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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영준 Nov 17. 2015

#51. 카모메 식당

함께하는 시간과 공간의 따뜻함에 대하여.

이 글 <넘버링 무비>는 단순히 한 작품을 리뷰(Review)하는 글이 아니라, 각자의 다른 시선을 공유함으로써 영화의 다양한 매력을 알리고자 하는데 그 목적이 있습니다. 때문에 영화를 관람하신 직후에 이 글이 가장 효과적으로 전달될 것이라 생각하며, 내용과 관련하여 다른 해석이나 생각을 갖고 계시다면 자유롭게 이야기 나누어 주셔도 무방합니다. 단, 무단 배포 및 상업적 이용은 불가합니다.




1. 몇 번 언급했었지만 2000년대 초/중반의 일본 영화들은 화려한 멋은 없을지 몰라도 사람의 마음을 움직일 줄 아는 매력들을 갖고 있었다. 작품에 따라 조금씩 다르기는 했지만 때로는 가슴 깊은 곳의 추억들을 들추어내기도 하고, 잔잔히 너울져 있던 사람다움의 이야기들을 보여주기도 했다. 영화 <카모메 식당>(2006) 역시 많은 이들의 사랑을 받았던 작품이다. 당시에 오픈했던 이탈리아 음식점들은 <시월애>(2000)의 'IL MARE"를, 일본 음식점들은 이 영화의 '카모메 식당'을 모두 한 번씩은 생각했었다고 할 정도로.


2. 많은 사람들이 이 작품을 두고 반듯하게 걸어가는 삶의 아름다움과 기다릴 줄 아는 미덕, 일종의 슬로우 라이프에 대해 이야기 한다. 그것도 맞는 말이다. 하지만 내가 처음 이 영화와 사랑에 빠졌던 것은 어떤 인물을 선택에 몰입하느냐에 따라 영화가 주는 느낌이 완전히 달라진다는 점에 있었다. 차분해 보이기만 하는 핀란드의 작은 가게 "카모메 식당" 속에서 얽혀가는 너무도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 그리고 주연인 듯 주연이 아니었던 가게 주인 "사치에"(코바야시 사토미 역)까지도.


3. 인연이라는 건 과연 무엇일까? 수 많은 이야기(글, 음악, 미술 모두를 통틀어)들을 통해 이 단어가 해석되고 있지만, 하나의 정의를 내리는 것이 쉽지만은 않다. 다만 이 영화 <카모메 식당>을 통해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이 작품을 연출한 "오기가미 나오코" 감독에게 있어 인연이라는 것이 어쩌면 '우연'과 '용기'가 결합된 것일지도 모른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시간' 위에 쌓여가는 것이라는 것도.


4. 감독은 이 영화에 등장하는 모든 인물들의 첫 시작을 '우연'으로 표현하고 있다. 영화 속 "사치에"와 가장 처음 만나게 되는 핀란드 청년 "토미"(자코 니에미 역)는 물론 영화의 마지막에 이르러 이 식당에 오롯이 함께 하게 되는 "마사코"(모타이 마사코 역)까지 모든 인물들의 인연이 그렇다. 사실 그 중에서도 "사치에"가 "미도리"를 처음 만나게 되는 '가챠맨'이라는 실 없는 노래 하나는 이 작품을 관통하는 가장 중요한 소재라는 생각이 든다. '우연'을 '인연'으로 만드는 '용기'의 수단이자, 어떻게 보면 우리의 '인연'이라는 것이 그리 대단한 시작이 아니라는 것의 표현이기 때문이다.


5. 이 영화를 처음 접하자마자 카모메 식당의 주인인 "사치에"의 모습을 보면서 나는 커다란 벽을 하나 만난 듯했다.(넘기 힘들다는 의미의 벽이 아니라 그만큼 단단하다는 느낌의 벽이다.) 누구에게나 구김없이 다가설 수 있는 그 모습에는 스스로에 대한 확신과 믿음 그리고 자신감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녀의 그런 모습을 볼 때마다 내가 왜 "좋은 사람"이라는 소리를 듣는 것을 그렇게 싫어했는지 알 것만 같았다.


6. 이는 어떻게든 가게에 금전적인 도움을 주고자 하는 "미도리"에게 항상 가게의 분위기를 언급하며 현재의 모습을 지키려고 했던 "사치에"의 모습과도 그리 달라보이지 않는다. 생경한 핀란드에서 오니기리(주먹밥)를 만들어 팔겠다고 다짐했을 그녀의 모습 역시도 같은 맥락이었을 것이다.(영화 속에서는 언급되고 있지 않지만.) 밤마다 무릎걸음을 하던 "사치에"도, 거르지 않고 수영장을 찾던 "사치에"의 모습도. 모두가 그녀의 삶을 지탱하는 근원들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한 가지 궁금한 점이 생긴다. 왜 그녀는 그 많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조건없이 받아들이면서 자신의 이야기에는 인색했던 걸까.


7. 이 영화에서 '사치에'가 자신의 이야기를 하는 장면은, 순간적으로 지어낸 것이 아니라 진실된 이야기를 하는 장면은 딱 두 번 나온다. 영화의 시작과 함께 나래이션으로 소개되는 살찐 고양이의 죽음과 엄마의 죽음에 대한 이야기. 그리고 중/후반부에서 왜 이 곳에서 하필 오니기리를 팔려는 생각을 했는지에 대한 그녀의 대답. "사치에"에 대한 이 두 가지 이야기를 어떻게 받아들이느냐는 개인의 몫이겠지만, 커피를 맛있게 끓이는 법을 가르쳐 주겠다는 손님의 갑작스런 제안마저도 자연스럽게 받아내는 그녀였기에 일부러 감추어 놓은 듯한 그녀의 진짜 이야기들이 더욱 궁금해진다. 결국 다른 이들을 받아들이기 위해서는 나의 자리를 내어줄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 아닐까.


8. 작품에서 표면적으로 보여지는 주인공이 "사치에"이기 때문에 우리들의 시선은 줄곧 그녀를 향하게 되지만, 영화 속에서 가장 입체적으로 그려지는 인물은 "미도리"이며 어쩌면 그녀가 이 영화의 숨겨진 진짜 주인공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타인을 받아들일 줄 아는 "사치에"의 모습을 통해 다름을 이해하고 언제나 같은 자리에서 변함없는 모습으로 존재하는 카모메 식당에서의 경험들을 통해 타인의 마음을 헤아릴 줄 알게되는 인물이기 때문이다.


9. 3번에서 이야기 했던 '우연', '용기', 그리고 '시간' 세 가지 중 아직 언급하지 못한 '시간'에 대한 이야기를 할 때가 되었다. 만약 이 영화가 나의 해석대로 '인연'이라는 것을 이 세 가지를 포함한 것으로 표현하고자 한 것이라면, 그 의미의 핵심은 "사치에"에게서 볼 수 있으나 정작 그 의미의 중요성은 카모메 식당에 모인 주변 인물들을 통해 표현되고 있다. 이 작품에서 역시 '시간'이라는 의미가 그리 특별하지는 않다. 우리가 알고 있듯이 서로의 관계 속에 조금씩 켜켜이 쌓여나가는 무형의 것들을 위한 순간들의 합. 카모메 식당을 통해 삶의 의미를 찾아 나가는 "미도리"와 "마사코"는 물론, 카모메 식당의 단골이 되어주는 엑스트라들까지도. 실제로 후반부를 향하면서 점차 가게를 채워나가는 손님들의 얼굴은 거의 바뀌지 않는다. 이런 사소한 부분들마저도 이 영화 <카모메 식당>이 보여주는 '시간' 속의 '인연'들의 모습이 아닐까.


10. <카모메 식당>은 겉으로만 보면 굉장히 조용하고 지루해 보일 법까지 하지만, 순간적인 장면들이 흥미로운 작품이다. 그 중에서도 계속해서 눈길을 끄는 부분이 하나 있다. 식당의 창 밖으로 처음 만나는 사람을 대하던 "사치에"와 "미도리"의 다른 행동. 의도된 부분이라는 생각이 들지만, 길거리에서  카모메 식당을 바라보는 모든 행인들은 표정이 하나같이 매섭다.(영화 속에서는 식당 안에서 그들을 바라보는 장면으로 표현된다.) 그리고 이들을 바라보는 "사치에"는 먼저 미소 지으며 인사를 건네고, "미도리"는 그들의 방문을 불안해하며 호들갑을 떤다. 결론부터 이야기하면 그 매섭던 행인들은 훗날 모두 이 가게의 단골 고객이 된다. 어쩌면 행인들의 무표정했던 모습들은 적대감이라는 "미도리"의 해석대로가 아니라, 새로운 경험에 대한 낯섦이 아니었을까? 핀란드라는 나라에 갑자기 생겨난 한 일본 식당. 어쩌면 낯섦과 편견이었을지도 모르는 그 순간들은 "사치에"는 미소와 포용으로 이겨냈다는 상징적 의미가 담겨있는 장면들이 될 수 있을 것 같다.


11. 어느 날 갑자기 "마사코"는 핀란드 사람들이 여유있어 보이는 이유를 궁금해 한다. 이에 옆 자리에 있던 "토미"는 핀란드에는 숲이 있기 때문이라고 대답하고, 그 길로 "마사코"는 숲으로 향한다. 우리는 자주 여유와 휴식이 필요하다고 이야기 한다. 정작 여유가 생기면 침대 위에서 뒹굴거리면서. 그런 의미에 있어 핀란드 사람들의 여유가 숲에서 시작된다는 이야기에 곧바로 숲으로 향하던 "마사코"의 행동은 큰 의미가 있다. 내가 누리지 못하는 여유로움 때문에 타인의 여유를 무조건적으로 부러워하는 것은 무의미하다. 여유를 누리는 것에도 '시간'이 필요하다. 나의 여유에는 어떤 것들이 적당한 지 부딪혀 보아야 한다. 물론 여유 뿐만이 아니라 우리들의 삶이 그렇다.


12. 올해 여름, 영화 <심야식당>(2015)이 개봉했을 때 이 작품이 같이 언급되었던 적이 있었다. 그런데 나는 이 작품 <카모메 식당>을 더욱 좋아한다. 정성이 담긴 한 끼의 따뜻함을 보여주는 <심야식당>과는 달리 <카모메 식당>에서는 누군가와 함께 주방에 서 있을 수 있는 인간미의 따뜻함을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13. "사치에"가 멍청해서 그런 행동을 따라 한 건 아니라고 생각한다. 나도 글을 쓰기 전에 이렇게 외치면 나의 글들이 조금 더 맛있어지게 될 지 궁금해진다. "코피 루왁!" 그런데 나의 이 어설픈 손가락은 어디에 세워두어야 하는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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