습작들
20년 전에 우연히 만났던 할머니를 종종 기억한다.
아주 잠시 두번만 만났을 뿐이지만, 그 분의 사연은 당시에 어렸던 나로서는 사뭇 충격적이었다.
말을 잃어버리신 듯 조용하고, 간간히 보이는 미소에는 아름다웠을 젊을 날이 떠오르던 70대 후반의 할머니..
다시 찾아갔지만, 다시는 볼수 없었기에 그때 전했던 말이 조금이라도 위로가 되었다면 좋았겠다라는 생각만 그저 해본다.
최근에 할머니를 생각하며 5분 정도의 시나리오를 써봤다. 나의 작은 바램과 같이...
용서한다는 것은 내 옆구리에 깊숙이 박힌 창을 내 손으로 뽑아내는 일이다. 내 도덕적 감수성, 내 자존감, 내 원칙, 내 희망인 내 속의 창자들을 절대로 다치지 않게 하면서 정말로 조심스럽게 빼내야 하는 일이다
장면 1: 조용한 아침
설정: 재개발을 앞둔 낡은 오래된 집. 복길 할머니는 작은 마루에 홀로 앉아 햇빛이 내리쬐는 마당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멀리서 새들이 지저귀는 소리와 가끔씩 바람 소리가 나는 것을 제외하면 현장은 조용합니다.
행동: 그녀는 깊이 숨을 들이마시며 한숨을 내쉬고 생각에 잠긴 채 무릎에 손을 부드럽게 두드립니다. 대문의 삐그덕하는 소리가 조용한 침묵을 방해합니다.
장면 2: 방문자들
인물: 두 명의 인상 좋은 젊은 전도자들이 조심스럽지만 따뜻하게 다가갑니다. 그들은 작은 팜플렛을 들고 대문에 정중하게 서 있습니다.
전도자 1: “할머니 잠시 이야기를 나눌 수 있을까요? 잠시만 시간 내주시면 되요”
행동: 복길 할머니는 고개를 끄덕인다. 무료한데 한편으로는 잘 되었다는 마음으로 어색하게 살짝 미소지어 줍니다.
전도자 2: "할머니, 예수님 믿으세요? 예수님을 믿으시면 천국에 가실 수 있어요."
복길할머니: (천천히 고개를 흔듭니다): "나는 천국에 못 가. 용서받을 수 없는 죄가 있어서..."
전도자 1: "아무리 큰 죄라도 용서받을 수 있어요. 예수님을 믿으시고 용서를 받으세요"
행동: 복길할머니는 부드럽지만 단호한 거절로 고개를 돌립니다.
장면 3: 과거에 대한 기억의 문이 열림
설정: 다음 날, 전도자들이 다시 방문했을 때 복길할머니는 같은 자리에 있습니다. 하지만 복길할머니는 마음이 불편해 그들을 바라보지 않습니다. 하지만 두 사람은 아랑곳하지 않고 전날보다 더 적극적으로 말한다.
전도자 1: 할머니, 용서받지 못할 과거는 없어요
복길할머니: "아무래도… 나는 용서받을 자격이 없어."
행동: 대문이 갑자기 열리더니 단호하고 짜증이 난 모습의 그녀의 며느리가 시끄럽게 들어옵니다. 그녀는 전도자들을 밀어내고 복길할머니에게 모르는 사람들을 집에 들였다고 화를 냅니다.
며느리: " 이런 쓸데없는 짓 하고 다니지 마세요! 다시 오면 가만두지 않을테니"
장면 4: 내면의 갈등
설정: 전도자들이 떠나고 복길할머니는 그대로 앉아 있습니다. 며느리는 계속 그녀에게 소리치지만 복길할머니는 그녀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는 것처럼 침묵합니다
행동: 며느리가 떠나면서 복길할머니의 얼굴은 슬픔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그녀의 마음은 전도자들의 말이 메아리칩니다: "누구나 용서받을 수 있습니다."
장면 5: 결심의 순간
설정: 복길할머니가 다시 한 번 현관에 앉아 있습니다. 늦은 오후이고 해가 지고 마당 전체에 긴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습니다.
행동: 그녀는 전도자들이 서 있던 대문을 지켜봅니다. 처음으로 결심의 빛이 그녀의 얼굴을 스칩니다. 그녀는 손을 내려다보다가 천천히 일어나 집으로 걸어 들어가 작은 가방을 챙기기 시작합니다.
대화(내부 독백):
복길할머니: (혼잣말) “내 인생에서 처음으로… 내 선택으로 떠나는 거야.”
장면 6: 비밀의 출발
설정: 이른 아침, 복길할머니는 조용히 물건을 준비합니다. 그녀는 며느리가 아직 잠들었는지 확인합니다.
행동: 복길할머니가 작은 보따리를 들고 집 밖으로 빠져나옵니다. 그녀는 문 앞에서 잠시 멈춰서서 마지막으로 한 번 뒤를 돌아본 다음 도로로 들어갑니다.
소리: 문이 닫히는 부드러운 삐걱거림과 멀리서 들리는 자연의 소리.
장면 7: 도로에서의 만남
설정: 나무와 들판이 늘어선 시골길. 복길할머니는 평화로운 풍경을 즐기며 천천히 걷습니다. 굽이굽이를 돌면서 채소가 가득 담긴 작은 카트를 끌고 있는 중년 여성 정순을 봅니다.
행동: 두 사람은 정중한 인사를 주고받았지만 복길할머니는 피곤해 보였고 정순은 이를 알아차립니다. 망설이다가 정순이 그녀를 태워주겠다고 제안합니다.
정순: “할머니, 어디 가세요? 이 길은 한참 멀 텐데… 짐도 있으신데 제가 도와드릴게요.”
복길할머니: (내키지 않은 표정으로) “고향에 좀 가려고요... 혼자 가볼 생각이었어요.”
정순: “혼자 가시기엔 먼 길이에요. 같이 가요. 저도 이 길이 익숙해서요.”
복길할머니: (처음에는 마지못해했지만 수락) "고맙소."
장면 8: 정순의 이야기
설정: 둘이 함께 가며 대화는 더욱 개인적으로 이루어집니다. 복길할머니의 침묵을 눈치챈 정순은 자신의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합니다.
정순: “저도 할머니처럼 혼자 살아요. 남편이 일찍 떠나고, 아이들은 다 도시로 갔지요. 혼자 남아 이 마을에서 살고 있어요. 외로울 때도 많지만, 사람은 살아가는 힘이 있어요.”
복길할머니: (호기심을 보이며) “그래도 많이 힘드셨겠어요.”
정순: (끄덕이며) “힘들었죠. 남편이 사고로 떠나고 나서 세상이 무너지는 것 같았어요. 아무도 도와주지 않더군요. 아이들 키우면서 농사도 짓고… 혼자 다 해내야 했어요. 그때 깨달았어요. 내 인생은 내가 책임져야 한다고. 아무도 나 대신 해줄 수 없어요.”
행동: 정순이 말하는 동안 복길 할머니는 귀를 기울입니다. 그녀는 정순의 이야기에서 혼자 남겨지고, 짐을 짊어지고, 고난에도 불구하고 삶이 계속된다는 것을 깨닫는 자신의 삶에 대한 메아리를 듣습니다.
복길할머니: “그래도 혼자서… 다 해내셨네요.”
정순: (미소지으며) “할 수밖에 없었죠. 근데, 시간이 지나면 마음도 좀 더 단단해지더라고요. 그래야 했어요. 처음엔 원망도 했지만, 나중엔 그저 시간이 흘러가고 그러다 보니 그게 내 인생이 되있더라구요.”
대화(내부 독백):
복길할머니: “나만 고통받은 게 아니었구나… 모두 각자의 짐을 지고 사는구나…”
행동: 정순의 말은 복길할머니에게 공감을 불러일으키며, 복길할머니는 자신의 분노와 무력감을 반성하기 시작합니다. 이 대화는 복길할머니의 머릿속에 기억을 불러일으키며, 그녀가 잊으려 했던 기억을 떠올리게 합니다.
장면 9: 과거 회상
설정: 복길할머니가 침묵 속을 걷는 동안 그녀의 마음은 과거의 장면을 재생하기 시작합니다.
플래시백:
젊은 복길: 아버지는 어느날 갑자기 동내 총각과 결혼하라고 합니다. 거부하고 싶었지만 복길에게는 선택권이 없었습니다.
전쟁 중의 고난: 가족을 부양하기 위해 고군분투하지만 무능한 그녀의 남편. 그는 추운 밤에, "나가서 돈을 벌라"고 명령하고 집에서 내쫓습니다.
산: 젊은 복길은 밤에 산을 올라 군인들을 만납니다. 그녀는 부끄럽지만 절망적인 자신의 존엄성을 돈으로 교환합니다. 매일 밤, 그녀의 죄책감은 깊어집니다. 그녀는 남편이 자신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 알고 있다고 믿지만 남편은 절대 모른 척 입밖에 꺼내지 않습니다..
복길할머니(독백): “남편은 알고 있었을까… 아니, 그는 알고 있었을 거야. 그저 모르는 척했을 뿐이지. 나는 평생 남편을 두려워하고 죄책감을 안고 숨죽이며 살았어”
장면 10: 성찰과 도착
설정: 마을 근처에서 정순은 어린 시절의 친숙한 랜드마크를 가리키며 이 지역에 대한 좋은 추억을 공유합니다. 과거에 대한 향수는 현재를 받아들이는 것과 섞여 복길할머니의 생각에 더욱 영향을 미칩니다.
정순: “여기서 나고 자랐어요. 어려움도 많았지만, 그래도 나를 만든 건 이곳이지요. 그래서 난 이 마을을 떠날 수 없어요. 힘든 일도 많았지만, 이곳에서 나만의 삶을 살고 있어요.”
복길할머니: (조그맣게) “나도… 나만의 삶을 살아야겠네요.”
설정: 정순과 복길할머니는 마을 근처에서 헤어집니다. 복길할머니는 혼자서 고향으로 향하며 머릿속에서 계속 과거의 기억이 교차합니다.
장면 11: 과거를 발견하기
행동: 정순이 떠나고 난 뒤, 복길할머니는 걸음을 멈추고 하늘을 한참 동안 바라봅니다. 그녀의 머릿속에는 남편과의 지난 세월들이 떠오릅니다.
대화 (내부 독백):
복길할머니: "그는 내가 얼마나 힘들었는지 알면서 왜 아무 말도 하지 않았을까… 밤마다 나가라고 했을 때, 얼마나 무심했는지…"
회상: 그녀는 남편이 외출해서 돈을 벌라고 명령한 순간을 회상합니다. 그의 목소리에 담긴 냉담함, 그녀의 시선을 마주치지 않는 그의 모습, 배신감과 버림받은 기분.
행동: 복길할머니는 상처가 새것처럼 다시 분노가 치밀어 오르는 것을 느끼며 주먹을 불끈 쥐고 있습니다.
대화(내부 독백):
복길할머니: "난 그를 원망했어… 나에게 그걸 강요한 그 사람을 어떻게 용서할 수 있겠어."
일시 중지: 복길할머니가 걸음을 멈추고 분노와 슬픔이 그녀를 덮칩니다.
추가 플래시백: 그녀의 남편은 어둠 속에 앉아 고개를 숙이고 그녀를 마주할 수 없었습니다. 그의 침묵은 무거웠고, 복길할머니는 처음으로 자신도 두려운 듯 떨리는 손을 발견했습니다.
행동: 복길할머니의 분노는 부드러워지고 혼란으로 대체됩니다.
대화(내부 독백):
복길할머니: "그도 겁먹은 거 였을까… 나만큼이나 무서웠을지도 몰라. 전쟁은 우리 둘 다 망가뜨렸어. 하지만 그가 나한테 아무 말도 하지 않은 건… 그래도 용서하기 힘들어."
행동: 복길할머니는 이러한 엇갈린 감정과 씨름하며 계속 걷습니다. 그녀는 완전히 용서할 준비가 되지 않았지만 자신과 남편 모두 자신보다 더 큰 상황에 갇혀 있다는 것을 이해하기 시작합니다.
대화(내부 독백):
복길할머니: "그가 나를 강요한 건 분명 잘못이었어. 하지만 나 혼자만 고통받은 건 아니었겠지. 그도 무너지고 있었을 거야… 그래도 그게 용서로 이어지려면 아직 멀었어."
대화 (내부 독백):
복길할머니: "그도 그저 자신이 살아남기 위해서 그렇게 했던 거겠지... 남편도 어쩌면 나처럼 죄책감에 시달리며 아무 말도 못 했을 거야."
장면 12: 고향에 도착하기
설정: 복길할머니가 자신의 오래된 고향 집에 도착합니다. 그녀는 조용히 마당에 서서, 그곳에서 보낸 어린 시절과 남편과의 기억들을 떠올립니다.
그때 복길할머니는 아버지의 오랜 친구인 마을 노인을 방문하여 부모님의 삶에 대해 자세히 알아봅니다. 노인은 아버지의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대화:
어르신: “네 아버지도 그 시대의 피해자였지… 표현은 거칠었지만, 가족을 위해 열심히 살았단다. 네 아버지는 네가 끌려갈까봐 두려워서 급하게 너를 짝사랑하던 총각한테 시집을 보냈지. 그때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으니…”
복길할머니: “몰랐어요… 저는 그저 아버지가 무서웠을 뿐이었어요.”
행동: 복길할머니는 심장이 부드러워지면서 집중해서 귀를 기울입니다. 그녀는 아버지의 가혹함이 아버지 자신의 고통과 한계에서 비롯된 것임을 깨닫습니다. 그리고 남편이 한번도 자신에 대해 말하지 않았던 감정에 대해서도 놀라워합니다.
행동: 어르신은 떠나고 복길할머니는 벽을 쓰다듬으며, 아버지의 단호함, 남편의 침묵이 단순한 무관심이 아니라 그도 자신만의 고통을 안고 있었다는 것을 깨닫기 시작합니다.
회상: 무심한 태도와 명령 뒤에는 전쟁의 상처와 자신에 대한 무능감이 숨겨져 있었다는 사실을 이제서야 이해하게 됩니다.
대화 (내부 독백):
복길할머니: "그는 내가 한 일을 알고 있었을지도 몰라... 하지만 그도 할 말이 없었겠지. 전쟁에 지친 그는 내가 나가서 번 돈을 받아들이면서도 얼마나 괴로웠을까..."
“내가 죄를 지었다고 생각했지만… 내가 용서를 받아야 할 사람이 아니었구나. 내가 용서해야 했던 거였구나.”
행동: 그녀는 자신이 지금까지 짊어진 죄책감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깨닫기 시작합니다.
회상: 그녀는 어린 시절, 아버지의 엄격함, 남편의 냉담함을 기억합니다. 하지만 지금은 새로운 눈으로 그들을 결함이 있고 망가진 남자로 여깁니다.
대화(내부 독백):
복길할머니: “아버지도, 남편도… 그들도 자신들의 짐을 짊어졌을 뿐이었구나.”
장면 13: 용서
행동: 그녀는 눈을 감고 남편과 아버지에 대한 기억이 자신을 씻어내도록 내버려 둡니다. 하지만 그녀는 고통 대신 이상한 평온함을 느낍니다. 그녀는 그들의 용서가 필요하지 않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그녀에게 필요한 것은 그들을 용서하는 것입니다.
대화(내부 독백):
복길할머니: “나만 힘들었던 게 아니었구나… 아버지도, 남편도… 이제 내가 용서할 때가 왔구나.”
행동: 슬픔이 아니라 풀려난 그녀의 뺨에서 눈물이 흘러내립니다. 수년간의 고통과 죄책감은 아버지와 남편뿐만 아니라 자신을 용서하면서 서서히 사라집니다.
장면 14: 새로운 시작 (1분)
설정: 복길할머니는 해가 지고 마을에 따뜻한 빛을 드리우며 일어섭니다.
행동: 그녀는 보따리를 들고 마음이 가벼워진 채 다시 길을 걷기 시작합니다.소리: 시골의 평화로운 소리, 새소리, 바람소리, 아이들의 먼 웃음소리가 공기를 가득 채웁니다.
최종 대화(내부 독백):
복길할머니: “내일은… 쨍하고 해뜰날이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