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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OY Apr 18. 2019

민들레가 사는 법

낯선 땅에서도 꿋꿋하게 민들레의 영토를 만들어 갈 것.

 민들레꽃이 문드러지게 피었다. 길가에 핀 민들레의 봄이 아슬아슬하다. 경계를 구분하겠다는 것인지, 경계를 넘나들겠다는 것인지 묘한 긴장이 있다. 상처 입은 낭만, 툭 뱉어 놓고도 가슴 한쪽이 아려온다. 공원을 관리하는 사람들이 있다. 쥬라기공원에서 봤던 그럴듯한 유니폼을 입고 잔디를 깎는다. 잔디를 깎을 때 베어 나가버린 꽃대도, 잎도 흰 눈물을 쏟아내고는 이내 다시 싹을 틔우고 다시 꽃을 피울 것이다. 누가 가르쳐주었을까. 잔디밭에서는 땅에 납작 몸을 붙이고 살아야 한다는 것을.


 민들레는 잔디보다 더 크게 자라지 않는다. 줄기가 없고 잎은 밑동에서 뭉쳐서 나온다. 안질방이, 이름마저 애처롭지만 당돌하다. 굵고 잔가지가 별로 없는 뿌리인데도 쉽게 뽑을 수 없다. 짓밟아도 다시 일어서고 뜯겨도 다시 꽃을 피운다. 

초록은 가장 자연스러운 색이다. 노랑은 병아리처럼 명랑하고 생동감이 있다. 이런 중성적인 느낌이 누구와도 어울릴 것 같다. 꽃을 돋보이게 한다. 벌과 나비를 끌어들이기 위한 특단의 조치일지도 모른다. 

씨앗은 솜털처럼 부드럽다. 햇살은 따스하고 바람이 부는 날, 한없이 가벼워진 몸으로 낙하산처럼 바람을 타고 날아간다. 아스팔트 갈라진 틈새로 홀로 떨어지거나 바람이 머무는 곳에서 군락을 이룬다. 낯선 곳에서도 꿋꿋하다. 


 초등학교 교문 앞에 우리 가게가 있었다. 배달 음식을 들고 운동장을 가로질러 가는 빠른 길을 놔두고, 길을 따라 빙 돌아서 갔다. 교무실 문을 열고 들어서는 순간 발에 무엇인가가 툭 걸렸다. 나는 넘어졌고 음식은 바닥으로 쏟아졌다. 아마도 당직 선생님이셨을 것이다. 


 “너, 괜찮니?”


 그 한마디에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났다. 나를 일으켜 세우시더니 음식값을 손에 들려주셨다. 그릇은 나중에 찾아가라고 말씀하시면서 나를 떠밀었다. 울면서 돌아서는 순간에도 바닥에 어지럽게 널브러진 양파며 단무지까지 원망스러웠다. 나는 모른다. 그날 선생님의 저녁은 무엇으로 대체되었는지, 바닥에 엎어졌던 그릇은 누가 말끔하게 씻어서 복도에 내놓았는지, 선생님의 이름은 무엇이었는지. 


 새어머니 밑에서 자란 어머니의 처세였을 것이다. 어머니는 늘 남에게 폐를 끼치지 말라고 말씀하셨다. 사는 동안 눈치 없이 살지는 않았던 것 같다. 불편한 자리는 적당히 피할 줄도 알게 되었다. 피할 수 없는 불편이 있다. 나도 모르게 사람들의 표정을 읽게 된다. 눈치가 빠르다는 것은 그만큼 깊은 상처를 입고 살았다는 것일지도 모른다. 

짧게 한국을 방문하거나 타지에 갈 때면 집도 없고 차도 없는 불편함보다 곁에 없는 사람들의 자리가 그립다. 불면의 밤을 보낸다. 잠이 오면 자고 잠이 오지 않으면 굳이 자려고 하지 않는다. 화장실 문제가 심각하다. 나의 뱃속은 늘 부글거리지만, 밖으로 끄집어내지를 못한다. 낯선 곳에서도 배설할 수 있다는 것의 위대함. 집에 돌아오면 화장실로 바로 직행한다. 눈치를 보지 않고 살아도 되는 사람들에게 돌아왔다는 표시이다. 

눈치를 보지 않아도 되는 사람들이 있다. 민들레 같은 사람이 있다. 잔디보다 크지 말 것, 꽃을 돋보이게 할 것, 바람을 따라 불시착할 것, 감사하는 마음으로 살 것. 낯선 곳에서 낯선 사람들과 만날 때 나에게 필요한 것이다. 그러나 당당할 것, 바람을 따라 불시착한 낯선 땅에서도 꿋꿋하게 민들레의 영토를 만들어 갈 것. 단, 잔디밭을 망가뜨리지 말 것. 민들레가 나에게 말을 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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