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주었던 상처에 대하여.
같은 길을 걷다 보면 소리에 민감해진다. 어제는 들리지 않던 소리가 들릴 때가 있다. 요즘 숲 속에서는 무언가를 들킨 것만 같은 바쁜 소리들이 난다. 이름 모를 새들이 푸드덕거리는 봄을 맞는 향연일 것이다. 새들에게도 봄은 짝짓기 철이다. 신선한 벌레들이 깨어나고 모든 것이 부드러워지는 영양가 높은 때를 놓치지 않고 새끼들을 길러야 하기 때문이다. 숲에는 이름 모를 새들이 있다. 이름 모를 새들이 나에게 말을 건다. 걸음을 멈추면 잠시 멈췄다가 이내 다시 말을 건다. 내 뒷모습이 보이지 않을 때까지 끊임없이 지저귄다. 생긋했던 봄은 풀숲을 이루며 한층 여름 빛깔을 낸다. 풀숲에는 이름 모를 꽃이 만발하다. 허리춤까지 자란 풀숲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들이 궁금할 때가 있다. 보아도 볼 수 없고 들어도 들을 수 없는 일들이 있다. 세상의 모든 소리를 다 해석할 수 없고 눈에 보이는 것이 전부가 아닐 때가 있다. 사실 너머에 내가 모르는 진실이 있고, 진실 너머에도 내가 닿지 못한 무엇인가가 있을 수도 있다.
어느 따스한 봄날, 숲 속을 걷고 있을 때였다. 갑자기 작은 새 한 마리가 내 앞으로 툭 떨어졌다. 검은 눈동자를 반짝거리며 나를 쳐다보기만 했다. 그 부드러운 깃털이 손탁에서 조잘거리듯 나를 간지럽힐 때, 재개미에서 날개가 돋는 듯 나는 몽롱했다. 새를 안고 집까지 어떻게 왔는지도 모르겠다. 한낮의 햇빛을 등지고 나에게 말을 걸 것만 같았다.
최대한 자연친화적인 환경을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했다. 햇볕이 가장 많이 드는 베란다에 새가 앉을 수 있도록 작은 나뭇가지를 주워 왔다. 쌀알이 크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었다. 컵 밑바닥으로 눌러서 쌀알을 으깨었지만, 너무 딱딱할 것만 같았다. 식빵 한 조각을 잘게 부숴서 가루처럼 만들었다. 잔디밭에 소금물을 조금 뿌리면 비집고 올라오는 지렁이 한 마리를 잡아 토막을 내어 새 앞에 놓아주었다. 내가 줄 수 있는 가장 예쁜 간장 종지에 물을 담아다가 놓았다. 작은 새가 좋아할 것이라는 생각만으로도 가슴이 심하게 쿵쾅거렸다. 그토록 섬세하고 자상하며 잔인하기까지 할 수 있었던 이유이다.
작은 것은 모두 아름답다는 화두가 떠올랐을지도 모른다. 하늘을 날 수 없는 것들의 날고 싶은 욕망 때문이었을지도 모른다. 땅만 보며 살고 있는 나를 스스로 천박하게 몰아갔는지도 모른다. 금세 후회할 짓을 한 것이다. 새를 숲 속으로 다시 돌려보내기로 마음먹었다. 새를 주웠던 숲이 점점 가까워지고 재재거리는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을 때, 나는 온통 세상이 무너질 것처럼 미안해졌고 내가 정말 몹쓸 짓을 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새가 한 번도 듣지 못한 소리로 버둥거리며 울기 시작했다. 갑자가 비슷하게 생긴 새들이 아슬아슬하게 나를 스치듯 날아다녔다. 손안에 있던 새가 어설펐지만 단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날갯짓으로 날아올랐다. 그렇게 새는 숲 속으로 떠났다. 아니, 원래 있어야 할 곳으로 돌아간 것이다.
생각해보면 금방 알 수 있었던 것을 그때는 몰랐다. 새가 심하게 떨고 있었다는 것을, 한 번도 울지 않았다는 것을, 한 번도 날갯짓을 하지 않았다는 것을, 새들도 너무 큰 충격을 받으면 말문이 막히고 새들도 오금이 저리다는 것을. 그리고 누구나 불시착할 수도 있다는 것을 생각한다. 누군가를 숨 막히게 할 수도 있다는 끔찍한 사실에 대해 고민한다. 나의 섬세함이 집요하다고 느껴져 말문을 닫게 만들었는지도 모른다. 나의 친절이 위선처럼 느껴졌을 것이다. 나의 무지한 배려에 치를 떨었을 수도 있다. 가련한 나의 무지와 욕심이여. 나의 무지는 욕심을 잉태했고 씻을 수 없는 상처를 남겼나니, 부디 내가 주었던 상처에 머물러 있지 않기를 참회하며 살리라. 그대여, 부디 내가 주었던 상처에 대하여 용서를 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