굳은 몸뚱이 때문에 생활 속에서 도움을 받을 일도 많아졌다. 지척의 작은 도움과 인사도 내겐 "받아들여지는" 기분을 준다. 그중에서도 그 무게가 가볍게 여겨질 수 있는 남편과 친정 엄마의 도움은 언제나 미안하고, 약간 벅차다. 약 8개월 정도 간단한 집안일도 불가능했다. 지금은 가능하다! 무튼, 당시 남편과 친정 엄마의 도움이 없었다면 난 하루도 살 수가 없었을 거다.
엄마가 하룻밤 묵고 간 주일 밤이었다. 내가 숙면을 취하지 못하고 근육통에 시달릴 때였다. 친정 엄마는 주민센터에서 하는 요가 프로그램에서 배운 명상법을 내게 일러주겠다고 했다. 엄마는 내게 배운 그대로 할 테니 웃지 말라며 당부에 당부를 더했다.
"새끼발가락에 힘을 뺍니다, (하나 둘 셋 쉬고,) 넷째 발가락에 힘을 뺍니다."
이 명상법은 열 발가락에서 시작하여 정수리까지 신체 부위를 하나씩 언급하며 힘 빼기를 강조하는 거였다. 사실 끝까지 듣지 않아도 알 것 같았는데 그냥 엄마가 하자는 대로 하나씩 부위별 힘 빼기를 시작했다. 그런데 무릎에서 허벅지로 넘어갈 차례에 엄마 음성은 버벅거렸다.
"이제... (뜸 들임) 정강이에 힘을 뺍니다."
나는 정강이가 어디인지 모르는 게 확실했다. 어디에 힘을 빼야 할지 몰랐기 때문이다. 하지만 진지한 순간이었고, 엄마 목소리엔 웃음기가 하나도 없었다. 그래서 그냥 잠깐 쉬고, 다음으로 넘어갔다. 그렇게 전신에 힘을 다 빼고 잠들기 전, 나는 '정강이'를 검색했다. 그리고 온몸에 힘을 뺐던 게 무색하게 깔깔거리며 웃어버렸다. 지금부터 쓸 한 문장은 상식이 없어 보이겠지만, '정강이는 발목과 무릎 사이, 다리 앞쪽의 뼈를 말하는 거였다.' 정강이는 어떻게 힘을 빼야 할까.
엄마도 사실 정강이가 어딘진 모르겠다고 전했다. 그냥 웃기고, 다 커서 오랜만에 엄마와 같이 자는 밤이 좋았다. 그날 밤 우리는 목에서 쇳소리가 나게 웃다 잠이 들었다.
전지적 엄마 시점에서 딸인 나에 대해 적어보면,
"얘는 확실히 나와 다른 세계다. 성격이… 나를 전혀 닮지 않았다. 왜 떡볶이를 먹지 못하지. 이게 왜 맵지. 과자 한 봉지를 왜 다 먹질 못하지! 한 봉지는 금방인데! 과자 먹는 데 왜 이가 아프지? 오도독 오도독 잘만 씹히는데. 심지어 오징어 튀김이 세상에서 제일 맛있는데, 튀겼다고 잘 못 먹는 게 걱정이다. 기름도 적당히 먹어줘야 하지 않을까? 먹고 왜 바로 눕지 못하지? 먹자마다 누워 자는 게 세상에서 제일 꿀잠인데. 잠을 못 자면 왜 온몸이 아프다는지 모르겠다. 다음날 더 오래 자면 되지 않나! 내 딸은 정말이지 너무 예민하다. 둘째는 안 그런데! 둘째는 여유가 넘치고 뭐든 잘 넘어간다. 아, 그런데 첫째와 둘째 둘 다 잦은 병치레는 나를 닮긴 했다. 둘째도 요즘 체력이 간당간당하다. 우리 딸이, 아들이 아프지 않으면 좋겠다. 딸이 아프다고 사위까지 힘들어지면 안 되는데! 내가 더 힘을 내야지!"
엄마는 자신이 얼마나 고되고 힘든지 여기는 필터 자체가 없는 세계에 산다. 내가 아프면 아플수록 더 파이팅의 세계에서 할 수 있다고 외친다. 이럴수록 자신도 모르게 갑자기 아파질 수 있는데, 엄마가 고될 일은 만들고 싶지 않았는데, 생겨버려 죄송하다. 그래도 또 한편으로는 엄마가 가라앉지 않을 튼튼한 마음을 늘 지켜주셔서 감사하다. 엄마까지 나와 함께 주저한다면 정말 견디지 못할 것 같다. 어둠 속에서도 반짝이는 엄마의 세계가 그곳에 온전하게 오래 지켜지면 좋겠다. 음식 조절은 좀 하셨으면 좋겠고. 내가 어서 나아서 엄마의 아침부터 잠자리에 들 때까지 손과 발이 되어 드리고 싶다.
이제 남편에게 고마운 이야기를 적어 내려갈까 하며, 컴퓨터 화면 너머 남편을 봤다. 그리고 당장 화가 치밀어 올랐다. 지금 내가 뭘 본 거지?
남편이 발뒤꿈치 각질을 떼어 수박 페페 화분에 던졌다. 이건 일종의 실수 같은 거야. 원래 행동하고 생각하는 사람이니까. 나쁜 의도로 한 게 아니잖아. 내가 수습할 수 있을 거야. 코딱지 아닌 게 어디야.
나는!!! 각질을 찾아 버릴 수 있을 거야. 찾아낼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