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데요, 선생님. 퇴사해서 안 좋은 것도 있나요

by 은지금

흔히 직장인으로 사는 것과 퇴사 후 비직장인으로 사는 건 다르다고 알려져 있다. 대체 누가 이런 거짓말을 퍼뜨리는 건가. 이제부터 진실을 알려주겠다. 그냥 다른 게 아니다. 완전, 진짜 완전 완전 다르다. 이렇게 진실을 얘기해 봤자 불쌍한 직장인들은 눈을 껌벅이며 뭐가 그렇게 다르다는 건지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을 짓는다. 안타까운 일이다. 이건 겪어보지 않으면 모르는 건데. 진짜 좋은 건데. 이 좋은 걸 설명할 방법이 없네.


퇴사하면 좋다는 얘기를 반복하고 있다는 사실을 문득 깨달았다. 똑같은 얘기를 계속하면 지루해질 뿐 아니라 신뢰가 떨어질 수 있다. 위험하다. 현 직장인들이 이 글을 읽다가 멈추길 바라지 않는다. 퇴사 후의 세계를 좀 더 소개해 줘야겠다. 단순히 좋기만 한 가상 세계가 아닌 발을 땅에 붙이고 있는 진짜 세계. 먼저 간 좋은 길을 혼자만 알아선 안 된다. 물론 누가 시킨 일은 아니다. 하지만 그것이 곧 퇴사자의 소명 아니겠는가.


스크린샷 2025-01-01 185058.png 퇴사란 정말로 좋은 건데, 표현하기가 참 어렵다. 천호식품 유튜브 캡쳐


좋지 않은 얘기를 꺼낼 때다. 근데요, 선생님. 퇴사해서 안 좋은 것도 있나요?라는 생각이 들었다면 당신은 합격. 이 글을 더 이상 읽지 않아도 되고, 내일 아침 출근해서 퇴사를 선언해도 손색이 없습니다. 하지만 대부분은 퇴사가 생각보다 위험한 일이라는 사실을 안다. 직장인들은 당장 퇴사할 수 없는 이유 5가지 정도를 주머니에 넣고 다닌다. 퇴사가 고민되는 이유를 말해보라고 하면 5초 안에 3가지 이상 나열해 내는 것이 이 시대의 진짜 직장인 아니겠는가. 나 역시 다르지 않았다. 그만두고 싶은 마음이 커지는 것에 비례해 퇴사할 수 없는 이유의 숫자도 늘어났다. 퇴사를 막는 가장 큰 적은 나다.


아무래도 퇴사를 하면 그동안 생각했던 고민거리가 다른 모습으로 변신해 나타나기 시작한다. 가장 먼저 등장하는 건 불안이란 녀석이다. 정확히는 ‘미래’에 대한 불안이다. 일단 어떻게 회사는 나왔는데, 앞으로 뭘 해서 먹고살아야 할지 알 수 없다. 불안은 또 다른 불안을 먹고 자란다. 물을 주지 않고 가만히 놔둬도, 가지치기나 분갈이를 하지 않아도 아주 쑥쑥 자란다. 종도 다양하다. 내 미래가 지금보다 더 어두워질 수 있다는 두려움. 최악의 경우는 직장에 다니던 순간이 훗날 내 인생에서 가장 빛났던 순간으로 남을지 모른다는 걱정. 뭘 해 먹고살아야 하나, 다른 회사에서 날 받아주기는 할까, 매달 돌아올 카드 대금 청구서와 대출 이자는 언제까지 막을 수 있을까. 이 중 하나라도 지금 당장 해결할 수 있는 게 있을까. 그럼 난 정말로 큰일 난 건가. 택시 기사님, 전 이제 어디로 가야 하죠.


스크린샷 2025-01-01 185811.png 어디로 가야 하는지는 김연우 아저씨도 모른다. EBS 유튜브 캡쳐


그래도 불안은 내 안에 붙들어두며 관리할 수 있다. 시간이 지나면 이겨낼지 모른다는 흐릿한 희망의 그림자라도 보인다. 정말 곤란한 건 나를 보는 사람들의 눈빛이다. 퇴사자를 앞에 두고 앞으로 뭐 할 건지, 계획은 있는지를 묻는 순간은 대화보다 면접이나 청문회에 가깝다. 당신은 지금까지 무슨 생각으로 살아왔나요. 이렇게 살았는데 앞으로는 어쩔 작정으로 회사를 나온 거죠. 계획대로 되지 않았을 때를 대비한 두 번째 계획은 있나요. 세상이 그렇게 만만해 보이나요. 꾹 참고 회사에 다니는 사람들은 바보인가요. 당신은 탈락입니다. 안타깝게 됐군요. 이 세상에 당신이 있을 자리는 없습니다.


어찌어찌 대답하더라도 상대가 원하지 않는 방향으로 흐를 때가 있다. 그때 전에 본 적 없는 차가운 눈빛을 목격할 수 있다. ‘겨울왕국’을 만든 엘사도, 피도 눈물도 없는 영화 속 빌런도 이 정도 온도의 눈빛을 연기하지 못했다. 그 눈빛을 목격하면 반사적으로 지금까지 내가 벌인 행동을 시간 역순으로 되돌아보게 된다. 이상한 기분이 들기 때문이다. 따스한 햇살과 산들산들 불어오는 바람에 자연스럽게 잠에서 깬 평화로운 아침, 이상하게 하는 일마다 술술 잘 풀려버린 오후의 사무실에서 우리는 뭔가 잘못됐다는 걸 직감한다. 전 국민이 국어 교과서에서 ‘운수 좋은 날’을 읽은 민족 아니던가. 유튜브에 나온 설렁탕 맛집에서 배민으로 포장해 왔는데, 왜 먹지를 못하니. 대체 왜.


현진건 선생님은 아셨을까. ‘운수 좋은 날’이 좋은 일이 있어도 좋아할 수 없는 럭키 트라우마를 100년 후 전 국민에게 심어주게 된다는 걸


갑자기 나타난 내 안의 불안과 타인의 차가운 시선을 기쁘게 받아들일 사람은 없다. 전에 없던 험한 것이 갑자기 나타나 당황스럽지만, 어쩌면 퇴사를 결심한 순간 예정된 미래일 수 있다. 극복하고 없애야 할 대상보다 키링처럼 앞으로 계속 달고 살아가야 할 새로운 동반자에 가까울 수 있다. 안정된 미래와 친절한 동료가 사라진 자리를 슬프게 응시하지 않아도 괜찮다. 그 빈자리는 전에 없던 희망과 처음 보는 동료가 들어설 곳이기도 하다. 좋거나 좋지 않다고 느끼는 변화는 모두 새로운 삶을 시작하는 과정의 일부다. 비워야 담아낼 수 있다는 비움 보존 법칙은 화장실에서만 통용되는 것이 아니다. 그래도 전 당장 비워야 한다는 얘기는 못 들었는데요. 이렇게 아프고 슬픈데요. 익숙해지는 날이 온다고요? 그게 언젠데요. 정말, 그날이 오기는 오는 건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