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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OY Apr 04. 2019

어머니의 도둑질

마음을 훔치고 산다는 것은.

나는 도둑놈이다.


 나는 도둑놈이다. 사내로 태어나서 나라를 훔치지는 못하고, 오늘도 순댓국밥집 아줌마 마음이나 홀려서 순대 몇 점을 더 얻겠다고 목소리 깔고 괜히 치근덕거리는 좀도둑놈이다. 무엇 하나 제대로 훔치지도 못하는 주제에 허구한 날 사람 마음을 욕심내는 순 날도둑놈이다.


코흘리개 동심을 호리려는 상술이었을 것이다.


 우리 집은 초등학교 교문 앞 짜장면집이었다. 동네 슈퍼도 아니면서 빵과 과자를 팔았다. 학교 앞 문방구가 그랬듯이 코흘리개 동심을 호리려는 상술이었을 것이다. 준비물을 사러 간 문방구에는 별천지가 따로 있었다. 연탄불에 노릇노릇 구워 먹어야 제맛이 나는 쫀드기에게 인내를 배우고, 조물조물 달래고 얼러서 빼먹는 아폴로에게 처세를 배웠다. 종이 뽑기에서 또 꽝을 뽑고 돌아서면서도 아쉬움과 기대를 놓은 적이 없다. 아이들은 등굣길이나 하굣길에 참새가 방앗간 지나듯이 한참 동안 기웃거리다가 과자 한 봉지에 코 묻은 동전을 털어놓고 자장면 냄새를 사 갔는지도 모른다. 


밤이 온다는 것은 낡은 일기장을 헤집고 다닌다는 것이고 망설였던 흔적들을 들춰낸다는 것이다.


 학교 앞 동네에는 언제나 학교 운동장에 가장 먼저 밤이 찾아온다. 운동장에서 놀던 아이들은 애국가가 울리면 공을 집어 들고 정지화면처럼 멈춰 선다. 하루의 아쉬움을 고사리손으로 쥐어 가슴으로 묻고 뿔뿔이 집으로 돌아간다. 이어서 선생님들이 퇴근하고, 누가 닫는지도 모르는 교문이 닫히면 학교 앞 가게들도 서서히 허리에 찼던 돈주머니를 풀어서 하루를 계산한다. 밤이 온다는 것은 낡은 일기장을 헤집고 다닌다는 것이고 망설였던 흔적들을 들춰낸다는 것이다. 못다 한 말들을 술에 취한 듯 털어낼 수 있다는 것이다. 



도둑들의 역사가 시작되었다.


 가게 문을 닫고 어머니 아버지가 금요철야를 가던 어느 날 밤에, 도둑들의 역사가 시작되었다. 지금도 우리 넷 중에 누가 먼저 그런 고양이 세수 같은 용기를 냈는지 모르겠지만, 우리 사 남매는 서로 공범이 되었다. 표시 나지 않게 과자 한 봉지를 지능적으로 고르는 일과 그 달콤함의 흔적을 조금도 남기지 않고 먹어치우는 완전범죄를 노리는 어린 도둑들의 모의를 내가 주도했던 것은 분명하다. 그것이 눈 가리고 아옹이라는 것을 눈치채지 못한 나의 첫 번째 도둑질이다. 


어쩌면 삶의 이유에 대한 화형이었을 것이다.


 자신에게 불리한 기억이기 때문일 것이다. 나는 지금도 그 돈이 얼마쯤 되는지를 도대체 짐작할 수가 없다. 그 돈이 어떤 경로를 타고 무의식 속으로 숨어들어 가 앙상하게 박제되어버렸는지 나는 모른다. 이웃이라고 드나들며 마주쳤을 면식범이면서도 피해자가 벽을 맞댄 옆집에 살고 있었던 홀아비였다는 것 말고는 그가 무슨 일을 했는지, 심지어 어떻게 생겼는지조차도 전혀 기억나지 않는다. 물론 그 범죄는 어머니와 나만의 비밀이었고, 비공개 재판으로 진행되었다. 

그 날 어머니는 장남과 단둘이 외출이라도 하는 것처럼 내 손을 붙잡고 밖으로 나갔다. 그저 말없이 학교 뒷산을 향해 걷고 또 걸었다. 사람들의 인기척이 느껴지지 않는 곳까지 걷는 동안 어머니는 한마디도 묻지 않으셨다. 범인이 초등학생이고 얼마만큼 훔쳤는가에 따라서 벌을 받아야 한다면, 가당한 일말의 심의조차 생략된 채 그나마 믿고 살아야 했던 장남의 배신에 대한 가혹한 판결은 둘이서 같이 죽자는 어머니의 통곡이었다. 어머니는 가방에서 앨범 하나를 꺼내셨고, 금방이라도 불을 붙여 태울 것처럼 이제는 다 소용없다며 절규하셨다. 그 앨범이 어머니에게 얼마나 중요한 것이었는지 나는 알고 있었다. 내가 초등학교 1학년 때부터 받아온 상장들과 성적표를 모두 모아두었던 그 앨범을 태운다는 것은 어쩌면 자신의 삶의 이유에 대한 화형이었을 것이다. 이제는 더 살아봤자 자신은 도둑놈을 키운 애미가 되는 것이고, 나는 도둑놈 키우려고 이 고생하는 것 아니라며 같이 죽자고 끌어당기던 그 밤의 아릿한 춤사위를 나는 잊을 수가 없다. 

나를 키운 건 팔 할이 바람이라고 했던가, 나를 키운 건 어머니의 눈물이었다. 나의 도둑질은 그 날로 끝이 났다. 나는 그 날 어머니에게 마음을 도둑맞았다. 돌이켜보면 비뚤어질뻔한 나를 훔쳐가시고, 혹시 들켰을까 싶어서 평생을 아들 눈치만 살피고 사셨던 것 같다. 



어머니에게 죄가 있다면


 어머니의 그 도둑질이 결국 이날까지 큰 것 하나 제대로 훔치지도 못하는 한낱 좀도둑으로 나를 전락시키고 말았다. 어머니에게 죄가 있다면 그것은 아들에게 마음이라도 제대로 훔칠 수 있는 기술을 전수했어야 했다는 것이다. 그마저도 나에게 죄를 묻는다면 변변한 기술 하나 없이 도둑들의 세상 한복판에 덩그러니 던져졌다는 것이다. 진짜 도둑들은 자신의 이름을 사람들의 입방아에 오르내리게 하지 않는다. 훔치고 싶은 욕망을 표지하는 말뚝 하나만 흉물스럽게 남아있는 좀도둑들이 순댓국밥집에서 괜히 열을 올리고, 학교 앞 짜장면집에서 코흘리개 동심을 호렸을 것이다. 도둑들은 그렇게 대를 잇는지도 모른다. 


마음을 훔치고 산다는 것은 그녀의 눈빛이 피고 지던 순간을 놓치지 않았다는 것이다.


 “작은 텃밭 하나 있으면 좋겠어.”

나는 아직도 아내의 그 소박한 꿈을 들어주지 못하고 있다. 작은 텃밭이 생기면 상추도 심고, 깻잎도 심고, 고추도 심고 싶다는 투정을 들을 때마다 처음에는 조금만 기다리라고 했고, 언제부터인가는 그저 말없이 웃기만 한다. 요즘 들어서는 점점 조바심이 난다. 아내의 그 소박한 투정을 절창처럼 듣고 싶을 때가 있다. 

육 남매를 홀로 키우신 장모님의 영향일 것이다. 아버지에 대한 아내의 기억은 술에 취한 아버지가 과자 봉지를 한 아름 안겨주셨던 것이 전부이다. 그 짧은 기억이 그래도 자신을 예뻐하셨다고 위안이 되는 모양이다. 젊은 나이에 남편을 잃고 장모님은 호미로 일군 텃밭에서 자신의 신세를 고르고 계셨는지도 모른다. 어쩌면 자신도 마음의 텃밭이 필요하다는 처방을 스스로 내리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마음을 훔치고 산다는 것은 그녀의 눈빛이 꽃처럼 피고 지던 순간을 놓치지 않았다는 것이다. 오늘은 커다란 화분 하나라도 들고 들어가야 될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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