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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OY Apr 30. 2019

완벽한 공모자

정말 의미 있는 일을 위해서라면 돈을 낙엽처럼 태울 줄 알아야 한다. 

 바람이 분다. 봄은 끊임없이 흔들리면서 간다. 큰아이가 2학년을 마치고 밴쿠버로 돌아온다. 비행기가 지연되는 것도 바람 때문인 것 같았다. 도대체 얼마만큼 흔들려야 끄떡없이 흔들리지 않고 설 수 있게 되는 것일까. 둘째는 형이 오면 소파에서 자라고 문자메시지를 보냈단다. 옷을 사러 가면 첫째 아이는 비싸고 좋은 것을 선택한다. 둘째는 싸고 마음에 드는 것을 여러 개 고른다. 다른 방식으로 아이들을 가르친 적이 없는데도 둘은 서로 다르다. 물론 아이들은 부모의 주머니 사정을 안다. 가격표를 먼저 보고 마음에 드는 것을 결정하는 아이들이다. 


 “엄마, 나쁜 소식이 있어.”


 아들의 말에 우리는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 것 같았다. 우리 인생에 가장 기막혔던 소식이 무엇이었는지를 떠올렸다. 적당한 완충이 필요했는지도 모른다. 아이들은 크게 말썽 한번 부려본 적이 없다. 누가 일부러 가르쳐준 것도 아닌데 부모가 걱정하는 일은 하지 않았던 것 같다. 영어가 서툰 부모를 위해 학교에서 일어나는 대부분의 일을 자신들의 선에서 처리하고는 했다. 졸업식에서 본 아이들의 선생님은 부모가 너무 궁금했었다고 털어놓았다. 아이들을 가르치는 내내 행복했다는 칭찬에 저절로 먹먹해졌다. 본능적으로 더 위험한 상상을 했다. 


 “노트북이 망가졌어.”


 음료수를 엎질러서 수리 불가능 상태로 망가졌다는 말을 어렵게 끄집어냈다. 순간 우리는 서로 눈을 마주쳤다. 그렇게 큰일은 아니라는 안도의 사인이었을까, 평소에도 조심성이 없다는 사실에 대한 확인이었을까. 토론토로 출발하기 전에 애플 매장에서 가장 좋은 것으로 사주고 싶었다. 입학식도 챙기지 못한다는 사실에 대한 죄책감이었는지도 모른다. 처음으로 가족을 떠나 외지에서 홀로서기를 시작하는 아들에 대한 애틋한 응원이었을지도 모른다. 몇 년 전에는 로키를 여행하는 중에 아이패드를 차 지붕에 놓고 잊는 바람에 산산조각이 났었다. 핸드폰을 사고 며칠이 되지 않아 바닥에 떨어뜨려서 화면이 박살난 적도 있다. 자기가 꿈꾸는 일을 위해서라면, 정말 의미 있는 일을 위해서라면 돈을 낙엽처럼 태울 줄 알아야 한다는 깊은 깨달음이 있었기를 소망한다. 


 “언제 그랬는데?”


 갑자기 추리가 복잡해졌다. 지난, 겨울방학에 집에 왔을 때 깜빡 노트북을 놓고 왔다고 했었다. 동생이 군소리 없이 아이패드를 빌려주었다. 그때도 어린것이 참 정신없이 산다고 생각했었다. 굳이 서로 누구를 닮아서 그런 것이라는 암묵적인 책임 공방이 있었다. 형제는 완벽한 공모자였다. 최소한 6개월을 숨기고 살았던 것이다. 자세히 되짚어보면 거짓말은 없다. 단순히 노트북을 잊고 왔다는 말만 가지고는 거짓을 규명할 수는 없다. 6개월 동안 부모에게 말도 못 하고, 부모가 부자인 대만계 친구에게 남는 노트북을 빌려 쓰고, 털어놓아야 할 타이밍을 계산하며 마음 졸이고 살았던 세월에 대한 합당한 선처가 필요하다. 오히려 늦게라도 사실을 털어놓았다는 사실에 대한 정상참작이 필요할 것 같다.


 “너는 너무 좋은 것 사주면 안 되겠다. 중고 한번 알아봐.” 


 맘에도 없는 소리를 했다. 아들에게는 어쩌면 지난 6개월이 감옥이었을 것이다. 스스로 징역을 살고 이제 스스로 출소를 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아이에게 출소 기념으로 두부라도 먹였어야 했는데, 그만 실없는 소리를 하고 말았다. 누가 내 아이를 가두었던 것일까. 부모의 사정을 너무 빤히 아는 아이들의 계산법을 어떻게 바로잡아주어야 할까. 자신은 상처가 없다고 말하는 내 아이들의 상처를 나는 무엇으로 어루만져야 할까. 우리는 서로 눈치를 보고 있다. 말은 대충 있는 것 쓰고 있으라고 했지만 당장 내일이라도 누가 먼저 쌈짓돈을 풀어야 할 것인지, 밤새 잠 못 이루는 밤을 보내게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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