못해 동물이 되기 직전에 놓인 여성에게 마지막 소원으로 산책이나 섹스는 하지 말라는 주의를 주던 호텔 매니저의 이야기만 들어도 알 수가 있다. (인간의 시선에서 내리는 정의일 수 있으나) 결국 동물의 사랑이란 성적 욕구만을 갈구하는 것으로 비춰지고 있는 것이고, 이 때문에 영화 속 짝을 찾지 못한 사람들이 동물이 되는 설정이 구조화된 것 같다.


4. 이 영화의 소재가 양 쪽의 해석이 가능할 정도로 독특했다는 것 이상으로 마음에 들었던 것은 감독이 작품 속 대사를 통해 표현되고 있는 부분들을 결코 놓치고 있지 않다는 점이었다. 호텔에서 도망친 탈주자들의 모습 뒤로 실제로 낙타가 지나간다던가, 댄스장 속에 레즈비언 커플이 보인다던가 하는 부분들이 모두 그에 속한다. 낙타가 숲에서 산다는 이야긴 들어 본 적이 없으며, 실제로 이 호텔에 들어가기 전에는 자신의 연애 성향이 어떤지를 확실히 해야 한다.


5. 머리를 찧어 자의적으로 코피를 흘려가며 커플이 되고자 했던 절름발이 남자(벤 위쇼 역)도, 자신이 냉혈한인 척 연기하여 커플이 되었던 데이비드(콜린 파월 역)의 첫 사랑 행위도 결국 어쩌면 '랍스터'가 되지 않기 위한 일련의 생존방식이었으나 결과론적으로 모두 비극을 맞이하고 만다. 혹자는 절름발이 남자의 행위를 두고 다른 해석을 하곤 하지만, 결국 그 부부에게 딸이 생겼다는 것 자체가 그들의 사랑이 어떤 '의도'에 의해 이루어지고 있다는 것을 암시한다고 볼 수 있다.


6. 그리고 이 두 사람의 이런 모습은 우리 현실 속에서 진실한 사랑의 시작이 아닌 어떤 상황(솔로)을 청산하기 위해 이성을 찾아다니는, 혹은 자신을 버리고 상대에게 모든 것을 맞추려 드는 인물들을 표현해 내고 있는 것처럼도 보인다. 사실 "데이비드"라는 인물에 대한 해석은 이런 시각에서 두 가지로 나누어 볼 수 있는데, 단순히 짝을 찾고자 하는 목적으로 냉혈한 그녀(아게리키 파루리아 역)의 모습을 따라했다는 부분과, 이 영화의 엔딩 장면과 연결하여 원래 성향 자체가 사랑을 하면 자신을 버리는 인물일 수도 있다는 것이 되겠다.


7. 호텔 속 세계의 모습과 도망자들의 세계를 대조해 보는 것도 이 영화를 대하는 또 다른 지점이 될 수 있다. 두 세계는 분명히 그 성격을 달리하는 극단적 성질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지만 결국 스스로의 통제성을 극복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에서는 그리 다를 것이 없어 보인다. 극단적으로 사랑을 추구하려고 드는 세계와 반대로 극단적인 혼자를 지향하는 세계. 그리고 이질적인 이 두 세계의 모습을 역설적으로 이용하여 호텔에서는 찾지 못했던 사랑을 도망자 집단에서 찾게 된다는 설정은 제대로 맞물린 톱니바퀴처럼 서로 활용되어 흥미를 이끈다.


8. 사실 처음에 "데이비드"가 호텔로 향하는 장면에서는 외부 세계와 단절된 이 호텔만 비정상적인 공간으로 표현되고 있는 것으로 받아들였다. 하지만 이 영화는 호텔 뿐만이 아니라 이 영화 속 세계관 전체를 짝이 없는 이들로 하여금 발 붙일 곳이 없는 상황으로 몰고 간다. 그런 점에서 도시로 향한 도망자들이 짝을 행세하는 장면에서 기존 체제에 저항하는 일종의 레지스탕스들처럼 느껴질 지도 모른다. 하지만 결국에는 그들 방향만 다를 뿐, 역시 내부적인 모순을 갖고 있는 왜곡된 집단이라는 점을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9. 7-8번을 통해 지속적으로 두 세계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지만, 이 두 집단의 모습은 현실 속 많은 상황들에서 부딪히게 되는 이념적 갈등과 성향적 충돌의 현장들에 대해 일갈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내부적인 불안을 외부적인 요소(도망자들의 사냥과 체류 일수 추가)를 통해 해결하고 있는 호텔 세계와 추적자들로부터 발생되는 외부적 불안 요소들을 내부적 오락(일렉트로닉 달빛 댄스)을 통해 해소하고자 하는 도망자들의 세계 모두가 이상해 보이는 까닭이다. 그리고 결국 두 집단이 함께 몰락으로 향하는 지점이 같다는 점 역시 흥미롭다. 완전한 복종과 통제는 결코 존재할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 같아서 말이다.


10. 영화 속에서 냉혹하게 굴던 여자는 자신에게 거짓말을 했던 '데이비드'를 끌고 호텔 지배인을 향하면서 호텔 내에서 죄를 지을 경우 가장 기피하는 동물이 되게 될 것이라고 으름장을 놓는데 그것은 아마도 '토끼'가 아니었을까 싶다. 머리를 찧었던 절름발이 남자가 짝이 되기 전에 동물이 되어 포식자에게 잡아 먹히는 것과 머리를 찧는 것 중에 뭐가 더 좋지 않은 것이냐고 '데이비드'에게 묻자 그는 전자를 선택한다. 이 두 장면을 결합하여 호텔 투숙객(인간)들이 가장 기피하는 동물을 '토끼'로 설정하면 토끼 < 도망자 < 호텔 투숙객 < 토끼 (도망자들은 토끼를 사냥해서 선물하고, 호텔 투숙객들은 도망자들을 사냥하여 체류 일수를 줄이고, 죄를 지은 투숙객들은 다시 토끼가 되는)의 순서대로 일종의 순환구조가 형성되기 때문이다.


11. 영화가 끝났다. 처음에 "데이비드"는 사랑을 구하기 위해 감정이 없는 척 연기하려고 했지만 결국 실패하고 말았다. 마지막에는 스스로를 해하는 방법으로 사랑을 구하고자 하는데, 과연 그는 그 방법으로 자신의 사랑을 표현할 수 있었을까? 그는 어쩌면 호텔을 들어서는 순간부터 인간의 사랑은 할 줄 몰랐던 '랍스터'였을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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