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JOY May 04. 2019

반대로 걷는다

시간을 거슬러 갈 수는 없지만 공간을 거슬러 갈 수는 있다.


 어떤 날은 반대로 돈다.


 어떤 날은 일부러 거꾸로 돈다. 나는 대부분 오른쪽을 선택하는 것이 익숙하다. 버스를 타거나 스카이트레인을 타서 자리에 앉을 때도 무의식적으로 오른편을 선택한다. 지금은 한국도 바뀌었지만, 캐나다에 처음 도착했을 때도 오른쪽 보행이 편했다. 매일 마주치는 사람들은 나와 방향이 다른 사람들이다. 반대 방향으로 돌면 지금까지 보았던 풍경들을 바라보는 나의 시선이 바뀐다. 마주치는 사람들도 바뀐다. 나를 지나쳤거나 내가 지나쳤을 사람들의 뒷모습이 아니라, 얼굴을 마주하게 된다. 매일 같은 길을 걷는 나에게 주는 파격이다. 단조로울 수 있는 내 삶의 영역에서 새로움을 추구하는 나만의 방식이다.



토끼다. 토끼다?


 숲에서 불쑥 튀어나오는 것들이 있다. 나도 순간 멈칫하지만, 토끼도 놀라서 줄행랑을 친다. 토실하게 살이 오른 토끼는 확 덮치고 싶은 생각이 들어서 일부러 놀라게 하기도 한다. 간혹 토끼지 않고 버티는 토끼는 두 종류가 있다. 언뜻 보아도 세상 살 만큼 살았다고 느껴지는 늙은 토끼 거나, 한마디로 세상 물정 모르는 새끼들이다. 일명 호랑이에게도 비굴하지 않은 엽기 토끼들이 진짜 있는지도 모른다. 어중간한 것들이 늘 요란한 법이다. 봄이 오면 갑자기 눈에 띄기 시작한다. 토끼들은 긴 겨울을 어떻게 버텼을까. 어디에서 무엇을 하며 숨죽이고 살았던 것일까. 나는 토끼의 울음소리를 들어본 적이 없다. 갑자기 토끼가 겨울을 나는 방식이 궁금하다.

 


토끼의 사정


 토끼의 눈은 늘 바쁘게 움직인다. 360도를 볼 수 있어 위험을 감지하는 속도가 빠르다. 토끼에게는 튼튼한 뒷다리가 있다. 순간 속도가 빠르고 방향 전환에 뛰어나다. 천성적으로 짧은 거리를 도망가기에 적합하게 생겼다. 토끼는 다산의 상징이다. 한 번에 2~8마리씩 새끼를 낳는다. 임신 기간이 1개월이기 때문에 1년에 몇 차례씩 새끼를 낳을 수 있다. 1년에 4,556마리의 새끼를 생산한 토끼가 기네스북에 등재되어 있다.

코요테는 타인헤드 공원의 최상위 포식자다. 밤이 되면 어슬렁거리는 코요테의 무리를 가끔씩 볼 수 있다. 해 질 녘의 숲에는 으스스한 긴장이 느껴진다. 야생의 짐승이 울부짖는 소리는 모든 신경을 곤두서게 만든다. 어둠 속에서 여러 개의 눈이 떠다니는 것을 보면 오금이 저릴 법도 하다. 그러나 역사상 단 한 번도 코요테에 의해 토끼가 전멸된 적이 없다. 코요테의 숫자가 토끼보다 많아 본 적도 없다. 토끼는 짝짓기 과정에서 많은 포식자의 위협을 받기 때문에 짧은 시간에 가장 효과적으로 끝내야만 한다. 교미 중에 수컷의 피스톤 운동 속도는 엄청나게 빠르고 간결하다. 토끼의 사정이다. 토끼의 눈이 새빨간 이유일지도 모른다. 신은 공평하다. 유구한 세월을 토끼는 코요테에게서 살아남고 있다.



책갈피처럼 마음에 머물러 있는 풍경이 있다.


 언젠가 다시 한번 읽어보기 위해 꽂아 두었던 책갈피처럼 마음에 머물러 있는 풍경이 있다. 시간을 거슬러 갈 수는 없지만, 공간을 거슬러 갈 수는 있다. 그럴 때는 반대 방향으로 걷는다. 작은 변화지만 이유 있는 전환이 필요하다. 다른 각도로 보면 보이는 것들이 있다. 눈에 보이는 것이 전부가 아닐지도 모른다. 모두가 알고 있는 사실 너머에 아무도 귀 기울이지 않았던 진실이 숨어있기도 한다. 때로는 마음이 어쩌지 못하는 것이 있다. 아무도 줄 수 없는 답을 마음 너머로 툭 던져놓는다. 우리는 모두 숨은 사정 하나쯤을 가슴에 품고 살고 있는지도 모른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