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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OY May 15. 2019

보아도 볼 수 없고 들어도 들을 수 없는

그 흔한 카네이션 한 송이도 달아드리지 못했다.

 보아도 볼 수 없고 들어도 들을 수 없는 일들이 있다.


 숲에는 이름 모를 새들이 있다. 이름 모를 새들이 나에게 말을 건다. 걸음을 멈추면 잠시 멈췄다가 이내 다시 말을 건다. 내 뒷모습이 보이지 않을 때까지 끊임없이 지저귄다. 생긋했던 봄은 풀숲을 이루며 한층 여름 빛깔을 낸다. 풀숲에는 이름 모를 꽃이 만발하다. 허리춤까지 자란 풀숲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들이 궁금할 때가 있다. 보아도 볼 수 없고 들어도 들을 수 없는 일들이 있다. 세상의 모든 소리를 다 해석할 수 없고 눈에 보이는 것이 전부가 아닐 때가 있다. 사실 너머에 내가 모르는 진실이 있고, 진실 너머에도 내가 닿지 못한 무엇인가가 있을 수도 있다.



 노인들이 외로운 나라


 미국 캔자스시티의 한 식료품 가게에서 일하고 있는 에바 베츠는 최근 15,000달러의 수표를 유산으로 받았다. 그녀는 가게를 자주 방문하는 칼 한젤리우스라는 노인의 쇼핑을 돕거나 병문안을 가기도 했다. 그가 거동이 불편했기 때문이다. 평소 말수가 적고 혼자 살고 있던 노인은 숨을 거두면서 항상 밝은 미소로 그를 맞아주었던 에바에게 유산을 남겼다.  


 미국 텍사스의 루비스(Luby's)라는 식당에서 벌어진 일이다. 윌터는 세계 2차 대전의 참전용사로 전쟁 후유증을 겪고 있었다. 윌터의 무례하고 까다로운 주문 때문에 종업원들은 모두 그를 피했다. 그러나 멜리나만큼은 윌터의 사정을 진심으로 이해하려고 했고 7년 동안 전속 종업원처럼 친절하게 그를 맞았다. 단골손님이었던 윌터가 한동안 나타나지 않자, 멜리나는 수소문 끝에 노인이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다. 그리고 윌터가 남긴 유언을 전해 들었다. 그의 모든 재산을 멜리나에게 준다는 것이었다. 윌터에게 필요했던 것은 식당의 음식이 아니었을지도 모른다. 자신에게 따뜻하게 대해준 멜리나 살라자르(Melina Salazar)에게 보답하고 싶었다는 그의 유언은 많은 사람의 마음을 울렸다.


윌터와 멜리나, 출처. https://www.insight.co.kr/news/126319


 그녀의 위대한 이름은 엄마다.


 오늘은 마더스데이(Mother's Day)다. 우리 집 남자들이 유일한 여자인 아내에게 손에 물을 묻히지 않도록 배려하는 날이다. 꽃다발을 사고 아들들이 스테이크를 굽기로 했다. 나는 설거지를 하기로 했다. 둘째는 참치를 한 마리 사서 엄마가 좋아하는 회를 뜨자고 했다. 유튜브에서 본 대로 하자면 소 한 마리도 부위별로 해체할 수 있을 것이다. 질 좋은 소고기를 사서 양념을 뿌리고 재운 다음 프라이팬을 달군다. 올리브 오일과 버터를 곁들어서 육즙을 뺏기지 않고 굽는다. 첫째가 감자를 삶고 매시 포테이토를 만들고 있다. 그래이비 소스를 얹을 것이다. 오븐에서는 아내가 좋아하는 송이버섯과 각종 야채가 익고 있다. 우리 집 남자들의 레시피는 경험 미숙에서 나오는 오지랖처럼 어설프다. 기름에 살을 데고 호들갑을 떠는 둘째나, 너무 익어서 바삭거리는 송이버섯을 맛있지 않냐고 묻는 첫째나, 설거지를 하다가 아내가 아끼던 컵을 깨뜨린 나나, 남자들이 모두 가지고 있는 레시피를 아내만 가지고 있지 않다는 것이 그녀가 위대한 이유이다. 아내는 우아하게 드라마 한 편을 보고 계신다. 그녀의 위대한 이름은 엄마다.



 어머니가 외롭다.


 정작 우리의 어머니들에게는 전화 한 통이 전부였다. 아내도 나도 그 흔한 카네이션 한 송이도 달아드리지 못하고 있다. 여동생이 아프면서 어머니의 보이스톡 패턴이 바뀌었다. 시차도 계산하지 않고 우리가 잠든 새벽에 보이스톡을 하시기도 한다. 잠결에 받은 목소리를 알아채시고는 얼른 미안하다며 끊어 버린다. 우리는 이미 놀란 마음에 잠이 깨어버렸다. 여동생에 대한 소식 하나라도 더 전하려는 마음이 급하셨을 것이다. 어쩌면 어머니는 자신의 마음을 기댈 수 있는 목소리라도 들어야 했는지도 모른다. 지금 옆에 있어줄 누군가가 필요하다고 말씀하고 싶은 것은 아니었을까. 장모님도 덩달아서 자주 카카오톡으로 전화를 하신다. 사돈댁 안부가 궁금하실 것이다. 혹시라도 딸의 마음은 어떨까 싶어서 전화를 하시는 것이다. 그냥 심심해서 하셨다는 말이 자꾸 마음에 걸린다. 며칠 광주에 다녀오신다고 혹시 전화를 받지 않아도 걱정하지 말라고 하시면서 전화를 끊었다. 지금 어머니들이 외롭다. 그녀들은 누구에게 마음을 기대고 사실까. 어머니의 마음을 기댈 누군가가 지금 옆에 있었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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