깻잎의 마주나기 같은 우리들 이야기
깻잎을 따다 보면 자꾸만 미안한 마음이 든다. 깻잎은 따내면 따낼수록 더 많은 숫자의 잎을 늘려간다. 어김없이 마주나기를 한다. 꽃망울이 터지는 순간을 같이 했다는 것일 것이다. 처음, 햇살과의 눈 맞춤의 기억이며, 하찮은 날 것들의 사연에 눈물짓던 일이며, 부대끼면서 살았던 기억들을 같이 추억할 수 있다는 것이리라. 마주나기를 한 깻잎은 보통은 크기가 비슷하다. 아주 친한 사람들을 떼어놓는 것처럼 한쪽만 남기는 것이 미안해서 남은 한쪽이 작든 크든 같이 따주어야 할 것만 같다.
나는 깻잎을 딸 때마다 줄기와 맞닿은 부분까지를 끊어내야 할지 아니면 이파리가 끝나는 부분쯤을 끊어내야 할지를 고민한다. 고추나 토마토를 딸 때는 단 한 번도 고민해 본 적이 없는 이 낯선 고민은 거의 같은 부위를 자주 딴다는 죄책감일지도 모른다. 아니면 깻잎을 딸 때마다 느끼는 쌉싸래한 향기의 진동이 너무 진하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그 냄새는 잔디를 깎은 오후의 풀냄새를 닮았다. 면도한 후에 느끼는 알싸한 상처의 냄새를 닮았다.
깻잎을 따고 난 표피에는 어김없이 상처가 남는다. 생긴 상처는 시간이 지나면 짙은 갈색으로 변색한다. 그리고 어느 날 보면 그 짙은 갈색의 상처는 없어지고 그 자리는 다시 녹색으로 변해있다. 어느 날 아침, 깻잎을 심은 화분의 흙 위에 떨어져 있는 정체 모를 작은 깻잎 줄기들을 보게 되었다. 한참 동안 그 연유를 추측해야만 했다. 그것은 깻잎 스스로 상처를 치유하고 회복하는 과정에서 생긴 부산물이었다. 그 서럽게 아름다운 순간들을 안타깝게도 나는 놓치고 말았다. 깻잎을 따낸 흔적으로 그 자리에 그대로 남아 있어야 할 줄기와 이파리 사이의 남은 줄기가 없다. 남아있는 다른 잎들을 풍성하게 하려고 스스로 수분의 공급을 중단하고 내 고민의 흔적을 스스로 떨어뜨린 것이다.
고등학교 1학년 봄이었다. 나의 신록은 무엇이 그리도 급했는지 꽃부터 먼저 피우더니 끝내 봄볕을 등지고 서 있다가 꼿꼿하게 떨어져 버린 목련처럼 시렸다. 진달래꽃은 한데서조차 붉던 계절이었기에 더 깊게 느껴졌던 자존심의 상처가 지금도 아릿한 통증처럼 저릴 때가 있다. 두 번째 납부금 고지서를 받아 들고 마음 한쪽 구석에서 구겨져 있던 기억들이 스멀거렸던 것 같다. 담임선생님이 빚 독촉을 하듯 이름을 부르기 시작하면 처음에는 멋쩍은 얼굴로 부모님이 언제까지 내실 거라는 말만으로도 자유의 몸이 되었다. 기가 끝나갈 때쯤 교무실로 불려 가는 아이들은 반에서 한두 명 정도이다. 영락없는 빚쟁이의 모습이었다. 부모 잘못 만난 죄인이 되지 않으려고 스스로 볼모가 되어 연신 고개만 주억거렸다. 그 상황에도 내 동무를 고립시키고 싶지 않다는 생각을 했던 걸 보면 같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서로 의지가 되었나 보다. 어머니에게는 교무실에 불려 갔었다는 무뚝뚝한 말 한마디면 충분했다. 중학교 3년 내내 곪고 짜내던 여드름처럼 성가시게 나의 사춘기는 교무실에 유배되었다. 내가 가려고 했던 학교에 대한 미련을 접고 표류하다가 밀려왔다고 생각했다. 조금만 참으면 집안 형편이 나아질 것이라는 기대도 있었다. 결국, 이곳으로 다시 유배되었다는 생각이 들자 갑자기 모진 가난도, 나 자신의 미래도 아득하게 느껴졌다. 지금, 도망이라도 치지 않으면 영영 볼모 되어 살아야 할 것만 같았다. 학교를 자퇴하겠다는 생각을 말씀드렸을 때, 풋내 났을 아들의 의지가 단호하게 느껴졌기 때문이었을까 어머니는 그저 말없이 눈물을 떨어뜨리셨다. 네가 어떤 선택을 하든, 너를 믿을 수밖에 없었다는 회한이 어머니 눈물의 의미였다는 것을 나중에서야 알게 되었다. 한 데서 피었더라도 붉은 각혈 같이 살라고, 때로는 봄볕에도 눈 질끈 감고 살랑거려야 할 때도 있는 거라고, 시린 눈물을 삼키고 살다 보면 어느새 커버린 내 자식의 등에도 떨켜의 흔적들이 패어 있을 것이라는 기도였을 것이다. 스스로 떨켜를 만들고, 스스로 이파리를 떨어뜨리고 영양분이 충분하지 못한 겨울을 준비하는 나무처럼 우리는 무엇 하나씩을 스스로 떨어뜨리고 있었다. 그 자리에 걸맞은 꿈 하나씩 움트고 있었다.
깻잎은 새침데기이다. 알 것 같으면서도 모를 것 같은 쌉싸래한 깻잎의 향기와 맛이 그렇다. 전혀 위협적이지 않은 톱니 모양의 잎과 솜털같이 붙어있는 연한 가시가 그렇다. 자신을 스스로 지킬 힘이 느껴지지 않지만, 상추에 달라붙어 잎을 갉아먹는 달팽이들을 깻잎에서는 찾아볼 수가 없다. 여리기만 한 상추처럼 달팽이의 속도를 견디지 못하고 흔적도 없이 사라지지는 않는다. 깻잎에는 연민처럼 붙어있던 하루살이들이 일제히 솟구쳤다가 잦아들고는 한다. 가련한 날 것들의 더부살이를 위해 기꺼이 자신의 그늘을 내어준 것이다. 단순히 잎채소라기에는 무언가 개운치 않은 일년생. 들깨라는 버젓한 이름을 두고 여름 한 철을 깻잎이라는 이름으로 내내 주기만 한다. 너무 과하다 싶을 만큼 많이 주고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