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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OY Apr 10. 2019

작은 기도

나에게도 아버지의 사진 한 장이 생겼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일요일 오후의 드라이브’, 나이아가라 폭포를 가는 길에, 세상에서 가장 작은 교회가 있다. The Living Water Wayside Chapel, 하얀 종탑 사이로 석양이 걸리고 예배당 가는 길은 온통 단풍으로 흐드러졌다. 농부들이 농번기에 잠깐이라도 들려서 마음에 위안을 얻었던 곳. 성경책 대신 호미를 들고 와서 문을 열고는 눈을 감고 두 손을 모았을 것이다. 흙과 땀과 햇볕에 그을린 얼굴로 드렸을 기도들이 떠도는 것만 같았다. 아무도 없는 교회에서 작은 의자에 앉아 창문에 물든 수요일 오후의 석양에 젖었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풍경이었다.  


 밴쿠버에 사는 동안 참 많이 이사를 했다. 거의 1년에 한 번꼴로 이사를 한 것 같다. 집주인이 집을 팔기도 했고, 결혼하는 아들 부부의 신혼집으로 꾸민다고 나가달라고도 했다. 층간소음 때문에 터무니없는 불평을 하던 아래층 사람들의 이기적인 배려를 견디지 못하기도 했다. 어떤 곳은 감옥처럼 답답하게 느껴져서 이사했다. 거의 생활비에 절반이 드는 집 렌트비가 비싸기도 했지만 그렇다고 무턱대고 집을 살 수는 없었다. 돈이 없는 사람에게는 다운페이(Down Pay) 싼데 집 안사고 뭐하냐는 말처럼 공허한 말도 없을 것이다. 


 “Oh, my God.” 


 정말 시도 때도 없이 들을 수 있는 말이다. 영어 표현에 보면 ‘Oh, my...’라는 표현이 많다. 나는 그 흔한 ‘오마이’도 한 번 하지 않고 살았다. 그런 나에게 처음, 선물처럼 내 이름으로 된 집이 생겼다. 고마운 사연들이 묻어있는 나의 집이 생겼다. 


 우리는 1970년대에 경기도 안양에 땅을 사서 터전을 옮겼다. 지금은 대단위 아파트 단지들로 바뀌었지만, 그때는 집보다 논이 많았던 시절이었다. 빨간 벽돌로 2층 양옥집을 짓고 파란색 대문 기둥에 아버지의 이름이 적힌 문패를 걸었다. 집 없는 설움을 털어내듯 꽝꽝 못을 박았었다. 채 몇 년도 살아보지 못하고 집을 처분하고 여섯 식구가 방 한 칸으로 이사를 했다. 파란 용달차에 박달나무로 만든 문패도 함께 실렸다. 아버지는 한 번씩 그 문패를 꺼내 니스칠을 새로 하듯 쓱쓱 문지르곤 하셨다. 아마도 집에 불이 났던 그 날 같이 타버렸을 것이다. 그 흔한 옛날 사진 하나도 남아 있지 않다. 짝다리를 짚고 서서 누군가를 응시하고 있던 눈만 반짝이던 사내아이의 흑백사진도 남아있지 않다. 돌아가신 아버지의 얼굴이 가물거릴 때 꺼내서 얼굴선을 더듬을 수 있는 사진 한 장도 없이 살았다. 아버지의 유골을 뿌린 홍천 요양원을 가는 길에도 지금쯤 봄꽃이 한창일 텐데. 캐나다로 오면서 쓰던 짐들을 어머니 집에 보관했다. 오랜만에 엄마 집을 찾은 누나가 봄맞이 대청소를 했나 보다. 오래된 우리 짐들을 살피다가 아버지의 영정사진으로 썼던 사진을 발견했다고 전화를 하면서 울음을 터트린다.


 “아빠 사진 생겼어.”


 아버지의 사진이 없어서 주민등록증 사진을 영정사진으로 썼다. 까맣게 존재조차 잊고 살았던 사진 한 장을 누나가 카카오톡으로 보내주었다. 사진 속 아버지의 모습은 30대 후반이다. 옛날 주민등록증 직인이 그대로 남아있는 사진 한 장. 나에게도 아버지 사진이 생겼다. 내 마음대로 벽에 못을 박고 아버지의 사진을 걸어야겠다.


 세상에서 가장 작은 텃밭을 만든다. 세계에서 두 번째로 큰 나라, 캐나다에 내 마음대로 잔디를 파내도 괜찮을 내 땅이 생겼다. 잔디를 들어내고 1평 정도의 밭을 만든다. 지난겨울에 화분에 심었던 빨간 튤립을 텃밭으로 옮겼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나의 튤립이다. 아내는 꽃이 지고나면 튤립 뿌리는 다시 화분으로 옮기고, 텃밭에 줄 맞추어 상추도 심고, 깻잎도 심고, 고추도 심겠다는 생각에 들떴다. 벌써 밭이 너무 작다고 불평이다. 아내에게 작은 텃밭이란 작아도 좋다는 말이지, 작아야 한다는 말은 아니란다. 잔디를 더 파내라는 말인지 진심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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