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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조이 Dec 28. 2020

토니 모리슨 - 빌러비드

인생. 어쩌면 가능할지도 몰라.

이 소설은 노예제에 관한 것이 아닙니다. 노예제만으로는 이런 소설이 나올 수 없습니다. 이 소설은 어떤 사람들의 내면적 삶에 대한 것입니다. 글로 쓰기엔 분노는 너무 시시하고 연민은 너무 질척거리는 감정입니다.
- 토니 모리슨, <뉴욕 타임스>, 1987


토니 모리슨에게 노벨상을 안겨준 <빌러비드, Beloved>는 노예라는 운명의 대물림을 끊기 위해 딸을 죽인 흑인 여성의 실화를 바탕으로 흑인들의 참혹한 역사를 재조명하고, 그들의 내면적 삶을 이야기한다. 이 소설은 위 인터뷰에서 저자가 말하듯 그저 분노와 연민만을 담고 있지 않다. 노예제의 참상을 휴머니즘적으로 접근하여 연민을 이끌어내는 것 대신 소설적 상상력을 통해 '차마 기억할 수 없고, 말할 수 없는 것들을 꺼내게 하고, 과거와 현재가 서로에게 영원히 들려줄 수 없을 것 같았던 원망과 위로와 사랑의 말을 주고받게 한다.' 1) 그렇게 영영 벗어날 수 없을 것 같았던 과거와 작별하고, 영영 오지 않을 것 같았던 희망과 미래로 한 발짝 내딛게 한다.


이 책에 나오는 인물들은 하나하나 다 아프다. 자식을 사랑하기 때문에 제 손으로 죽여야만 했던 '세서'. 노예생활로 몸이 망가져 심장 하나 남았지만 그마저 백인들로 인해 망가져버린 '베이비 석스' ("저 흰둥이들은 내가 가진 모든 걸, 내가 꿈꿨던 모든 걸 빼앗아갔어. 그리고 내 심장마저 부숴놓았지. 세상에 불운 따위는 없어. 흰둥이들이 있을 뿐이지.") 욕망에 자물쇠를 걸고, 고통과 욕망은 심장 대신 뚜껑이 녹슨 담뱃갑에 다 집어놓고 오직 생존만을 위해 살아가던 '폴 디'. 운좋게 죽음과 노예제의 대물림은 피했지만, 외로움이라는 지독한 허기에 시달려야 했던 아이 '덴버'. 그리고 무한한 사랑을 갈망하는 탐욕스러운 유령 '빌러비드'. 자식을 사랑할 자유가 허락되지 않아 사랑이 삶을 위협하던 시대를 살아가던 엄마들.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욕망을 거세당한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는 처참하다. 하지만 동시에 처참함을 이겨내는 짙은 사랑과 치유가 있다.


엄마 ‘세서’와 딸 ‘덴버’ 그리고 원혼들이 살아가는 집에 ‘폴 디’와 ‘빌러비드’가 찾아오면서, 이제는 딱지가 앉아버린 상처가 헤집어진다. 의식적, 무의식적 망각 아래 놓여진 기억과 말들이 하나둘 꺼내어진다. 그렇게 제대로 아파하지 못한 상처를 들여다보고 아파하고, 애도할 시간을 18년 만에 비로소 갖게 된다. 과거와 화해하는 법은 결국 과거를 충분히 아파하고, 애도하는 것. 그 전에 딱지가 앉아버리면, 담뱃갑안에 욱여넣어버리면, 결코 과거와 화해할 수 없고, 치유될 수 없다. 이 과정을 통과한 후에야 세서는 과거와 다른 선택을 하고, 덴버는 ‘세상에 잡아먹힐 각오를 하고, 귀를 영영 막아버릴 만한 말이 튀어나올 수 있는 바깥세상’으로 걸어나간다. 그렇게 124번가에 고여있던 시간이 다시 흐르기 시작하고, 함께 살아가던 과거의 망령들이 사라진다. 2) 죽은 자들의 처절하고 슬픈 아우성 대신 산 자들의 말소리가 들린다.


나는 이것이 출몰하는 우리의 과거, 그리고 그녀의 과거가 되길 바랐습니다. 과거. 유령처럼 불쑥불쑥 찾아오는 과거 말이죠. 기억은 결코 우리를 떠나지 않는 법입니다. 그것과 정면으로 부딪쳐 돌파해나가기 전까지는.
- 토니 모리슨, <뉴욕 타임스>, 1987


노예제 사회를 살아가던 흑인 노예들의 고통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살아가면서 감당할 수 없는 고통이 찾아올 때마다, 두려움과의 싸움에서 처참하게 나가 떨어질 때마다 만들어진 트라우마는 매번 망각 아래 숨어든다. 그것들은 하나같이 깊은 상처들이었다. 왜 상처를 들여다봐야 하는가? 그러한 상처는 어떻게 치유해야 하는가? 이 책을 읽으면서 생각해보면 어떨까? 게다가 노벨문학상 수상작답게 아름다우면서 통찰력 넘치는 비유와 문장이 가득하다!


무엇이든 선택해서 사랑할 수 있는ㅡ욕망해도 좋다는 허가를 받을 필요가 없는ㅡ곳에 도달하는 것. 그래, 그게 바로 자유였다.
"당신의 사랑은 너무 짙어"
"사랑이 그런 거야. 그렇지 않으면 사랑이 아니지. 옅은 사랑은 사랑이 아니야."
오하이오의 계절은 연극적이었다. 계절들은 저마다 이 세상에 인간이 사는 건 자신의 공연 때문이라고 확신하며 프리마돈나처럼 당당하게 입장했다.



인용 1) 빌러비드 해설 '빌러비드, 차마 말할 수 없는 기억할 수 없는', 최인자, 문학동네

        2) 빌러비드 해설 '빌러비드, 차마 말할 수 없는 기억할 수 없는', 최인자, 문학동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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