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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조이 Jan 15. 2021

[다큐멘터리] 잡식가족의 딜레마

돼지는 상품이나 식품이 아니라 생명이고, 동물이다. 

영화 정보

다큐멘터리 / 2015.05.07. 개봉 / 106분 / 한국

감독 황윤

수상정보 11회 서울환경영화제(한국환경영화상-대상)



줄거리
사랑할까, 먹을까!
 구제역이 전국을 휩쓸던 어느 겨울 날, 육아에 바쁘던 영화감독 윤은 살아있는 돼지를 평소에 한번도 본 적이 없었음을 깨닫고 돼지를 찾아 길을 나선다. 산골마을농장에서 돼지들의 일상을 지켜보면서 이제껏 몰랐던 돼지의 새로운 모습을 발견하게 되는데… 그런 윤에게 딜레마가 생긴다. 돼지들과 정이 들며 그들의 영리하고 사랑스러운 모습을 알게 되는 한편 농장의 이면을 알게 될수록, 그 동안 좋아했던 돈가스를 더 이상 마음 편히 먹을 수 없게 된 것. 육식파 남편 영준과 어린 아들 도영은 식단결정을 더욱 복잡하게 한다. 마트에서 반찬거리를 살 때마다, 저녁에 무엇을 먹을까 식당을 고를 때마다 갈등에 빠지게 된 윤. 이제 어떻게 해야 할까?



돼지는 영리하고 민감한 동물이다.

개의 평균 IQ는 60정도, 돼지는 75-85. 개보다 지능이 높다. 인간으로 치면 3-4세 아이의 수준이다. 훈련을 시키면 컴퓨터 게임도 할 수 있을 정도라고 한다. 또, 돼지는 같은 집단 내의 돼지를 서른 마리까지 구별할 수 있고, 친한 돼지들과는 반가워하고 대화도 나눈다. 


하지만 이 정보들이 다 무슨 소용인가. 대부분의 돼지들은 발현해야 할 본성과 누려야할 권리를 박탈당한 채 전 생애를 밀집사육시설에 갇혀 고기로 만들어지고, 도축장으로 단 한번의 외출을 한다. 아니 출고된다. 


돼지는 고통을 느끼지 않을까?

인간이 고통을 느끼듯,

돼지도 고통을 느낀다.

고기가 되기 전에는 그들도 생명이니까.


하지만 돼지의 고통은

그들이 '고기'라는 이유로 외면받는다.

더 정확히는, 우리가 외면하고 있다는 것조차 모르는 새에, 외면받는다.

우리는 동물을 아끼고 그들이 고통 받지 않기를 바라면서도 그들을 먹는다.

우리에게 고기는 그냥 고기니까. 

고기는 맛과 영양을 공급해주는 식품일 뿐이니까.


돈가스를 좋아하고,

가족을 위해 고기반찬이 올라간 식탁을 차리는,

이 다큐멘터리 감독에게도 돼지는 그냥 고기였다.


그러던 어느날,

구제역으로 200만 마리 이상의 돼지들을 살처분하는 뉴스가 들려온다.


하지만 우리가 대개 그렇듯, 


황윤 감독 역시

"뉴스를 보고 싶지 않았다.

돼지까지 신경쓸 여유가 내겐 없었다."

라며 티비를 끈다.


그렇게 끝날 수도 있었을 것이다.

다시 일상을 '잘' 살아갈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황윤 감독은 

그 뉴스 속 돼지의 죽음이 마음을 떠나지 않아서,

내가 먹는 고기가 어디서 오는지 궁금해서,

카메라를 들고 돼지를 만나러 간다.


그렇게 진짜 살아있는 '돼지'를 만나고 오고 나서는

돈가스가 돼지로 보이기 시작한다.

돼지를 괜히 보고 왔나 싶지만

감독은 더 이상 장바구니에 고기를 담지 못한다.

한국에서 유통되는 돼지고기의 99.9%가 공장에서 온다는 걸 알게 됐기 때문이다.


이 변화는 가족 내에서 갈등을 일으킨다.


고기를 먹는 남편은 바뀐 식단이 맘에 들지 않고, 고기를 끊을 생각도 없다.

그는 돼지들의 사육환경에 대해 관심도 없고 알고 싶지도 않고 자신에게는 중요하지 않다고 얘기한다.

내가 먹을 음식을 선택할 수 있는 권리를 갖는게 더 중요하다고 주장한다.


"고기를 끊은 이후 함께 했던 만찬이 그립다.

고기가 그리운 게 아니라 우리가 함께 같은 음식을 먹고 같은 이야기를 하던 그 시간이 그리운 것이다"


"한국에서 비육식주의자로 살아간다는 건

소외감 뿐 아니라 종종 배고픔도 감수해야하는 일이었다

선택이 많은 푸드코트에서도 선택할 수 있는 것이 거의 없었다."


함께 외식을 해도 먹을 수 있는 메뉴가 별로 없고,

아들 도영은 돼지 껍질이 들어간 '젤리'를 먹고 싶어 운다.


우는 아이를 달래며 감독은 생각한다.

'다 못본 걸로 치고 예전으로 돌아가야할까?

다시 돌아갈 생각은 없었지만 도영에게 미안했다'


그 후 감독은 공장이 아닌 농장을 찾아 나선다.

공장식 축산이 아닌 오래된 방식으로 돼지를 키우는 농장.

99.9%가 아닌 0.1%를 찾아.

그리고 그곳에서 모돈인 '십순'이와 십순이의 8번째 새끼 '돈수'를 만난다.


그 곳의 돼지들은 

단기간에 많은 살을 찌우기 위해 먹이는 

유전자조작 사료와 온갖 항생제와 호르몬제 

대신 밀싹, 녹즙, 무, 당근, 배추, 각종 풀들을 먹고 자랐다.

화장실과 밥 먹는 공간, 자는 공간이 있었다.


그곳의 어미모는 

몸을 돌리지도 못하고 앉았다 일어났다만 할 수 있는

사람으로치면 몸에 딱 맞는 싱글침대만한 시멘트 바닥 대신

돌아다닐 수 있고, 지푸라기가 있어 새끼를 낳을 둥지도 지을 수 있는 공간에서 새끼를 낳았다.

비록 평생 임신, 출산, 수유만 반복하는 삶이더라도.


하지만 이 곳 농장도 끝은 결국 도살장. 죽음.


0.1%의 확률의 농장에서 운 좋게 자란 돈수와 다른 돼지들을 태운 트럭과

99.9%의 공장에서 자란 돼지들을 태운 트럭이 

도로에서 나란히 도살장을 향해 달리는 씬을 보는데

마음이 덜컹거렸다.


그 후 트럭이 도살장에 도착하고,

바퀴가 멈추고,

흰 방호복을 입은 작업자가 나타나고,

돼지들의 비명소리가 들려오는 도살장 안으로 돼지들을 들여보내고,

돈수의 겁에 질린 눈빛과

배수관을 타고 쏟아지는 핏빛 오수 장면.


그걸 보는데 내 마음이 별안간 뒤집어지더니,

함께 쏟아져내렸다.


그래도 살아있는 동안 더 나은 환경이었으니

돈수와 십순이는 행복한 삶이었다고 생각해야 하는걸까.


만약 사람들이 자신이 먹는 동물들,

살아있는 소, 닭, 돼지 등 고기로만 생각하는 동물들을 볼 수 있다면 어떨까?


냄새를 맡고, 고개를 들어 눈을 마주치고, 걷기도, 앉기도, 눕기도 하고

무리들과 어울리며 놀고, 밥을 먹고, 잠을 자고,


어미돼지가 자신의 새끼를 데려갈까봐, 

데려가서 아프게 할까봐 경계하고 지푸라기 속에 새끼들을 숨기고, 

떨어뜨려놓은 자기 새끼한테 가려고, 막아둔 나무판자를 이빨로 갉아대는 모습을 볼 수 있다면 어떨까?



나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자신의 눈 앞에서 

동물들이 고통을 겪는다면, 

동물들이 도살을 당한다면,

그들의 고통을 느끼고, 인지할 거라고

적어도 그들의 살점만은 먹지 않을 거라고 믿는다.

그 순간에는 '잡식동물의 딜레마'를 느끼지 않을 거라고 믿는다.

우리 대다수는 세월호 유가족의 단식농성장 앞에서 

피자와 치킨을 먹는 그런 괴물이 아니니까.



"돼지의 기본권이 뭘까요?"

"맘대로 먹고 자야지. 기분좋게"


그러니 지구상의 모든 생명체가 기본권을 누릴 수 있게 좀 협조하면 안 될까?

네? 그러니 우리 고기 좀 덜 먹으면, 고기 좀 안 먹으면 안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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