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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OY Apr 06. 2019

결국 내 마음에 달렸다

작다는 것, 느리다는 것, 약하다는 것.

 비 온 뒤의 아침, 산책길에는 사람들이 없어서 좋다. 이런 날은 시원하게 숨 좀 쉬고 살자. 방귀도 눈치 보지 말고 마음껏 뿡뿡거리자. 봄바람에 취하고, 한껏 봄을 깊이 담는다. 한적한 봄 길에서 나는 봄을 마신다. 매일 같은 길을 걷는다는 것은 인생의 여정처럼 단조롭다. 작은 것, 사소한 것의 변화를 놓치지 않고 챙겨볼 수 있다. 그리고 혼자 감동한다. 거의 매일 들리던 서점에서 매일 같은 자리에 꽂혀있는 책을 보는 느낌이다. 그 자리에 꽂혀있던 책이 오늘은 보이지 않는다거나 오늘 새로 들어온 책이 있다는 것을 금방 알아차릴 수 있다는 것이다. 


 공원 주차장에 도착하면 시작되는 사소한 갈등이 있다. 숲길을 걸을까, 아스팔트를 걸을까.

숲길은 흙길이다. 약간의 경사가 있고, 도로의 소음이 들리지 않는다. 햇볕이 뜨거운 날은 숲길로 간다. 그늘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햇볕이 당기는 날은 아스팔트를 걷는다. 자전거나 롤러스케이트를 탈 수 있도록 만들어졌다. 탁 트인 풍경이 있다. 보통은 늦은 가을부터 초봄까지 걷는 길이다. 흐린 날이거나, 이른 아침 또는 석양이 보고 싶은 날은 망설임 없이 아스팔트로 간다. 결국 내 마음에 달렸다. 어떤 날은 햇볕이 너무 좋아서 아스팔트를 걷는다. 어떤 날은 햇빛을 피하기 위해 숲길을 걷는다. 사람들을 마주치기 싫어서 아스팔트로 갈 때가 있고, 사람들과 더 가까이 마주쳐야 하는 숲길이, 사람 사는 것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흙을 밟는 소리가 유난히 크게 들리는 날이 있다. 신발 속으로 흙이 들어오는 것이 싫어서, 그 단순한 이유로 아스팔트를 걸을 때가 있다. 살다 보면 두 갈래의 길 앞에 서야 할 때가 있다. 나는 어떤 이유로 그 길을 선택하며 살았을까. 결국 내 마음을 당기던 그 길을 선택하지 않았을까.


 오늘은 아스팔트에서 탁 트인 풍경이 나를 끌고 있었다. 나는 명사보다 동사나 형용사가 좋다. 열려있다는 느낌, 움직인다는 느낌, 무엇인가를 응시하고 있는 느낌, 누군가와 가만히 눈을 맞추고 있는 그런 느낌적인 느낌이 좋다. 산다는 것이 어떤 것도 쉽게 단정할 수 없는 것 같다. 나이가 들수록 유연 해지는 탓도 있을 것이다. 어느 순간부터인가 절대라는 말은 인간의 영역에서 쓸 수 있는 말이 아니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절대 안 된다, 절대 안 한다는 말도 쉽게 할 수 없게 되었다. 절대 용납할 수 없다고 생각했던 일도 때로는 못 본 척 눈을 감아야 할 때가 있다. 한없이 느린 속도로 기다려야 할 때가 있다. 고유명사처럼 무엇인가로 단정된다는 것이 얼마나 두려운 일이라는 것을 깨닫는 나이가 되었다. 흔들리지 않는다는 것의 위대함, 끊임없이 흔들리다가 어디로 튀어버릴지 모르는 것들을 이해할 수 있으려면 더 견고해져야 한다. 


 사람은 보고 싶은 것만 보고 사는지도 모른다. 매일 다니던 길에서 처음 보는 것처럼 낯선 것들이 있다. 세상에나, 달팽이다. 달팽이, 세상에서 가장 느린 풍경일 것이다. 숨이 멎을 것만 같다. 울음이 왈칵 쏟아졌다. 그 자리에 무릎을 꿇고 팔꿈치를 바닥에 삼각대 삼아 사진을 찍는다. 턱을 고이고 한참 동안 바라보았다. 작다는 것, 느리다는 것, 약하다는 것.


 나의 걷기는 나에게 부끄러움이 무엇인지 가르친다. 상처 입은 영혼의 가련한 산책이다. 어떤 상황에서도 흔들릴 수 없는 최소한의 품위를 지키며 살겠다는 나에 대한 설교이다. 휘둘리지 않고 나로 살겠다는 나의 기도이다. 작은 것도 가장 소중하게 지키며 살겠다는. 기꺼이 그 소중한 사람들을 빛나게 하는 카메오로 살겠다는 간절한 기도이다. 주문처럼 끊임없이 읊조린다. 나는 오늘도 알레그로로 걷는다. 소중한 것들을 향해 나아가는 나의 속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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