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부터는 우리 달라진 모습으로 만나자고 약속이라도 한 걸까. 퇴사 전후 가장 달라진 시간은 아침이다. 수많은 아침이 있었다. 매일 모습을 달리하며 날 괴롭히던 아침들. 눈을 뜨면 시작될 싸움에서 질 것 같아 억지로 눈을 감고 있던 적도 많았던 날들. 이제 싸울 필요는 없어졌다. 따스하고 포근히 감싸 안아 주는 아침이 매일 맞아준다. 내일은 어떤 아침이 펼쳐질까 기대될 정도. 전 이제 더 이상 아침이 무섭지 않아요. 이리 와, 내 아침. 내일 웃으며 또 만나자.
달라진 게 나인지, 아침인지 모르겠지만 분명 달라지긴 달라졌다. 마음속으로 ‘10분만 더’, ‘5분만 더’를 외쳐야 했다. 내 몸 상태를 잘 모르는 아침과 기상 시간을 여러 차례 협상해야 했다. 소리치고 협상하고 싸워도 언제나 지는 건 나였다. 지금은 다르다. 이상할 정도로 기분 좋게 깨어나도 무섭지 않다. 고작 1분 늦게 나왔다는 이유로 소소하고 확실하게 지각할 위험은 눈 녹듯 사라졌다. 한 손으로는 양치를, 다른 한 손으로는 어플로 날씨를 체크하며 믿을 건 지하철 시간표였던 시간은 갔다. 낭비 따윈 없는 최적의 효율 동선을 아침마다 되새기지 않아도 괜찮다. 오랜 시간 날 괴롭힌 아침 트라우마는 사라졌다. 극복!
해가 떴다고 아침이 아니다. 회사 갈 시간이라고 아침이 아니다. 해가 몇 시에 뜨든, 세상 사람들이 몇 시에 일어나든 중요하지 않았다. 세계 시간의 기준은 그리니치 천문대로 정했지만, 내 시간의 기준은 내가 정한다. 내가 내 세상의 왕인 것처럼, 내가 일어나는 시간과 아침의 시작을 내가 정할 수 있게 됐다. 짐이 ‘지금부터 아침!’이라고 선언하는 순간이 아침이니라. 음? 누구인가? 지금 누가 아침 소리를 내었어? 누가 아침 소리를 내었는가 말이야.
이제 더 이상 시계를 확인하고 5분만 더 잘지 고민하지 않아도 되는 평온한 날들이 이어진다. 내가 사는 곳은 자고 싶으면 다시 자면 되는 세계다. 당연히 가졌어야 하는 아침을 되찾기까지 오래도 걸렸다. 이게 진정 아침의 진짜 매력이었던가. 이제야 아침의 참맛을 보다니. 그동안 미워하고 욕하고 싸웠던 아침에게 미안한 마음도 든다. 미안, 내가 그동안 너를 오해한 것 같아. 우리 이제부터 사이좋게 지내지 않을래?
눈만 뜬 채 핸드폰을 들고 침대에서 시간을 즐기는 아침도 좋다. 피곤한 상태로 1초 같은 10분을 잠으로 보내던 아침은 오래전 일만 같다. 비몽사몽인 상태로 어제 보다가 만 SNS를 해도, 나와 아무 관계없는 세상사를 뉴스로 훑어도 꿀맛이다. 신이 아침을 창조했을 때 목표로 했던 모습이 혹시 이런 거였나. 의사들이 거듭해서 강조하는 충분한 수면이 이런 거였나. 이 약만 먹으면 아침이 달라진다고 호언장담하는 광고의 결과물이 이런 거였나. 아침이 원래 이런 거였다고 왜 아무도 말해주지 않았나.
회사로 출근하는 아침, 나 스스로에게 허락한 준비 시간은 10분이었다. 아침 햇살에 눈을 찡그리며 애벌레가 허물을 벗듯 그 자리에서 옷을 모두 벗어야 했다. 남들에게 패션 감각을 어필할 의상 매치를 고민할 시간은 없었다. 가장 먼저 눈에 띄는 옷이 나의 데일리 패션이었다. 화장실에선 유독 시간이 빨리 흐른다는 걸 기억해야 했다. 거울을 보며 얼굴 상태를 꼼꼼히 확인할 시간은 없었다. 충치가 생기지 않도록 치아와 잇몸 구석구석 칫솔을 밀어 넣을 시간도, 어떤 화장품을 선택해 어느 정도의 양을 바를지 고민할 시간도 아침엔 사치였다. 지하철을 운전하는 기사님이 오늘은 정해진 시간보다 더 빨리 운행하지 않으시길 기도해야 했다. 구겨 넣은 신발은 현관을 나가며 정리해야 했다. 오랜 기간 나와 함께한 아침에게 이별을 고할 시간이다. 아침아, 혹시 서운하게 생각하는 건 아니지? 우리 그동안 충분히 오랜 시간 함께했잖아. 너도, 나도 많이 힘든 시간이었잖아. 이게 맞다는 걸 우린 알잖아. 그렇지? 그러니까 이제 우리 다시 만나지 말자.
새롭게 찾아온 아침은 불면의 밤을 가지고 돌아왔다. 오전 7시에 잠들어 오후 2~3시에 일어난 날도 많다. 어제 새벽 5시에 잤다는 사실을 말하면, 직장인1들의 놀람과 걱정이 쏟아진다. “진짜 늦게 자는구나” “그렇게 자도 괜찮아?” “좀 일찍 자는 게 어때” 등등. 그땐 “그건 늦은 것도 아니에요” “제가 늦게 자는 게 아니라, 다른 사람들이 빨리 자는 것 같은데요” “일찍 일어나는 건 이제 그만할래요”라고 대답하고 싶지만, 되도록 웃어넘긴다. 원만한 대인 관계와 품위 유지는 퇴사자를 지키는 갑옷이다. 저기, 제가 자는 시간은 남이 아니라 제가 정하는 거거든요. 여러분들도 한 번 그렇게 살아보는 게 어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