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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OY Mar 18. 2019

나를 빛나게 해주는 사람

인간은 모두 생긴 대로 산다.

 그녀를 위해 드립 커피를 내린다. 로스팅만 잘하면 누가 볶아도 맛있다는 말처럼 잘 볶은 커피를 고를 수 있어야 한다. 커피를 직접 볶을 수 있는 정도의 수준이면 감동이겠지만, 잘 볶은 원두를 고른다는 마지막 자존심마저 포기할 수는 없다. 커피의 향을 제대로 즐기기 위해서다. 적당한 온도를 지킨다는 말이다. 선을 넘지 않는 마음을 굽는 중이다. 커피를 담아낼 컵과 포터와 서버를 먼저 적당한 온도까지 예열해야 한다. 펄펄 끓는 물을 부어야 충분한 산소를 공급할 수 있다. 신선한 커피가 머금고 있는 탄산가스를 배출하는 것이다. 커피를 내리는 것이 아니라 그녀를 향한 시간을 내리는 것이다. 백번을 내린다 해도 백번을 다 똑같은 맛을 내야 한다. 모든 순간마다 촐싹거리면 안 된다. 늘 우아하게 기품을 유지해야 한다. 드립 커피는 사람의 마음가짐이 그대로 드러나기 때문이다. 커피는 누구와 함께 마셨는가를 기억하기 때문이다.


 그녀를 위한 마사지 테라피스트(Massage Therapist). 그녀는 오늘도 대치중이다. 일곱 난쟁이들과의 약속대로 그들이 탄광의 일을 마치고 돌아올 때까지 그저 집을 지키고 있으면 되지만, 우리의 백설 공주는 그럴 수가 없다. 오늘도 마녀의 거울은 사랑에 상처 입은 그녀에게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자는 당신이 아니라고, 숲 속의 백설 공주라고 말할 것이다. 언제 마녀가 독사과를 들고 들이닥칠지 모른다. 그녀는 새벽부터 잠을 설치고 깨야하는 가사노동자이다. 일곱 난쟁이들은 모두 취향이 다르다. 일일이 다 맞추려면 감정 소모가 너무 크다. 밥을 하고, 설거지를 하고, 청소를 하고, 또 밥을 하고, 또 설거지를 하고, 또 청소를 하고. 표정 하나, 말투 하나를 살펴야 한다. 때로는 그녀에게 적당한 이완이 필요하다. 느슨한 와인 한 잔과 몽환적인 속삭임이 필요하다. 머리끝에서 발끝까지 일곱 난쟁이들의 간지럽힘이 필요하다.


 이종석의 슈트핏을 닮은 남자. 키 186cm, 로맨스는 별책부록. 동산 가운데에 있는 보기에 아름답고 먹기에 좋은 나무. 여자의 원초적인 느낌은 먹음직도 하고 보암직도 하고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러웠다. 여자가 먼저 그 열매를 따먹고 자기의 남편에게도 주었다. 금단의 열매, 신데렐라의 호박마차, 백설공주의 거울, 공통점은 모두 꼴값을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꼴값에 휘둘리는 것은 여자다. 인간은 모두 생긴 대로 사는지도 모른다. 같이 살아온 세월만큼 서로 닮기도 한다. 세상에 잘난 남자는 많다. 그녀는 남자에게 꼴값을 요구하는 것이 아닐지도 모른다. 드립커피를 내리듯 자신에게 기꺼이 마음을 내릴 수 있는 남자가 필요하다는 의미. 자신이 얼마나 힘들게 살아가고 있는지를 알아주길 바라는 것이다. 자신이 공들여서 챙긴 남자가 빛날 수 있기를 바라는 여자의 본심이다. 그 남자의 팔짱을 끼고 옆에 섰을 때, 자신을 빛나게 해주는 사람 하나쯤 옆에 데리고 살고 있다고 뽐내고 싶은 여자의 자존심을 나는 지켜주고 살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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