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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OY Apr 23. 2019

내가 원하는 승부

브런치에 글을 쓴다. 그냥 내 가슴이 하자고 나를 잡아끄는 일이 있다.

그냥 좋은 사람이 있다.


 “큰 게 좋아, 작은 게 좋아? 크면 미련해 보이지 않아?”

나의 대답은 이미 정해져 있을 때가 있다. 이미 마음이 끌리기로 작정한 것처럼 쉽게 마음을 끄기 어려운 것들이 있다. 살다 보면 무엇을 좋아한다거나 싫어하는 것에 대해 안다고 생각할 때가 있다. 그냥 좋은 사람이 있다. 봄이 그렇다. 봄꽃, 봄비, 봄바람 모두 봄의 색깔은 연하다. 겨울을 뚫고 나와 저토록 찰랑거리는 연록의 계절을 나는 무엇으로도 마다할 수가 없다. 그냥 봄이라서 좋다.



나는 마지막까지 <삼미 슈퍼스타즈>의 팬이었다.


 나는 승부 근성이 약하다. 반드시 이겨야겠다는 것에 대한 당연한 철학에 대해서도 의지박약이다. 아마도 초등학교 때 사건 이후로 두드러지게 표출된 것 같다. 반장 선거에서 떨어지고 침울해하던 아이가 중간고사에서 2등을 하자 성적표를 꾸겨 던졌다. 교실 바닥에 앉아 우는 모습을 보고 숨이 턱 막힐 것 같았다. 어쩌면 그 이후로 내가 최선을 다했어도 결국 그 아이는 더 열심히 해서 나를 이겼을 것이다. 정작 나는 지는 것이 편했다. 프로야구도 삼미 슈퍼스타즈를 응원했다. 나는 마지막까지 삼미 슈퍼스타즈의 팬이었다. 특별한 이해관계가 없을 때는 지는 편을 응원한다. 일부러 지고 싶다거나 지면서 살겠다는 것이 아니다. 이기는 습관에 길들여지지 않았을 뿐이다. 승부욕이 강한 사람을 만나면 아예 처음부터 지기로 작정한 사람처럼 굴었다. 가끔 진정한 고수를 만나기도 하지만 대부분의 승부는 내가 일부러 져 준 것이라는 알량한 위세를 떨기도 했다.



내 사전에 GG는 좋은 게임이다.


 그 친구는 나의 승부욕을 자극하고 있었다. 스타크래프트라는 온라인게임이 유행하던 시절 바둑판을 끌어다 놓고 나에게 스타크래프트를 얘기했다. 테란과 저그 그리고 프로토스라는 종족들의 피 튀기는 싸움. 온라인이라는 가상공간에서 이름도 알 수 없는, 다만 게임 아이디로만 피아를 식별하는 승부의 세계. 전멸하거나 포기하거나, 적어도 나에게는 *‘G.G’가 될 수 없는 그런 치졸한 인생을 떠벌리고 있었다.

나는 바둑이 인생의 축소판이라는 그의 말에 동의할 수 없다. 단순히 인생을 승패의 율로 제한시키는 것만 같아서 조바심이 난다. 흑과 백, 백과 흑을 대치시키고 지금은 어떤 형국이라고 간주하는 모든 분석을 나는 거부한다. 결코 적으로 간주할 수 없는 사람들이 있다. 때로는 서로 경쟁해야만 하는 우여곡절의 사연에 대한 연민이 필요하다. 인생은 너무 변수가 많다. 무엇인가를 지키기 위해 때로는 낙엽처럼 태워버렸고, 때로는 인생 전부를 건 것처럼 치열했던 순간들, 마지막까지 가슴으로 내 편이 되어주는 가족 같은 사람들의 체온이 그렇다.

결국, 나는 한 번도 친구에게 바둑을 이겨본 적이 없다. 스타크래프트 게임도 나의 테란은 그의 저그에게 비참하게 전멸했다.



내가 두고 싶은 바둑은... 첫수부터 다시 두고 싶다.


 내가 두고 싶은 바둑은 이렇다. 바둑판에 놓인 돌 한 점 한 점에 상대방의 마음을 읽고 그릇의 크기를 가늠한다. 바둑이 끝나기까지 우리가 나누는 의미에 대하여 고민한다. 바둑 한판을 두기 위해 1년이 넘는 시간이 걸렸다는 일본의 기록처럼 생각하고 또 생각할 수 있으면 좋겠다. 깊은 고뇌로 수를 계산하고 싶다. 일수불퇴의 원칙만 통하는 세상에서 때로는 순간의 패착을 후하게 무를 수 있으면 좋겠다. 상대방의 실수에 일말의 애달픔도 없는 속물근성을 처박아버리고 싶을 때가 있다. 혹시라도 바둑이 인생을 축소하고 있다면, 나는 첫수부터 다시 두고 싶다. 어쩌다 마음이 통하는 사람을 만나면 시간제한이 없던 시절의 바둑을 두고 싶다. 바둑 한 판을 두기 위해 1년이 걸리더라도 그 사람에 대하여 배우고 싶다.



나는 브런치에 글을 쓴다.


 그 친구는 온라인과 오프라인과 우리의 젊음, 그리고 우리가 흘러가야 할 방향에 대해서 말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지금은 알파고와 바둑을 두는 시대가 되어 버렸다. 구글은 알파고와 인간이 승부를 겨룰 다음 종목으로 스타크래프트를 선택했다.

나는 브런치에 글에 쓴다. 카카오톡과 페이스북을 한다. 어떤 승부도 예측하지 않기로 마음먹고 시작했다. 어차피 나에게는 어울리지 않는다. 그냥 내 가슴이 하자고 나를 잡아끄는 일이다. 내 글을 읽어주는 한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과 오래 마주하고 싶다. 그 사람을 배우고 싶다.


* ‘Good Game’ 혹은 ‘Give up the Game’의 약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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