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리말을 쓸걸 그랬지
글을 쓰며 중간중간 드는 생각은 두 가지다.
하나는, 아프다고 너무 앓는 소릴 하는 건 아닌가. 나보다 여러 번 유산하고 힘들어한 사람들이 많이 있는데. 나보다 더 몸이 안 좋은 사람들도 있을 텐데. 내 깜냥이 글을 내보일 정도인가 싶은 마음이다.
다른 하나는, 내 이야기가 그다지 흥미롭지 않을 텐데 괜찮을까. 그냥 지나가는 어떤 애 이야기일 텐데. 독자가 생길까 하는 염려를 포함한다.
이 두 생각에 사로잡히면 서랍에서 글을 꺼내놓기가 쉽지 않다.
글을 쓰며 나를 객관적으로 관찰할 수 있어 좋았는데, 막상 브런치 작가가 되고, 누군가가 읽는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복잡 미묘한 거다. 갑자기 이곳이 위협적으로 다가오기도 한다. 혹여 내 글이 다른 누군가에게 생채기를 내지는 않을까, 상대적 슬픔을 더 야기시키진 않을까 하여.
아무래도 계속 고민이 되어 동화를 쓰는, 나의 문우, 장 작가에게 물었다(언니, 한번 '장 작가'라고 불러볼게).
"언니. 내 이야기를 써도 될까? 나보다 힘든 사람은 더 많을 텐데..."
언니는 고민한 새도 없이 말했다.
"응. 네가 겪은 이야기는 아무도 쓸 수 없어. 네 얘기는 너만 쓸 수 있어."
언니가 만약 대답하는 데 뜸을 드렸다면 조금 의심했을지도 모른다. '아니어도' 그저 나를 위해 해주는 말일 수 있으니까. 하지만 고민 1도 없이 "응. 써도 돼." 해주니 고마운 거다. 글을 오래 세상에 내보인 언니가 해준 이 말에 용기를 내고 다시 이 자리에 앉아 본다.
난 작가 지망생이었고, 지금은 책을 만들고 있다.
대학 시절 1학년은 인문학부였고, 2학년 때 국문학과, 문예창작과, 역사학과 중에 하나를 선택해야 했다. 나는 당연히 문예창작과를 선택했다. 국문학과와 역사학과는 외울 게 많을 것 같았으니까. 왠지 남이 정해준 정형이나 꼴에 나를 맞추고 개어 넣어야 할 것 같았으니까. 이런 나에게 아빠는 늘 그렇듯, 갑자기, 대뜸,
"졸업하고 방 안에서 글만 쓸 테냐!"
핀잔을 줬다.
아빠는 당연하게 편입을 권했고, 나는 당시 "아니! 글은 카페에서 쓸 건데요!" 말하지 못했다. 그 즉시로 편입학원에 쪼르르 달려갔을 뿐... 물론 함께 편입학원을 등록한 교회 언니, 친구와 함께 알콩달콩 재밌게 학원비를 까먹었지만(나만 까먹었음. 나머지 둘은 열심히 했음!). 결국 대차게 넣은 모든 학교를 과락했다. 부끄럽지만 여섯 학교 정도 넣었던 것 같다. 여섯 번째 불합격 통지를 받고, 온몸에는 빨간 두드러기가 돋았다. 입술이 풍선껌 불어나듯 불었고 팔다리, 배와 등 전체에 빨간 열꽃이 피었다. 그 모습이 얼마나 충격적이었으면 아빠는 그 이후 내가 하는 공부, 하는 일, 연애에 대해 일절 간섭이 없었다. 전신 두드러기 덕분에 정서적 독립을 이룬 것이었다! 덕분에 날개 달린 듯 가볍고 즐겁게 문창과를 계속 다닐 수 있었다. 그리고 어느 날 불현듯 밥벌이 걱정이 되어 졸업도 전에 집 앞 출판사에 덜컥 들어갔지만.
내가 처음 글을 쓰고 싶던 때를 떠올려본다.
소설 수업 때 교수님이 했던 말에 가슴이 찡했던 것 같은데 뭐더라.
'사람을 연민의 대상으로 보고 글을 써라.' 이 말이 동력이 되었던 것 같다.
연민이란 단어가 각자에게 주는 색이 여러 가지겠지만. 표준국어대사전은 ‘불쌍하고 가련하게 여김’, 위키백과에서는 '다른 사람의 처지를 불쌍히 여기는 마음'이라고 한다. 그리고 그 뒤에 '상대의 슬픔을 견디기 힘들어하는 감정이기도 하다'라고 덧붙인다. 위키백과의 두 번째 설명이 내가 생각하는 연민에 가까운데, '불쌍하게 생각하고 거기에 그냥 두는 것'과 '상대의 아픔이 곧 내 아픔이 되는 것'은 다른 문제이기 때문이다. 진심으로 공감하고 그 사람의 옷을 입어 보는 것. 이것이 당시 내가 작가적 정신이라고 믿었던 것 같다. 물론 지금 쓰는 글은 지극히 나에 대한 이야기지만. 어떤 글 형식을 취하든 내 글을 읽는 이가 환기할 세계까지 상상해보려 한다.
요즘 글을 쓰며 기억을 떠올리고, 감정을 정리하면서 화끈해질 때도 있다. 몸 이곳저곳 고장 나는 건 여전하다. 하지만 한 가지 변한 점은, '내가 나라서 좋다'는 생각을 하게 된 거다. 내가 글을 쓰는 것이 좋고, 누군가 글을 읽어갈 때 내 세계와 그 세계가 손뼉 치며 만나는 지점을 꿈꾼다.
누구나 인생의 고비가 있을 거다. 최근 읽고 있는 책에서 저자는 우리 인생에 결코 고통이 끝나진 않을 거라고 확신한다. 고통이 잔잔하거나 격하게 계속되는 중에 넘어지고 다시 일어서면서, 그런 인생을 살아내는 거라고.
다들 가슴 한편이 시리고 시커먼 건 일도 아니다.
우리는 다 아프고 힘들다. 저마다 살아온 역사와 환경이 달라 그 모습은 다르지만. 그래서 내가 다시 글을 써도 되겠다 생각했다. 지금 내 눈앞에 산 만한 고비를 넘어가는 이 시절이 남에게도 있다고 믿는다. 유산을 한 분이나 출산한 분이나, 몸이 아픈 분이나 아프지 않은 분이나 함께 고비를 넘고 있다고 생각한다. 산부인과 구석에서 혼자 눈물을 훔치는 산모가 보인다. 길을 걷다 울고불고 하는 두 아이를 양 어깨에 매단 채 한숨을 쉬며 걷는 엄마가 보인다. 지팡이를 짚은 노인의 떨리는 걸음걸이와 신호등을 제시간에 건널 수 없어 중간에 서는 청년이 보인다. 전화기 너머로 자녀를 잃은 지인의 이야기와 유산을 거듭 겪고도 씩씩한 지인을 만난다. 알 수 없는 통증으로 엄마 앞에서 펑펑 울었다는 선배도 만나고, 허리 통증으로 회사를 그만둔 친구로부터 연락이 온다. 결혼을 앞두고 부인과 수술을 해야 했던 언니와 카톡을 한다. 그냥 살다가 누군가 먼저 이야길 꺼내면 우린 다 고통의 지점에서 만난다.
나는 잘 아픈 사람이다.
아주 잔병 앞에 여간내기가 아니다. 매번 정성스럽게 앓는다. 예전에도 그랬고, 지금도 그렇다.
그리고 나는 계속 글을 쓰고 싶은 사람이다. 예전에도 그랬고, 지금도 그렇다.
어쩌면 아프길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덕분에 글을 쓰길 잘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