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JOY May 28. 2019

상처에 어울리는 품격

엄마의 뱃속 너머, 소리로만 느낄 수 있는 세상은 어떤 모습이었을까.

 “기쁨아”


 결혼을 했고 아이가 생겼다. 아내는 첫 아이를 유산했던 경험 때문에 핏빛이라도 비치는 날에는 온종일 누워있기만 했다. 무엇인가를 지킨다는 것은 그만큼 절박하다는 것이다. 태아의 미동이라도 느끼려고 했는지, 아내가 배에 손을 올리고 아가를 부르는 이름이다. 아내의 목소리가 한없이 작기만 하다. 배 속의 아이는 내 목소리를 안다. 내 목소리를 듣고 아이가 움직인다. 아내의 배가 불룩 솟아오른다. 배에 손을 대고 있으면 솟아오른 부분이 움직인다. 그 좁은 공간에서 어떤 생각을 했었을까. 무엇인가에 처음 살을 닿는다는, 심장이 멎을 것만 같은 순간을 어떻게 말로 표현할 수 있을까. 우리에게 열 달은 미지의 생명을 만지는 가슴 벅찬 기쁨이었고, 손으로 더듬어서 마음을 읽는 부모가 되기 위한 수련이었다. 아이에게 엄마의 뱃속 너머, 소리로만 느낄 수 있는 세상은 어떤 모습이었을까. 아이는 상상의 지느러미를 흔들며 어디까지 헤엄치고 나아갔을까. 


 나는 매일 노래방으로 간다. 아마도 도시 전체의 노래방을 다 가봤을 것이다. 사장은 어떤 부류의 사람인지, 어느 정도의 매출을 올리는지 대충 짐작할 수 있다. 동네마다 노래방의 수준이 다르다. 대부분의 노래방은 겉은 맥주처럼 보이지만 알코올은 없고 맥주 맛이 나는 음료를 판다. 어떤 노래방은 진짜 맥주를 팔기도 한다. 분위기가 야릇한 노래방도 있다. 속이기도 하고 속기도 하는 세상을 처음 알았다. 일 년을 조금 넘게 노래방에 음료수를 배달하는 일을 했다. 아이를 맞을 준비가 필요했다. 처음에는 낮에는 학교에 다니고, 밤에는 일을 하는 것으로 합의했었다. 막상 아이가 태어나고, 기저귀를 채우고, 분유를 먹이면서 휴학을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군대를 다녀오고 결혼을 하고 늦은 나이에 다시 공부를 시작했다. 어렵게 시작한 공부였기 때문에 아내도 나도 고민이 많았다. 서로를 아낀다는 것은 용기를 줄 수 없다는 사실에 절망하면서도, 끝까지 용기를 잃지 않기를 응원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내 아이에게 우유라도 제대로 먹여야겠다는 생각에 휴학을 결심하기까지 우리는 서로 말을 아꼈다. 일 년만 하기로 했던 결심을 깨고 휴학을 연장했다. 기왕 돈을 버는 김에 다음 학기 등록금까지 벌어야겠다는 생각에 몸을 사릴 줄도 몰랐다. 돈맛을 봤는지도 모른다. 


 “사람 얼굴이 아니었어.”


 수술을 마치고 입원실로 들어와서 아내가 처음 한 말이다. 그나마 수술을 마치고 붕대로 가리고 있어서 사람 모양처럼 느껴졌던가 보다. 얼굴의 부기가 가라앉을 때까지 수술을 미루고 있었다. 응급실 천장의 형광등이 흐릿하게 보였다. 제대로 볼 수가 없었다. 고통 때문에 차라리 눈을 감고 있는 것이 편했다. 문을 열고 들어오는 발자국 소리를 듣고 아내가 온 줄 알았다. 얼굴 전체로 멍이 들고 퉁퉁 부은 얼굴이 말이 아니었을 것이다. 나를 보자마자 아내는 울음을 터트렸다. 나도 봇물이 터진 것처럼 눈물이 났다. 조각 난 뼈들을 맞추고 절단된 부위를 꿰매는 수술을 했다. 수술을 마치고 거의 한 달이 되어서야 퇴원할 수 있었다. 사장님이 병원비 전부를 내주셨다. 사모님과 함께 병문안을 오셔서 회복하면 일을 그만두고 다시 복학하라고 말씀하셨다. 나의 사정을 살펴주시던 고마운 분들이었다. 나의 길로 돌아가라는 사인인가 보다는, 자네는 이런 일 할 사람이 아니라고 등 떠밀던 분들에게 차마 한 달 후에 해야 하는 꿰맨 자국을 없애는 성형수술 비용을 말씀드릴 수는 없었다. 성형수술을 기약 없이 미루고 퇴원을 했다. 


 “성형 수술해야 할 것 같아.”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상처라고 생각하고 사세요.”


 안경을 쓰는 것이 늘 불편했다. 라식수술을 하고 안경을 벗은 사람들을 보면 부러웠다. 수술하고 나면 어떤지 묻기도 했다. 그냥 생긴 대로 살라는 아내의 말을 들으면 진짜 후회할 것만 같았다. 라식수술을 했다. 노안까지 왔기 때문에 노안 교정을 포함한 수술 방법을 선택했다. 수술하고 다른 세상이었다고 말하는 사람들의 세상은 어떤 세상이었을까. 생살을 찢는 고통으로 며칠을 고생했고, 안경을 벗는 대신, 잊고 살았다고 생각했던 상처가 드러났다. 노래방은 3층에 있었다. 일을 빨리 끝내기 위해 무리하게 음료수 박스를 등에 졌다. 등에서 누르는 무게를 견디지 못하고 고꾸라진 것이다. 그대로 얼굴을 계단 모서리에 박았다. 코뼈가 가로로 으깨어졌고, 음료수는 나뒹굴었고, 피가 흘렀다. 그동안은 안경에 가려서 잘 보이지 않았었다. 잘 보이지 않는 상처라고 위안으로 삼고 살았는지도 모른다. 미간 바로 밑 콧잔등에 불에 덴 자국처럼 비교적 큰 상처가 있다. 얼굴 중앙에 있기 때문에 더 크게 보이는지도 모른다. 유난히 코도 더 커 보인다. 안경이 잘 어울리니까 라식수술을 하지 말라는 그녀의 말을 듣지 않은 것을 후회했다. 그녀는 가장의 상처는 아름다운 것이라고, 그냥 남자답게, 자랑스럽게 살라고 했다. 헌혈하다가도 기절을 하는 나를 염려해서 하는 말일 것이다. 이 상처를 나는 어떻게 견디고 살아야 할지를 고민한다. 남자의 상처는 흉이 아니라더냐. 그렇다면 아름다운 상처에 어울리는 품격을, 나는 어떻게 지키며 살아야 하는 것일까.

매거진의 이전글 우리에게 필요한 기적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