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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OY Mar 22. 2019

발칙한 상상

엘리베이터, 답답한 현실과 중국 도문에서의 짧은 기억을 연결하는 

 문이 닫히려는 순간 얼핏 그녀의 모습을 본 것 같았다. 나도 모르게 고삐를 움켜쥐듯 버튼을 눌렀다. 가벼운 눈웃음으로 고맙다는 말을 대신했으리라. 구두 한 짝을 잃어버린 소녀처럼 연신 시계를 들여다보고 있었다. 발갛게 달아오른 뺨이 더 붉게 느껴졌다. 다시 문이 열리면 생쥐들이 끄는 호박 마차처럼 사라질 순간에 대한 미련에도 나는 심하게 흔들리고 있었고 엘리베이터는 아랑곳없이 자신만의 레일을 순항하고 있었다. 문이 열리자마자 그녀는 그녀만의 무대로 총총히 사라져 버렸다. 그녀의 구두 소리가 또각또각 자정을 알리는 시계 소리처럼 서서히 사그라지고 있었다. 


 엘리베이터에는 전면 거울이 있다.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에 반해 손을 뻗게 되는 나르시스의 세계에서는 빠르게 피아를 구분하고 나면 자신만의 영역표시를 시작한다. 머리카락을 손으로 빗어 넘기기도 하고, 으레 옷 먼지를 털어보기도 한다. 아무도 없을 때는 감추고 있던 이빨을 과감하게 드러내 보이기도 한다. 별 볼 일 없는 천정에 소름 끼치는 감시가 매달려 있고, 바닥은 넘을 수 없는 경계의 구분이 분명하다. 그리고 거울로 이루어진 삼면의 바다. 한 번도 그 너머를 탐해본 적이 없다. 문이 열리고 닫힐 때마다 안과 밖을 구분하는 팽팽한 대치가 있다. 그 공간이 위태하다는 것을 아무도 모르는 것 같다. 똑같은 머리 모양, 똑같은 옷을 입고, 매일 보던 그림책처럼 질리지도 않고 소리를 내지 않는 화면을 응시한다. 문이 열리고 닫힐 때마다 지문을 찍고 알리바이 하나가 만들어진다. 그마저도 데칼코마니처럼 몽롱하지 않았다면 숨이 막혔을지도 모른다. 매일 똑같은 무늬를 찍어내고 있는데도 우연한 얼룩들이 묻어난다. 그 어긋남의 효과는 밀착에서 비롯되었을 것이다. 


 12월 31일, 한 해의 마지막 날 자정이 가까운 시간이었다. 한 해를 보내고, 또 한 해를 맞이하는 거룩한 예식에 숙연해져야 할 시간이다. 엘리베이터에 올라탔다. 엘리베이터는 누군가에게는 출발역이고, 누군가에게는 종착역이 된다. 시간이 미끄러져 들어오고 미련을 새길 겨를도 없이 떠나가는 플랫폼, 시간을 실어 나른다. 문이 닫히면 숨이 멎는 것 같다. 무엇이라도 훌훌 털어버려야 할 것처럼 답답하다. 다시 문이 열리면 멈춰버렸던 시간의 폭주가 시작될 것이다. 문득 밀폐된 공간이 꿈을 꾸게 하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나는 지금 국경을 향해 줄을 서 있다. 저 문이 열리면 나는 신발을 벗어 들고 한 발 한 발 앞으로 나아갈 것이다. 맨발로 금단을 깨트리는 순간 모든 촉수가, 모든 핏줄이 곤두섰다. 이순의 세월을 지그시 질러두었던 빗장을 여는 소리를 흐트러짐 없이 듣는다. 한 마리 사슴이 되어 이름도 없이 피고 지었을 풀잎을 씹고 나무껍질을 깨물어보리라. 기적 소리를 울리며 압록강을 건너고, 중국을 넘어서 러시아로, 유럽으로 달리는 열차에서 몇 날이고 눈을 붙이지 않고 초췌해지고 싶다. 어쩌다 멈추는 이름도 모를 간이역마다, 땅을 밟고서 아련하고 비릿한 냄새를 맡고 싶다. 무엇이 이토록 나를 간절하게 했던 것일까. 


 북한과 중국의 국경이 있는 도문에서 나는 차마 빨간 선을 넘을 수 없었다. 그 선을 넘으면 다시는 돌아올 수 없을 것처럼 망설이는 모습이 치사하게 느껴졌지만 넘고 싶지 않았다. 아니 차라리 미지의 상태로 지켜주고 싶었다는 표현이 더 맞을 것 같다. 어쩌면 영영 밟아보지도 못할 땅을 두고 지고지순의 맹세를 하고 있었다. 꼭 너와 내가 대치하고 있는 그 문으로 들어가겠다는 순결한 서약이었다. 두만강 건너편에 털모자를 쓰고 있는 인민군 병사의 모습이 앳되게 보였다. 두만강 주변에서 놀지 못한다는 문구를 보고 물수제비 뜨는 허세라도 부려보고 싶었다. 그것이 변경을 어지럽히는 일이라면 더욱 그러고 싶었다. 조선 쪽에 대고 말을 걸 수 없다니 더욱 손나발을 대고 불러보고 싶었다. 


 “아즈바이, 아즈바이.”  


 갑자기 덜컹거리는 소리가 나고 매캐한 먼지의 미동이 느껴졌다. 전등이 위태하게 깜빡거리고 있었다. 엘리베이터, 그 좁은 세상에 나는 갇히고 말았다. 비상버튼을 눌러보았지만 아무런 대답이 없다. 어느 정도의 높이에서 멈춰있는 것일까. 꼼짝없이 와이어에 매달린 중력의 무게를 견뎌야 한다고 생각했다. 순간 털썩 주저앉고 말았다. 


 “엘리베이터 안에 갇혔어요.”


 그 목소리가 쓸쓸하게 와 닿았던 이유는 무엇일까. 다시 문이 열린다면 남과 북으로 붙였다 떼어놓은 얼룩들을 더는 무채색의 표정으로 맞대게 하고 싶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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