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방님 알레르기 아냐? 눈이 사슴 눈처럼 촉촉하네”
5시간의 비행, 나는 아직도 캐나다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이것이 세계에서 두 번째로 넓은 땅을 가진 캐나다의 위엄이다. 시차를 계산하면 오후 4시쯤에 토론토에 도착한다. 고도 11,582m, 속도 842km, 영하 51도. 3,426km를 날아가고 있다. 비행기를 탈 때마다 느끼는 것이 있다. 한낱 인간이라는 미물이 참 대단하게 보이는 순간이다. 어떻게 이 높이를 날 수 있고, 이 속도로 갈 수 있는지, 그리고 어떻게 이 혹한을 버틸 수 있는지를 생각한다. 세상에서 가장 먼 여행이 있단다. 머리에서 가슴까지의 여행. 머리로 완벽하게 이해한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알고 있다. 또한 가슴으로 공감하고 산다는 것이 얼마나 기적 같은 일인지 알 것 같다. 나는 이 상황을 이해하지만, 또 이해할 수가 없다. 새벽부터 잠을 설쳤기 때문에 피곤할 법도 한데 점점 또렷해진다. 자꾸만 재채기가 난다. 토론토에 볼일이 있어서 가는 김에 아들 얼굴 한번 보고 오려고 한다. 아들을 만나러 가는 길이 참 멀게 느껴졌다.
“우리 아들, 유적지에서 사네.”
아들은 낙스 컬리지(Knox College) 기숙사에서 살고 있다. 아들을 대학교에 보내고 입학식도 가보지 못했다. 2학년으로 올라가면서 조금 더 비용을 절약할 수 있는 기숙사를 찾아서 옮긴다고 했다. 백년도 더 된 오래된 건물이었다. 문을 밀고 들어가는 것부터 엄숙하게 느껴졌다. 문을 열면 긴 복도가 있고 오른쪽으로 정원이 있다. 토론토에도 봄이 오고 있기는 한 것인지. 문득 황량한 바람이 휘~잉 소리를 낸 것 같았다.
일인용 침대와 책상과 옷장이 단출하게 자리를 잡고 있다. 걸음을 옮길 때마다 마룻바닥이 삐걱거린다. 한쪽 구석에 묵은 빨래들이 쌓여있고 흙을 털지 않은 겨울 신발들이 놓여있다. 그동안 어떻게 버티고 살아왔는지 말하고 있는 것 같았다. 화장실로 가는 복도가 유난히 길게 느껴졌다. 발자국 소리가 유난히 크게 들렸다.
“아빠, 성당 보실래요?”
“성당?”
낙스 컬리지 건물에는 성당이 없다. 채플이 있다. 한 번도 들어 가본 적이 없는 그곳을 아빠가 보고 싶어 할 것이라고 생각한 것 같다. 누구 하나 자신을 반겨줄 사람이 없었을 이 방을 들어설 때마다 아들은 매일 낯선 곳으로 들어가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아마도 2학년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공항에서 아들은 엄마에게 전화를 할 것이다. 엄마가 끓여준 김치찌개가 먹고 싶다고.
이제 다시 밴쿠버로 돌아가야 한다. 토론토 공항으로 가는 길에 진눈깨비가 내린다. 4월의 진눈깨비. 그래, 아직 멀었다. 나는 토론토에 봄의 전령으로 갔는지도 모른다. 나는 수컷들의 대화에서 밴쿠버의 봄을 열띠게 얘기했고, 봄은 동쪽으로 간다고 말했다. 토론토는 아직 삭막하다고 마음으로 결론을 내렸다. 토론토에 머무는 이틀 동안 잠을 설쳤다. 해외를 간 것도 아니고, 고작 3시간 차이 때문에 시차라니, 벌써 그런 서글픈 나이가 된 것인지도 모른다. 카페인의 각성 때문이기도 하고, 낯선 곳에서 낯가림이 심한 못난 성격 때문이기도 하다. 토론토 공항 안에서 캐리어를 끌고 1시간 정도를 걸었다. 이미 몇 번 눈을 마주쳤을 때, 슈샤인보이에게 구두를 닦아야겠다고 마음을 먹었다. 구두를 신고 커다란 의자에 왕처럼 앉았다. 사람들이 어디론가 떠나고 있다. 아니 나처럼 돌아가는 중일지도 모른다. 돌아갈 수 있는 집이 있고 기다리는 사람이 있다는 것이 이처럼 가슴 벅찬 일이었다는 것을 처음 알게 된 것처럼 괜스레 눈가가 촉촉해지는 것 같았다.
“서방님 알레르기 아냐? 눈이 사슴 눈처럼 촉촉하네”
아침부터 아내가 콧물을 흘리고 재채기를 시작했다. 감기 기운이 있다고 생각했는데 그녀가 농담처럼 웃으면서 말한다. 증상으로 보아서는 꽃가루 알레르기 같단다. 토론토에서 어제저녁 늦게 도착한 나를 보고 생긴 병이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