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스카나의 노을.
살아있는 들소는 죽은 들소의 뼈를 떠나지 않는다
나는 누구이며, 무엇을 가지고 있고, 무엇을 위해 살아야 하는가.
와스카나의 노을은 시뻘건 불덩이를 삼키는 것처럼 목이 메도록 아름다웠다. 낮과 밤이 만나는 색깔, 그 간결하고도 뜨거웠던 풍경을 잊을 수 없을 것 같다. 가로등 불빛 아래 넘실거리는 호수 길을 걷는 내내, 르네상스 양식의 주 의회 의사당 건물에 걸리던 노을은 나는 누구이며, 무엇을 가지고 있고, 무엇을 위해 살아야 하는지를 묻는다. 나는 무엇 때문에 이곳에 있는지를 묻고 있었다.
살아있는 들소는 죽은 들소의 뼈를 떠나지 않는다.
리자이나에서의 생활은 와스카나 호수를 중심으로 돌아간다. 북미 최대의 도심 공원이다. 밴쿠버 스탠리파크의 2배, 뉴욕 센트럴파크의 약 3배의 크기이다. Regina Wascana Park. 자연과 역사 그리고 문화가 공존하는 곳, 캐나다 프레리의 중심지이다. 의자에 앉아서 해가 지는 풍경에 하염없이 빠져있거나, 산책하고, 자전거나 스케이트를 타면서 방문객과 거주자가 같은 공간을 공유한다. 와스카나의 이름은 Wascana Creek 주변에 흩어져있던 들소 뼈 더미에서 유래한다. 리자이나의 대초원에는 버팔로(buffalo)라고 불리는 들소가 서식했다. 들소를 사냥하고 살던 원주민들은 죽은 들소의 뼈를 산처럼 쌓아놓았다. 살아있는 들소는 죽은 들소의 뼈를 떠나지 않을 것이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리자이나에는 먼 곳이 없다.
“그들은 그곳이 얼마나 먼 곳인지, 얼마나 다른 곳인지 제대로 듣지 못했다. 캐나다 정부는 그들이 원한다면 누구라도 고향으로 돌아갈 수 있다는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
2010년, 원주민 장관 존 던칸을 통해서 발표한 캐나다 정부의 공식적인 사과 내용이다. 캐나다 정부는 원주민의 독자성 인정과 영구적 재정 지원이라는 미명 하에 원주민들을 극지방으로 강제 이주시켰다. 리자이나는 1700년대, 캐나다 원주민들을 대규모로 강제 이주시켰던 땅이다. 캐나다 유일의 원주민 대학인 First Nations University of Canada 등 아프지만 기억해야 할 역사가 곳곳에 남아있다.
리자이나에는 먼 곳이 없다는 말이 있다. 서스캐처원(Saskatchewan)의 주도로써 인구 20만 명의 작은 도시이다. 리자이나의 평균 겨울 기온은 영하 40도이다. 극강의 추위를 견뎌야 한다. 빠르면 9월에 첫눈이 오고 5월에도 눈이 내린다. 기록된 최저기온은 영하 59도이다. 리자이나에서 눈은 가로로 내린다. 바람을 막을 산도 언덕도 없다.
“2년만 살다가 다른 곳으로 옮기려고 했는데 떠날 시기를 놓쳤어요.”
겨울에도 햇볕은 따뜻하다는 그녀의 말이 공허하게 들렸다. 이민자에게는 처음 정착한 곳이 어디이고, 처음 누구를 만났는가는 중요하다. 마치 짐승이 태어나서 처음 눈을 떴을 때 본 것이 자신을 낳은 엄마가 되고, 태어난 그곳이 몸이 기억하는 장소가 되는 것과 같은 원리일 것이다. 이민자에게는 고국을 떠나 처음 정착한 곳이 고향과도 같다. 그래서 랜딩이라는 말을 썼는지도 모른다.
“그래도 살만해요.”
어쩌다가 여기로 이민을 왔을까? 왜 이곳으로 왔을까?
캐나다의 이민 프로그램은 주별로 개발되고, 다른 주에서 벤치마킹하기도 한다. 노바스코샤주에서 진행했던 이민 프로그램을 조금 수정해서 브리티시 콜롬비아 주 외곽 지역에서 진행하기도 한다. 캐나다 이민 상품은 TV 홈쇼핑에서 팔리기도 했다. 투자이민자에게 농담 반, 진담 반의 말이 있다. 주 정부 이민 답사 프로그램에 대한 내용이다. 답사 시기는 가장 아름다운 때를 선택한다. 가장 좋은 곳을 보여준다. 다른 곳은 보여주지 않는다. 어쩌면 대다수의 이민자도 그곳이 얼마나 먼 곳인지, 얼마나 다른 곳인지 실감하지 못했을 것이다. 살다 보니 그래도 살아지는 것인지도 모른다. 누구라도, 언제든지 돌아갈 수 있는 고향이기는 한 것일까.
멀리서 밀밭을 태우는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다.
밴쿠버에서 위니펙까지 비행기로 2시간 30분을 이동했다. 밴쿠버의 오후 기온은 이상 기온이었지만 29도였다. 비행기 출발이 지연되는 바람에 새벽 1시가 되어서 위니펙에 도착했다. 눈발이 약하게 날리고 있었다. 영하 2도다. 그리고 위니펙에서 리자이나까지 6시간 30분을 자동차로 끝없이 펼쳐진 밀밭을 가로질렀다. 흙먼지를 일으키며 달리던 트레일러를 따라서 1번 하이웨이를 벗어나 비포장도로를 달려보기도 했다. 굵은 자갈길이었기 때문에 자칫하면 밭에 빠져 오도 가도 못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멀리서 밀밭을 태우는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다. 끝없는 지평선을 바라보며 오줌발을 날리던 다 큰 사내의 뒷모습이 한없이 쓸쓸하게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