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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OY Apr 11. 2019

세상에 단 하나뿐인 내 편

돌이켜보면 친구 같은 아빠가 되지 못한 것이 못내 아쉽다.

 첫째는 온유하다. 둘째가 엄마 배 속에 있을 때부터 엄마 배를 만지면서 동생을 기다렸던 아이다. 동생이 태어나면 많이 예뻐해 주라는 말에 걸음마도, 기저귀도 스스로 떼었다. 혼자 베개에 누워 젖병을 두 손으로 붙잡고 먹었다. 동생을 업고 있는 엄마 손을 잡고 하염없이 걸었다. 자기는 형이기 때문에 한 번도 업어달라고 떼를 써본 적이 없는 아이다. 누군가가 동생을 안고 자기 집에 데려가겠다는 장난에도 눈물을 글썽거리던 아이였다. 같은 반 친구가 발달 장애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자신은 뇌 과학 분야를 공부하고 싶다는 꿈을 정한 아이다.


 둘째는 사랑스럽다. 태어날 때부터 사랑을 많이 받고 자랐다. 태어나는 날, 엄마보다 더 힘을 쓰느라 얼굴은 새빨갛고 쭈글쭈글했다. 아내의 표현법에 의하면 못생기기가 한량없었다. 핏줄이 선 눈썹은 일자로 전부 이어져 있어서 호랑이 얼굴 같았다. 마치 아빠 엄마의 목소리를 기억하는 것처럼 태명을 부를 때 생긋거리던 모습을 잊을 수가 없다. 아이의 왼쪽 뺨에는 보조개가 있다. 아이들과 딱지치기를 하는 날은 목 임파선이 부어왔고, 편식이 너무 심해서 아토피와 변비를 달고 살았다. 똥꼬를 파는 날을 정해야 했다. 아토피는 밴쿠버에 도착해서 거짓말처럼 사라졌다.


 둘은 세상에 단 하나뿐인 친구처럼 지냈다. 캐나다에 와서 법을 어기면서까지 아이들만 집에 두고 외출을 해야 하는 상황이 있었다. 아이들은 커튼을 내리고 혹시라도 소리가 새어나갈까 싶어 텔레비전을 틀지도 않고 온종일 레고를 가지고 조용히 놀았다. 놀다가 지치면 책을 읽으면서 놀았다. 아이들의 소꿉장난은 진지했다. 졸업할 때까지 농구도 같이 했고, 배드민턴도 같이 했다. 첫째는 정교하고 지능적인 플레이를 잘했고, 둘째는 스피드와 힘이 있었다. 아들들은 지금까지 크게 말썽 한번 피운 적이 없다. 우리의 기억이 주관적일 수 있겠지만 적어도 우리에게는 그렇다.


 “너희가 엄마 얼굴에 토한 적도 있어.”

 “엄마는 내가 한글 못 읽는다고 책 집어던졌잖아.”

 “내가 너 똥꼬도 파냈어.”


 아이들을 키우면서 한 번도 매를 들어본 적이 없다. 매보다 부모의 말이 더 힘이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야단을 쳐야 할 때는 내가 악역을 맡고 아내는 천사가 되기로 했다. 한 사람은 혼을 내고 한 사람은 침묵하는 것이다. 야단을 맞고 눈물을 뚝뚝 흘리거나 시무룩한 아이를 끌어안고, 모든 판단을 유보한 채 아이들의 얘기를 들어주기로 했다. 혼을 내는 부모의 권위를 존중하기를 바랐다. 그리고 세상에서 단 하나뿐인 내 편을 아이들에게 만들어주고 싶었다. 엄한 아빠일지라도 아이들에게는 아빠의 자리가 어디인지 아는 것이 필요했다. 요즘도 첫째는 한 시간이 넘도록 전화통을 붙잡고 엄마와 시시콜콜한 얘기를 한다. 아이들이 집에 돌아오는 날에는 엄마에게 전화를 한다. 엄마만이 자기들에게 만들어 줄 수 있는 엄마표 따뜻한 국물 한 그릇을 찾는다. 


 아이들에게 고맙다는 말, 사랑한다는 말, 미안하다는 말을 건네야 할 때가 있다. 그때는 우리의 감정과 상관없이 세상에서 가장 빠른 속도로 아이들에게 다가가려고 한다. 변함없이 주저하지 않고 고맙다는 말, 사랑한다는 말, 미안하다는 말을 잊지 않는다. 우리는 아이들이 고맙고, 사랑스럽다. 그리고 때로는 더 좋은 부모일 수 없어서 미안하다. 어떤 부모라도 나쁜 부모이고 싶은 사람은 없다. 부모의 나쁜 점은 하나도 닮지 말고, 부모의 좋은 점만 골라서 닮기를 바란다. 우리는 우리가 겪은 아픔을 우리의 아이들이 겪게 되지 않기를 기도한다. 크고 작은 갈등들이 있다. 같이 견디다 보면 아이들이 혼자서도 견딜 수 있는 힘이 생길 것이라고 믿었다. 아이들은 어느새 훌쩍 커버렸다. 이제는 아이들이 혼자서 견디고 있는 모습을 보는 것이 아프다. 돌이켜보면 친구 같은 아빠가 되지 못한 것이 못내 아쉽다. 아직은 같이 견디는 연습을 해도 될 것 같은데, 아이들은 혼자서 버티는 연습을 하는 것처럼 진지하다. 아직은 기꺼이 세상에 단 하나뿐인 내 편이 되어줄 수 있는데, 아이들은 마치 자신의 편이 되어줄 또 다른 사람을 찾고 있는 것처럼, 실감 나는 소꿉놀이를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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