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은 나에게 광야와 같다.
며칠 사이에 풀들이 많이 자랐다. 봄비가 내린 날의 잔디와 민들레꽃과 봄 하늘의 대비, 나는 봄을 읽는다. 화려했던 봄날과 늦게 꽃을 피우는 봄에 대하여 읽는다. 봄꽃이 찬란했었고 봄바람은 따뜻했다. 꽃비가 내리는 날 세상은 온통 꽃처럼 보였다. 봄꽃이 흐드러지면 봄비가 온다는 말이 맞는지도 모른다. 화려했던 봄날은 가고 나의 봄은 들꽃에게로 간다. 봄이 가나 봄.
옷을 갈아입는 순간부터 나의 걷기는 시작된다. 세상에서 가장 원초적인 나의 모습으로 회귀하는 순간이다. 공원에 도착해서 차문을 열고 땅에 발을 딛는 순간 나는 어떤 옷을 입고 어떤 신발을 신고, 어떤 일을 하는 사람인지, 어떤 차를 타고 다니는지, 어떤 집에 살고 있는지에 대해 집착하지 않는다. 세상에서 가장 추레한 복장으로 길을 걷는다. 담담하게 계급장을 떼는 것이다. 싸워볼 만큼 싸워봤고 부딪혀 볼만큼 부딪혀봤다. 어느 정도는 상대를 아는 노장이다. 싸움의 승부 정도는 이미 예측이 끝났다. 나이를 먹었을 뿐 늙었다는 생각에 지고 싶지 않다. 다시 원점에서 신발 끈을 묶는 것처럼 차분해진다. 오늘 하루 힘들었던 생각도, 치열하게 계산해 봐도 대책이 없을 것 같은 일도, 후회도, 미련도, 기대도 모두, 대책 없이 내달리는 생각의 질주를 막아선다. 진짜 내가 아닌 것들에 휘둘리지 않겠다는, 기선을 뺏기지 않겠다는 의지이다. 길은 나에게 광야와 같다. 결국 내가 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닫게 한다. 타는 듯한 나의 두 다리와 나의 심장이 그렇게 말한다.
강원도 철원에서 군 생활을 했다. 조금 늦게 입대를 했기 때문에 선임병들이 나보다 한두 살이 어린 경우도 있었다. 훈련병의 세면장은 막사 옆 계곡이었다. 아침이면 구보를 마친 청춘들의 나신으로 후끈했다. 면도가 문제였다. 거울 없이 면도를 해본 적이 없던 나는 그 날 아침 일회용 면도기로 나의 얼굴을 그었다. 물론 실수였다. 피가 철철 흐르고 있었고 철퍼덕 주저앉아 쌓였던 응어리를 털어놓듯 서럽게 울었었다. 사고라도 칠 것처럼 느껴졌는지 조교가 나를 일으켜 세우고 옷을 입도록 도와주었다. 그날 훈련은 열외였다. 나는 나의 통곡이 자존심에 상처를 입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비뚤어진 나의 열등감이 폭발한 것이라고 짐작조차 하지 못했다. 세월이 흐른 후에 알게 되었다. 나는 나 자신도 사랑할 수 없는 존재였다는 것을. 내가 나를 얼마나 미워하고 얕잡아 보고 살았는지 알게 되었다. 그때부터 걷기 시작했다. 내가 누구인지, 무엇을 위하여 살아야 하는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질문한다. 진짜 자존심을 지키며 살겠다는, 다시는 싸구려로 살지 않겠다는 나만의 예배였다. 지금 나의 걷기는 자체발광이다. 스스로 나를 빛나게 한다. 나에게 나를 선물한다. 내가 나를 알아주고 나를 쓰담쓰담한다. 토닥토닥 내가 듣고 싶은 말을 나에게 해준다.
수없이 많은 글을 읽고 수없이 많은 말을 들어야 할 때가 있다. 세상에는 좋은 글, 따뜻한 글, 힘이 되는 글, 감동을 주는 글이 너무나 많다. 감탄하는 만큼 스스로 점점 작아질 때가 있다. 나는 정작 내가 하고 싶은 얘기들이 있다고 말하지 못하고 살았다. 그냥 담아두고 꾹꾹 누르고 살았다. 하고 싶은 말을 다하고 살 수는 없다. 가슴이 시키는 일을 어떻게 다하고 살 수 있을까. 걷기는 내가 나에게 보내는 신호이다. 나를 그 누구와도 비교하지 않을 것이며, 나도 모르게 누군가를 따라가고 싶지 않다는 저항을 시작하는 것이다. 나이기 때문에 할 수 있는 말이 있다. 나만 할 수 있는 말이 있다. 내가 하고 싶은 말이 있다. 내가 하고 싶은 말은 아픈 손가락처럼 때마다 저려온다. 아픔을 치유하는 법을 배우지 못했다. 예배당 종소리처럼 마음에 울리는 소리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