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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영 Jan 27. 2022

천천히 보며든다



이 글은 관악구 보라매동에 위치한 서점

'책 이는 당나귀'의 소식지,

[당나귀 통신] 2022. 2월호에 실린 글입니다.

(서점 위치와 소개는 맨 아래 있어요.)





우리집은 교회 마당 위에 있다. 군인이 관사에 살고 기업 직원이 사택에 살 듯, 목사 아내인 나는 다른 교역자들과 함께 3층짜리 주택에 산다. 사택살이가 결정되었을 때 친정아버지는 동네 슈퍼를 찾아가 "딸내미가 사택에 들어간다"고 자랑했다. 반면 직장 동료들은 말했다. "힘들지 않겠어?" 나는 양극의 여론 속에 30년 살던 동네를 떠나 낯선 보라매동으로 이사를 왔다.




코로나 이전까진 주말이면 방 두 개를 개방했고, 집은 교회 아이들과 어른들의 사랑방이 되었다. 주말이 오기 전, 게으른 허벅지를 찔러가며 방을 청소하고, 간식도 내어놓고, 서재에 놓인 책들을 빌려주기도 했다. 마음이 앞서 '독서 대여표'를 만들어 벽에 붙이고 교회 아이들에게 책을 건넸다. 낯가리니까 좀 어색하게. 토요일이면 성도들과 함께 교회 청소를 했다. 실속 없는 주부인 나는 청소 또한 어색하게 했고, 어린아이가 걸음마 배우듯 했던 것 같다. 새로웠던 점은, 하루 꼭 한 번은 성도들과 마주친다는 점이다. 지역교회는 지척에 사는 성도들과 이렇게 비빔밥 속 재료들이 버무려지듯 지내는구나 싶었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자, 솔직하게, 지쳤다. 예를 들면, 마트에서 햇반과 라면을 사다가 교회 어른을 마주치면 민망했다. ‘남편 밥도 안 해주나’ 하실 것 같은 기분이랄까. 월요일 출근 압박이 시작되는 일요일 저녁이면 남편에게 신세타령을 하느라 입이 댓 발 나온 모습이었다. 주 6일 근무를 마치고 집에 돌아와도 남편을 돕느라 편히 쉬지 못하는 날엔, 내가 마치 AS센터가 된 기분이었다. 아무도 내게 “쉬지 말고 계속하라” 한 적 없는데 나는 참 부자연스럽게 살았던 것 같다.




누구든 어디든 스며들 시간이 필요한데, 나는 급했다. 내가 만든 의무라는 돌덩이가 늘 목에 걸렸다. 삶에 유머가 들어설 틈이 없었고 웃음이 녹아들 말랑말랑한 마음도 없었다. 결국, 내 본성과 원함의 괴리는 벌어질 대로 벌어졌고 뻥 터져버렸다. 더 이상 직장 다닐 힘이 없었다. 프리랜서로 전향하고 ‘다음’을 생각했다. 내게 남은 일은 임신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임신은 나에게 꽤 어려운 일이었고, 유산이라는 깊고 어둔 터널을 지나야 했다. 왠지 언젠가 사고를 칠 것 같고 위태롭던 나 때문에 귀한 생명이 사라진 기분은 뭐라 설명할 길이 없었다. 심박수 기계가 ‘삐’ 소리와 함께 멈추는 것처럼, 내 생활도 일정 기간 멈췄다.




생과 사 앞에서 인간이 할 수 있는 것이 없다는 걸 알게 되고부터 '생활 속 힘 빼기'를 시작했다. 물리적으로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없어질수록 어쩌면 나는 조금 자연스러워진 것 같다. 몸과 마음의 기능이 멈추고서야 내가 진짜 어떤 사람인지 생각할 수 있었다. 나는 마음이 앞서지만 여러모로 미미한 사람. 모든 걸 다 잘할 수 없는 사람. 아파서 일상이 멈췄으니 앞으로 회복하면 될 일이었다.




유산 후 약해진 몸뚱어리를 이끌고 매일 산책을 한다. 어느 날, 골목을 걷다가 2층 집 난간에 고개를 기댄 개 한 마리를 봤다. 이사 온 지 3년 만에 본 풍경이었다. 쟤가 하루 이틀 저러고 있는 게 아니었을 텐데 이제야 주변이 보이기 시작했다.




콩국수에 얹을 오이를 사러 갔더니 냉장고 속 시원한 오이 하나를 공짜로 주시는 야채 가게 사장님과 내 걸음걸이를 보고 “허리 아프냐” 걱정해주시는 화분 가게 아저씨와 인사할 겨를이 생겼다. 길 가다 만난 교회 어르신께, 전에 주신 김치가 맛있다고 ‘엄지 척’을 날리는 뻔뻔함도 생긴 것 같고(덕분에 그날 문 앞에 무말랭이 담긴 통이 달려 있었다).




이 동네는 키 낮은 건물이 많아 쌍무지개가 온전히 보인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골목을 걸으며 길가 혹은 계단에 놓인 화분을 구경하기도 좋은데, 실제로 집집마다 꽃을 많이 키우는 우리 동네는 도시 양봉을 하기에 좋다고 한다. 여름이면 윗집과 큰 솥에 옥수수를 함께 삶아 먹는다. 기르던 화분 중에 감당 못할 녀석이면 아랫집 식집사님께 부탁한다. 예전에는 한겨울 눈이 오면 라떼 한 잔이 생각났는데 이제는 집 앞에 쌓인 눈을 열심히 쓸 이웃들이 생각난다.




친구들이 집에 오면 동네 자랑 겸 투어를 한다. 서점 책이당에 들러 보라매 방문 기념 책을 사주고, 지역 카페에 들러 커피를 얻어 마신다. 헤어지기 전, 두부 또는 김을 사가는 건 어떤지 의향을 묻기도 한다. 우리 동네 두부는 단단하고 실속 있으며, 특히 파래김은 밥도둑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맛있는 빵집도 많다(빵에 진심인 편). 골목 초입에 자리한 치과는 우리 부부의 힐링 코스 중 하나일 정도로 실력이 좋다. 동네 내과 의사 선생님은 어찌나 다정하신지!   




창가에 쪼르르 모여 볕을 쐬는 화분들을 보며 오늘 하루를 긍정한다. 벽에 이것저것 붙여 너저분한 거실일지라도 이곳에서 안정감을 느낀다. 이제야 이 집이 내 집 같다. 보라매동에서 만난 모든 사람들이, 나를 이룬 동네 풍경들이 내가 힘든 때를 같이 견뎌주고 기다려주었다고 믿는다. 훗날 이 동네를 떠올리면 지독하게 힘들었던 기억과 함께 ‘그곳이라 다행이었어’라고 기억하면 좋겠다. 보라매동에 천천히 스며들며 천천히 나를 위로한다. 오늘도 ‘보며든다.’





작년 연말 눈 내리던 날!


사려 깊은 사장님이 "잘 오셨어요" 하고 환대해주는 서점이다. [당나귀 통신]을 발행하며 지역 주민, 서점 손님들과 소통하는 사장님 내외를 보며, 지역 서점은 사람을 보듬고 세상과 연결해준다고 믿게 된다. 원고를 실어주신다고 했을 때, 그렇게 느꼈다. 내가 세상과 연결될 수 있구나 하는. 그리고 계속 글을 써도 되지 않을까 하는 작지만 큰 느낌.



서점 인스타그램 ​@check2dang

https://instagram.com/check2dang?utm_medium=copy_link

(창이 이렇게밖에 공유가 안 되는 거니! 그런 거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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