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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OY Apr 19. 2019

우리에게 필요한 기적

누군가에게는 당연한 오늘이 누군가에게는 기적이 필요한 오늘일 수도 있다.

 캐나다 뉴브린즈윅 몽튼 병원 응급실에서 11시간 동안 의사를 기다리던 환자가 숨진 사건이 발생했다. 그녀는 호흡곤란과 심한 통증으로 응급실에 도착했고, 11시간 후 의사를 만났다. 이미 신장 기능이 상실한 상태였다. 의사들은 밤새도록 환자를 살리기 위해 노력했지만 그녀의 신장은 결국 닫혔고 하루 만에 사망했다. 그녀의 나이 58세, 세 자녀를 둔 엄마였다. 그녀의 여동생은 “어느 누구도, 그가 어떤 상황에 있다 하더라도, 특히 아프다면, 의사를 볼 수 있기 전에 11시간 동안 앉아 있어선 안된다고 생각한다."라고 심경을 전했다. 사람들은 이 사건을 두고 캐나다 의료 체계의 문제점 중의 하나인 응급실 적체 현상에 대해 심각성을 공감했다. 


 하임이는 동생과 함께 놀이터에서 놀다가 정글짐에서 떨어졌다. 바닥이 비교적 푹신했지만 떨어질 때의 충격이 컸나 보다. 팔이 부러진 것 같았다. 응급차에 실려서 병원으로 이동하는 동안 울기만 했다. 응급실에서 아이의 의료보험 정보를 물었을 때 아직 의료보험에 가입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았다. 캐나다에서 의료보험이 없으면 엄청난 병원비가 청구된다고 말로만 들었다. 청구된 병원비는 약 3만 달러였다. 한국 돈으로는 3천만 원 정도이다. 응급실에서 기다린 시간과 수술을 마치고 하룻밤을 입원한 병원비였다. 부모들은 캐나다 이민을 위해 식당에서 일하고 있었다. 병원에서는 그들의 안타까운 사정을 들어주었다. 그리고 매달 50달러씩 병원비를 갚도록 처리했다. 


이제 의업에 종사할 허락을 받으매

나의 생애를 인류 봉사에 바칠 것을 엄숙히 서약 하노라

나의 환자의 건강과 생명을 첫째로 생각하겠노라

나는 인종, 종교, 국적, 사회적 지위를 초월하여 오직 환자에 대한 나의 의무를 지키겠노라

비록 위협을 당할지라도 나의 지식을 인도에 어긋나게 쓰지 않겠노라

이상의 서약을 나의 자유의사로 나의 명예를 받들어 하노라

드라마 <태양의 후예> 히포크라테스 선서 중에서


 어머니가 갑자기 쓰러졌다. 어머니는 수술 후 중환자실에서 차라리 죽고 싶다고 절규할 때만 의식이 있는 것처럼 보였다. 거의 1주일 만에 아들의 얼굴을 알아보셨고, 내 손을 말없이 굳게 잡으셨다. 뇌 표면의 동맥이 손상되어 출혈이 생기면, 뇌와 두개골 사이의 지주막하 공간에 스며들게 된다. 이로 인해 뇌 주위의 압력이 증가하고 뇌의 기능이 손상된다. 갑작스럽게 망치로 맞은 것처럼, 머리가 깨질 것 같은 극심한 통증을 호소한다. 지주막하 출혈은 대부분 뇌동맥류 파열 후 3분의 1의 환자가 그 자리에서 즉사한다. 3분의 1은 병원에 이송 도중 또는 병원에서 사망하게 된다. 수술 이후에도 심각한 후유장애를 겪거나 재발 우려가 높다. 쓰러진 어머니를 둘러업고 택시를 탈 수 있는 곳까지 달렸다. 처음 도착한 대학병원에서 수술 성공 가능성이 희박하다며 수술마저도 거부당했다. 그 대학병원에서 가라고 했던 더 큰 병원은 어디였을까. 한양대학교 병원에서 장시간의 수술에 들어갔다. 수술을 시도해보겠다는 말 한마디만으로 충분했다. 어머니를 수술했던 의사는 수술실에 들어가면서 자신을 위해 기도해 달라고 말했다. 수술실 문이 다시 열릴 때까지, 나는 병원 복도에 매달린 시계추처럼 병원 복도를 서성거렸다. 


 “수술 정말 잘되었어요.”


 병원비 중간 정산을 독촉하던 원무과에서 선생님께서 수술비를 받지 않도록 해주셨다고 했다. 중환자실에서 그리고 입원실에서 한 달을 넘게 입원했던 병원비만도 사실 감당하기 벅찼다. 당시 20대 초반이었던 나는 병원비를 어떻게 마련했는지 기억조차 희미하다.


 “누가 했는지 정말 예쁘게 꿰맸어요.”


 퇴원하는 날, 일부러 찾아오셔서 어머니의 수술 부위를 만지면서 웃던, 선생님의 흰 가운에 박혀있던 이름 석 자를 나는 지금도 잊을 수가 없다. 어머니는 거의 완벽하게 회복하셨다. 지금까지 살아있다는 것이 기적이다. 어머니가 쓰러졌을 때 누군가 옆에 있었다는 것이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그나마 빨리 병원에 도착해서 응급조치라도 받았다는 것이 기적이고, 수술을 집도한 의사 선생님의 수술 방법이 어머니에게 맞았던 것 같다고 기적이라고 했다. 뇌수술로는 국내에서 처음으로 시도한 방법이었다. 이렇게 완벽하게 회복했다는 것도 기적이란다. 살아있다는 것의 기적, 우리는 기적 속에서 살고 있는지도 모른다. 아침에 눈을 뜨고, 산책길을 걸을 수 있고, 누군가를 뜨겁게 사랑하고, 그 옆에 있을 수 있다는 것의 기적. 숨을 쉬고 있는 지금 이 순간조차 우리에게는 당연한 것이 아닐지도 모른다. 누군가에게는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오늘이 누군가에게는 기적이 필요한 오늘일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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