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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OY Mar 16. 2019

갈매기가 하이에나처럼 되는 법

사람들 소리에 신경을 끄고 슬로 푸드 방식으로 미쳐야 한다.

 


 짜증이 확 몰려왔다. 

세차를 한 날, 진짜 예의 없이 비가 오는 것은 머피의 법칙 혹은 천재지변이다. 

그러나 오늘처럼 차 전면 유리에 묻은 새똥의 파편에 대한 책임의 전가는 일단 불특정 다수의 새에게로 향한다.

싸가지가 없다는 둥, 왜 하필 거기냐는 둥, 도대체 뭐를 처먹었냐는 둥, 왜 아무 데나 싸냐는 둥, 많이도 쌌다는 둥... 

그러나 재수가 없기는 매한가지고 한마디로 재수가 없다는 소리다. 


 “나는 왜 이토록 사소한 것에 분노하는가?” 

투덜거리며 차의 시동을 켰을 때 문득 도시에서는 낯선 새의 울음소리가 들렸다. 

갈매기였다. 

먼 바다, 항구, 하구, 하천에 무리를 이루어 서식하며 수면 위로 낮게 날다가 떠오르는 어류를 잡아먹는 새.

바닷가의 한가로움을 상징하고 항구를 떠나는 배와 갈매기 울음소리가 겹쳐질 때는 이별의 슬픔을 상징하는 새.

지금 이 곳은 바닷가까지 자동차로 평균 시속 70km로 달릴 때 약 35분이 떨어져 있는 도시이다. 

매트로 밴쿠버라고 불리는 도시 중에 인구수 2대 도시의 다운타운 한복판 주차장이다. 

수십 마리의 배고픈 갈매기가 먹이를 포착하기 위해 선보이는 군무. 

그 속에서 원래 원주민처럼 살고 있었을, 속조차 시커멓게 느껴지는 까마귀들의 희번덕거림. 

최소한 이 계절에는 완벽한 그러나 너무도 낯선 화이트와 블랙의 조합이다. 


 누군가 새들에게 먹이를 주고 있었다. 

매일 같은 시간에 새들에게 먹이를 주고 있다는 그 사내의 사연을 아직까지 듣지는 못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갈매기가 하이에나처럼 먹이를 찾아 바다를 떠나 이 도시의 다운타운까지 왔다는 것이다.

아무리 갈매기가 아무거나 먹는 잡식성이라고 하나, 하이에나처럼 썩은 짐승의 고기를 찾아 헤매는 갈매기는 너무 심한 감성의 파괴이다.


 * “먹이를 찾아 산기슭을 어슬렁거리는 하이에나를 본 일이 있는가. 

짐승의 썩은 고기만을 찾아다니는 산기슭의 하이에나.

나는 하이에나가 아니라 표범이고 싶다. 

산정 높이 올라가 굶어서 얼어서 죽는 눈 덮인 킬리만자로의 그 표범이고 싶다.

자고 나면 위대해지고 자고 나면 초라해지는

나는 지금 지구의 어두운 모퉁이에서 잠시 쉬고 있다.”


 두 가지의 경우의 수를 추측했다. 

첫째, 갈매기들이 살고 있는 바다에 먹을 것이 충분하지 않다는 것이다. 

이 자리를 빌어서 구조적 불평등과 극심한 취업난 그리고 불확실한 미래 때문에 헬조선을 이야기하는 이 시대의 모든 청년들에게 안타까움을 표한다.

둘째, 일부의 갈매기들이 슬로 푸드 같은 바다만의 생존법을 감내하지 않고 패스트푸드 혹은 인스턴트식 도시적 생존법을 선택한 것이다. 

다시 부언하면 인간들만이 아니라 현대의 갈매기들조차도 아날로그식 생존법이 아니라 디저털 방식으로 생존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슬로 푸드는 느림의 미학이다. 

자연이 순응하고 있는 시간의 흐름에 따라 성장한 제철 유기농 식품을 사용하고 화학조미료를 전혀 사용하지 않으며 정성스럽게 만들어 그 음식에 대해 생각하고 음미하며 건강하게 먹고 마시는 전반적인 식습관을 의미한다. 

천천히 기다리고 마음을 담는다는 것에 대한 의미가 사라져 가는 전통적인 식재료나 요리 방식을 지키고 가르치며 지지한다는 것이다. 


 전기적인 신호는 아날로그 방식과 디지털 방식으로 구분할 수 있다. 

아날로그는 시침과 분침 그리고 초침이 연속적으로 흐르면서 시간을 가리키는 시계처럼 연속되는 값으로 표현되는 정보를 말한다. 

반면에 디지털은 초까지 시간을 정확하게 알려주는 전자시계처럼 모든 정보를 0과 1이라는 2개의 숫자를 조합한 2진법을 사용하여 표시한다. 

아날로그 정보는 흰색과 검은색을 희다, 하얗다, 검다, 새까맣다 등 아주 사소한 정보의 차이도 표현할 수 있지만 정확성과 구체성이 떨어진다. 

그 말의 의미가 개인에 성향에 따라 달라지기 때문에 서로 다른 의미로 오해할 수도 있다.

디지털 정보는 흰색과 검은색을 나타내는 말은 희다와 검다 둘밖에 없어 정확성이 높고 혼동을 일으킬 염려가 없다. 


 지금은 일부의 갈매기들이지만 만약 바다의 모든 갈매기들이 도시의 다운타운으로 날아온다는 사실을 가정만 해도 나는 끔찍하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바다에 먹을 것이 없든, 누군가 던져주는 먹이에 길들여진 일부의 갈매기들이든, 더 이상 빠지고 매이고 갇히기 싫은 일탈의 갈매기들이든, 하이에나처럼 먹을 것을 찾는 본능에 충실했던 그 도시의 갈매기들은 전통과 구태에 신경을 껐다는 것이다. 

그리고 살기 위해 그리고 부양을 위해 모든 감각을 집중했고, 또 살기 위해 그리고 부양을 위해 도시까지 비행을 선택했고, 그 비행에만 전념했다는 것이다.

자고 나면 위대해지고 자고 나면 초라해지는 나일지라도 산정 높이 올라가 굶어서 죽든 얼어서 죽든 눈 덮인 킬리만자로의 표범이고 싶었을 것이다. 

단 한순간이라도 하이에나처럼 살고 싶은 킬리만자로의 표범이 있었을까? 

그래서 내린 결론이다. 

오늘, 나는 선택해야 하고 집중해야 한다. 

사람들 소리에 신경을 끄고 아날로그 방식으로 미쳐야 하고, 슬로 푸드 방식으로 미쳐야 한다.

비행하는 모든 순간들, 감각 전부를 동원해서 냄새를 맡아야 한다. 

더 높이 날아야 한다. 

날갯죽지가 타는 듯한 고통을 견뎌야 한다. 

도시 한 복판에서 새들에게 먹이를 주고 있는 한 사내의 사연을 들으려면 조금은 스스로 고개를 갸우뚱거려야 한다.


* 조용필의 킬리만자로의 표범에서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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