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월의 바람과 코스모스

아버지의 자장면

 오늘처럼, 시월의 바람은 표정을 애써 숨기고 무엇인가를 재촉해야만 하는가 보다.

 나는 자장면 집 아들이다. 초등학교 교문 앞 제일 먼저 보이는 중국집이 우리 아버지의 가게였다. 동네 아이들은 나를 짱깨로 불렀다. 배달의 기수가 직업의 한 면으로 아직 써지지 않은 그때는, 아버지가 직접 요리도 하고 큰 짐자전거로 철가방을 오른손에 들고 곡예를 하듯 배달도 했다. 학교 교무실로 배달되는 한두 그릇의 자장면 정도는 은쟁반에 신문을 덮어서 나라도 거들어야 할 때가 있었다. 혹시라도 내가 좋아하던 계집아이나 음악 선생님이라도 마주친 날에는 세상 살기가 싫다는 개똥철학을 너무 조숙하게 깨닫는 날이었다.  

 “자장면, 매일 먹을 수 있어서 좋았겠다.”

 어른이 되어서, 살아온 얘기를 하다 보면 알게 되는 내 정체를 두고 아내도 그랬고 누군가도 그랬다. 뻔히 지나가는 누구라도 짐작할 수 있는 쟁반을 신문으로 두 겹, 세 겹으로 싸서 배달을 하던 내 심정을 감싸준답시고 졸업식 같은 특별한 날에나 먹었던 자장면을 많이 먹을 수 있어서 좋았겠단다. 손국수로 뽑아내는 한 그릇의 자장면이 나오기까지 얼마나 많은 연민이 있었는가를 알 리가 없다. 살다 보면 어쩔 수 없이 가게 되는 중국집에서 언제나 볶음밥을 주문하는, 단 한 번도 단무지나 양파를 더 달래본 적이 없는 나의 고뇌를 알 리가 없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그렇게 지겨웠던 자장면이 먹고 싶을 때가 있다. 손님에게나 주는 쫄깃쫄깃하고 갓 볶아진 자장면이 아니라, 면을 삶아 놓고 팔지 못해서 불어 터지고, 데우고 또 데워져 흐물거리는 자장면이 그리울 때가 있다.  

 아버지는 간신히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어린 나이부터 갖은 고생을 다 하셨다. 동생들 공부 뒷바라지와 생계를 책임져야만 했다. 가장이라는 짐을 한 번도 내려놓지 못하고 평생을 사셨다. 우리는 1970년대에 경기도 안양으로 삶의 터전을 옮겨왔다. 성실 자체로 사셨던 그였기에 어렵게 고생해서 모은 재산으로 한창 개발의 붐을 타기 시작한 안양에 땅을 사고, 아버지의 문패가 달린 양옥집을 짓고 중국집을 시작했다. 그것은 어쩌면 결국 가슴에 묻어야만 했던 꿈의 시작이었을지도 모른다. 적어도 그 일만 없었더라면.  

 그 사건은 아버지와 우리 가족 모두의 운명을 뒤바꾸어 놓았다. 어느 날 우리 집에 세 들어 살던 청년 두 명이 연탄가스에 중독되어 죽었다. 지금까지도 그 추웠던 새벽의 잔상들이 남아있는 것은 아마도 너무 무서웠기 때문일 것이다. 누구의 실수였고 어느 정도의 책임이냐를 따지기에는 아버지의 절망이 더 컸었다. 모든 재산을 그들의 가족에게 나누어주고, 그는 매일 술에 취해야만 했다. 위벽이 헐어서 터질 만큼 독한 소주로도 죄책감과 절망이 삭히지 않았는지, 열 시간이 넘는 위 수술을 두 번이나 하면서 빚더미까지 짊어져야만 했다.

 사 남매를 모아놓고 다시는 술을 먹지 않겠다며 새끼손가락을 베어 피로 썼던 가장의 맹세도 오래가지는 못했다. 그래도 살아야겠기에 혼자서 도망칠 수 없었던 언제나 뜨거웠고 밀가루 뿌연 먼지만 기억나는 그의 일터에서 훈장처럼 얻은 폐결핵은 지금까지도 어머니와 나에게까지 전염되어 피를 토한 흔적으로 남아있다. 이미 몸도 마음도 회복하기 어려울 만큼 망가졌을 때 강원도 홍천에 있는 요양원을 통해 실낱같은 희망을 붙잡게 되었다. 당신의 남은 인생을 그곳에서 자신처럼 아팠던 사람들을 위해 사시겠다는 결단을 했을 때 무겁기만 했던 어깨의 짐을 풀어놓은 사람처럼 환하게 웃고 계셨다.  

 그 날은 여동생의 결혼식 날이었다. 아버지는 막내딸의 결혼식을 위해서 오랜만에 집에 오셨다. 많이 좋으셨는지 평소보다 음식도 맛있게 드셨다. 말씀은 많이 없으셨지만 대신 더 환하게 자주 웃으셨다. 어떻게 모으셨는지 모를 결혼식 비용에 보태라고 건네주시던 두 뭉치의 돈은 아버지로서의 자식을 향한 마지막 마음이었을 것이다.  

 “미안하다. 네가 고생이 많다.”  

 내 손을 잡던 아버지의 손에서 느껴지던 앙상한 온기가 마지막일 줄은 미처 몰랐다. 당신의 마지막 순간을 손 붙잡고 지킬 안타까움도 남기지 않으려고 하셨는지, 그렇게 마지막 유언도 없이 고통이 조금도 묻어있지 않은 표정으로, 아버지는 막내딸의 결혼식 당일 아침에 주무시던 채로 돌아가셨다. 동생의 결혼식 사진은 거의 신부가 울고 있다. 순백의 웨딩드레스가 눈부시게 하얬다. 어떻게 여동생의 결혼식을 마쳤는지, 어떻게 아버지의 장례식을 마쳤는지 모르겠다. 기쁨도, 슬픔도 새겨놓을 겨를 없이 아내의 뱃속에서 핏덩이로 잊혀버린 내 첫아이처럼 무덤조차 만들어 드리지 못했다. 아버지의 뜻이 그러했지만, 아버지의 유골을 홍천 요양원의 숲 속에 뿌리고 돌아오는 길에 비로소 나는 참으로 서럽게 울었었다.  

 오늘처럼, 표정 없는 시월의 바람이 부는 날에는 아버지가 그립다. 다른 사람들에게는 싫은 소리 한 번 하실 수 없어서 그저 말없이 웃기만 하셨으면서도, 정작 자신에게는 모질기만 하셨던 그의 짧았던 웃음이 정말 그립다. 그저 말없이 흔들리고 있는 코스모스처럼 시월의 무표정한 바람에 꽃잎을 떨구어야 할 때가 있었으리라. 오늘은 아들들을 데리고 자장면을 먹으러 가야겠다. 혹시라도 그 집 아이를 만나면 손이라도 잡아주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