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복 일기를 시작합니다.
어릴 때 늘 가는 소아과가 있었다. 어릴 땐 누구나 잘 아프니까. 그런데 나는 감기 같은 잔병이 아닐 때도 병원에 다녔다. 가슴이 콕콕 쑤셔서 소아과에 갔는데 '가슴이 자라나는 중'이라는 진찰을 받았고, 자꾸자꾸 오줌이 마려워 소아과에 갔는데 '신경성'이라고 했다. 그러고 보니 119, 112 프로그램이 유행하던 시기에는 집에 불이 날까 봐 창 밖을 보고 가만히 서 있던 적도 있다. 그때 엄마가 "불이 나면 누군가 신고를 하고 우리는 안전할 거야"라고 말해주지 않았다면 난 계속 불안했을 거다.
유치원 볼풀장에서 나는 더 이상 친구들과 어울릴 수 없다는 걸 알고, 의자에 멍하니 앉아 있었다. 선생님이 다가와 "무슨 일이니" 하고 물어주었고, 나는 그때 "친구들이 함께 놀아주지 않는다"라고 말했던 것 같다. 그 뒤는 기억이 나질 않는 걸 보면, 말을 하고 속이 좀 풀렸나 보다. 난 따돌림이 너무나 싫어 그다음 해엔 친구 드레스를 뒤에서 잡아주는 역할을 마다하지 않으며 친구를 사귀었다. 자주 따돌림을 받았으면서 어떤 때는 갑자기 나도 친구를 좌지우지할 수 있을 것 같은 무례함도 보였던 것 같다. 야생과도 같은 교실 안에서 금방 찌그러졌지만. 무례한 자신감과 무력해진 자아가 매번 시소를 탔다.
주변 환경과 변화에 예민하고 감당하기 버거웠던 그 순간을 잘 기억하는 바람에 자주 피로하다. 좀 슬픈 것은, 잘 기억하는 사람의 '기억'은 생각보다 무뎌지지 않는다는 점이다. 무뎌지기보다 의미가 왜곡되고 더해져서 한 뭉치가 되어 몸과 마음을 누를 때가 많다. 나란 사람은 어릴 때부터 기억하면서 마음에 잔병이 많았다는 생각이 든다. 세상의 모든 안 좋은 생각과 소식, 기억을 차곡차곡 몸과 마음에 쌓아갔다. 그래도 살아야 하는데.
어느 날, 원망 대신 물풀 같은 나를 발견했다. 나는 물풀 같이 주변에 잘 흐르고 끈끈하게 붙는다는 것. 물풀 같은 마음에 나와 세계를 이룬 많은 이야기가 붙어 쉬이 떨어지질 않는다. 오랜 역사 속, 사람들이 썼던 단어 하나하나와 표정, 말투가 내 몸 어딘가에 끈끈하게 붙어 있다. 떼어내고 싶으면 동글동글하게 코딱지처럼 잘 뭉쳐서 톡, 하고 버리면 되는데 그걸 못하고. 잘 기억하니까 잘 아프며, 잘 앓는다. 몸과 마음이 경직되고 풀어내려면 시간이 걸린다. 어쩌면 나같은 사람에겐 기억을 왜곡하지 않고, 하나를 두고 오래 생각하지 않는 연습이 필요한 것 같다. 기억을 조심히 떼내어 잘 흘려 보내기. 흔적은 좀 남겠지만, 그래도 과거에 살지 않기.
새로운 통증이 찾아오는 날이면 "오늘도 왔구나" 하고 스트레칭하며 함께 지냈다. 그렇게 며칠 또는 몇 주를 보내면 나아지기도 하고, 여전히 아픈 곳도 있고. 그냥 그런 거지 뭐. '이런 나라서' 힘든 사람이 나뿐 아닐 거란 생각이 든다. 이런저런 이유로 우린 다 아픈 존재인 것 같다. 잘 되어가는 이야기만 한다면 계속 말할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어느 정도 넘어지고, 조금은 아팠던 이야길 건네면 누구나 아픈 한 구석을 꺼내 이야기할 수 있지 않을까. 어딘가에서 조용히 열심히 앓던 사람들이 만나 서로를 위로할 수 있지 않을까.
이런 우리라서 잘 아프고, 잘 말하고, 잘 나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