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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OY Apr 29. 2019

서로 닮아간다는 것

나의 단점을 아는 사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 얘기를 들어주는 사람.

 아침에 걸어야 할 때는 모자를 눌러쓰고 나간다. 운동하러 가면서 왜 샤워를 하느냐는 잔소리 때문이다. 세수도 못 하고 결국 모자를 눌러쓰면서 검은 모자가 고맙다는 생각을 한다. 누군가에게 얻은 모자를 십 년이 넘게 쓰고 있다. 나에게 맞는, 내가 가진 유일한 모자이다. 모자가 잘 어울리는 남자가 있다. 모자가 잘 어울리는 사람들의 특징은 머리가 작다는 것이다. 옷 매장에 가면 옷을 고르다가도 자꾸만 모자를 보게 된다. 아직도 나에게 어울리는 모자를 찾지 못했다. 머리가 크다는 것, 비율이 맞지 않는다는 말이다.


 그녀는 아직도 혼자서 김치를 담지 못한다. 시집을 와서, 요리를 잘하시는 시어머니 밑에서 마음고생이 심했다. 시집살이를 하면서 한 번도 맘 놓고 요리를 해 본 적이 없다. 김치를 담을 때마다, 자신의 말대로 씻고, 썰고, 다듬는 데는 천재다. 집 앞 주차장 바닥에 철퍼덕 주저앉아 허연 허벅지를 드러내고 배추를 다듬고 씻고 절구고 버무린다. 그런데 간을 맞추지 못하는 쫄보다. 수없이 많이 김치를 담았지만 스스로 간을 맞춰본 적이 없다. 맛보기로 이제 막 버무린 김치 맛은 알아서 요즘도 김치를 담그는 날은 김치 생지를 손으로 찢어서 맛나게 먹는다. 밥도둑이란다. 비어 가는 밥그릇에 대한 안타까움을 아느냐고 묻는다. 김치를 익히기 위해 하루에도 몇 번씩 뚜껑을 열었다 닫고는 한다. 김치 냉장고에 들어갈 때까지 고민한다. 그녀의 레시피가 없다는 말이다. 그녀가 갓 담은 배추김치를 뚝뚝 썰어서 내놓고 맛이 어떤지 묻는다. 

장모님은 그녀에게 엄마처럼 살지 말라고 했다. 시어머니는 며느리에게 자신처럼 살지 말라고 했다. 요리도 잘할 필요 없다고, 요리를 잘하면 허구한 날 요리만 하고 살아야 한다고. 적당히 못하는 척하고 살라고 했다. 무거운 것은 다 당신의 아들을 시키라고 했었다. 나는 지금까지 그녀에게 장바구니며, 무거운 것을 들게 해 본 적이 없다. 그녀는 당연히 금방 열리는 뚜껑도 나에게 열어달라고 한다.


 시어머니의 사랑은 며느리 사랑이라는 말은 없다. 세상에 딸 같은 며느리, 친정엄마 같은 시어머니는 없다. 어머니는 아들에게 칠순 잔치 대신 당신에게 일주일을 달라고 했었다. 같이 여행을 가고 싶다고 했다. 떨어져 사는 아들이 못내 아쉽다는 표현을 그렇게 하셨다.

여자의 일생은 딸에게 무엇일까. 여자의 일생은 며느리에게 어떤 진심을 전하고 싶었던 것일까. 나는 내 아들에게 아빠처럼 살라고 하게 될까, 살지 말라고 하게 될까. 내 아버지는 나에게 자신처럼 살라고 말했을까. 서로 닮아가는 것이다. 사랑한다는 말은 내가 좋아하는 것을 그 사람도 좋아하길 바라는 것이다. 그 사람이 좋아하는 일을 하다 보면 힘든 줄도 모르고 한다. 그러다가도 어디 한 군데쯤 쑤시고 아픈 날이면 마음에도 없는 말을 하게 된다. 마음 편하게 내 얘기를 들어주는 사람이 있다는 안심일 것이다.


 “내 방귀 섹시하지 않아?”


 처음에는 내가 열 마디를 해도 한마디도 하지 않던 사람이다. 지금은 내가 한마디를 하면 열 마디를 한다. 나보다 더 방귀를 자주 뀐다. 오늘도 그녀는 나에게 방귀 한방을 먹이고 배가 아프다며 이불을 턴다. 음식물이 배 속에서 발효되는 과정에서 생겨 항문으로 나오는 구린내 나는 무색의 기체. 창문을 열고 간밤의 애증을 털어내듯 부끄러움을 터는 것이다. 우리는 언제쯤 방귀를 튼 사이가 되었을까. 그때도 하늘이 무너질 것처럼 나는 심하게 흔들렸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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