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영영 Oct 14. 2021

정강이에 힘을 뺍니다



굳은 몸뚱이 때문에 생활 속에서 도움을 받을 일도 많아졌다. 지척의 작은 도움과 인사도 내겐 "받아들여지는" 기분을 준다. 그중에서도 그 무게가 가볍게 여겨질 수 있는 남편과 친정 엄마의 도움은 언제나 미안하고, 약간 벅차다. 약 8개월 정도 간단한 집안일도 불가능했다. 지금은 가능하다! 무튼, 당시 남편과 친정 엄마의 도움이 없었다면 난 하루도 살 수가 없었을 거다.




엄마가 하룻밤 묵고 간 주일 밤이었다. 내가 숙면을 취하지 못하고 근육통에 시달릴 때였다. 친정 엄마는 주민센터에서 하는 요가 프로그램에서 배운 명상법을 내게 일러주겠다고 했다. 엄마는 내게 배운 그대로 할 테니 웃지 말라며 당부에 당부를 더했다.


"새끼발가락에 힘을 뺍니다, (하나 둘 셋 쉬고,) 넷째 발가락에 힘을 뺍니다."


이 명상법은 열 발가락에서 시작하여 정수리까지 신체 부위를 하나씩 언급하며 힘 빼기를 강조하는 거였다. 사실 끝까지 듣지 않아도 알 것 같았는데 그냥 엄마가 하자는 대로 하나씩 부위별 힘 빼기를 시작했다. 그런데 무릎에서 허벅지로 넘어갈 차례에 엄마 음성은 버벅거렸다.   


"이제... (뜸 들임) 정강이에 힘을 뺍니다."


나는 정강이가 어디인지 모르는 게 확실했다. 어디에 힘을 빼야 할지 몰랐기 때문이다. 하지만 진지한 순간이었고, 엄마 목소리엔 웃음기가 하나도 없었다. 그래서 그냥 잠깐 쉬고, 다음으로 넘어갔다. 그렇게 전신에 힘을 다 빼고 잠들기 전, 나는 '정강이'를 검색했다. 그리고 온몸에 힘을 뺐던 게 무색하게 깔깔거리며 웃어버렸다. 지금부터 쓸 한 문장은 상식이 없어 보이겠지만, '정강이는 발목과 무릎 사이, 다리 앞쪽의 뼈를 말하는 거였다.' 정강이는 어떻게 힘을 빼야 할까. 


엄마도 사실 정강이가 어딘진 모르겠다고 전했다. 그냥 웃기고, 다 커서 오랜만에 엄마와 같이 자는 밤이 좋았다. 그날 밤 우리는 목에서 쇳소리가 나게 웃다 잠이 들었다. 




전지적 엄마 시점에서 딸인 나에 대해 적어보면,

"얘는 확실히 나와 다른 세계다. 성격이… 나를 전혀 닮지 않았다. 왜 떡볶이를 먹지 못하지. 이게 왜 맵지. 과자 한 봉지를 왜 다 먹질 못하지! 한 봉지는 금방인데! 과자 먹는 데 왜 이가 아프지? 오도독 오도독 잘만 씹히는데. 심지어 오징어 튀김이 세상에서 제일 맛있는데, 튀겼다고 잘 못 먹는 게 걱정이다. 기름도 적당히 먹어줘야 하지 않을까? 먹고 왜 바로 눕지 못하지? 먹자마다 누워 자는 게 세상에서 제일 꿀잠인데. 잠을 못 자면 왜 온몸이 아프다는지 모르겠다. 다음날 더 오래 자면 되지 않나! 내 딸은 정말이지 너무 예민하다. 둘째는 안 그런데! 둘째는 여유가 넘치고 뭐든 잘 넘어간다. 아, 그런데 첫째와 둘째 둘 다 잦은 병치레는 나를 닮긴 했다. 둘째도 요즘 체력이 간당간당하다. 우리 딸이, 아들이 아프지 않으면 좋겠다. 딸이 아프다고 사위까지 힘들어지면 안 되는데! 내가 더 힘을 내야지!"  


엄마는 자신이 얼마나 고되고 힘든지 여기는 필터 자체가 없는 세계에 산다. 내가 아프면 아플수록 더 파이팅의 세계에서 할 수 있다고 외친다. 이럴수록 자신도 모르게 갑자기 아파질 수 있는데, 엄마가 고될 일은 만들고 싶지 않았는데, 생겨버려 죄송하다. 그래도 또 한편으로는 엄마가 가라앉지 않을 튼튼한 마음을 늘 지켜주셔서 감사하다. 엄마까지 나와 함께 주저한다면 정말 견디지 못할 것 같다. 어둠 속에서도 반짝이는 엄마의 세계가 그곳에 온전하게 오래 지켜지면 좋겠다. 음식 조절은 좀 하셨으면 좋겠고. 내가 어서 나아서 엄마의 아침부터 잠자리에 들 때까지 손과 발이 되어 드리고 싶다.





이제 남편에게 고마운 이야기를 적어 내려갈까 하며, 컴퓨터 화면 너머 남편을 봤다. 그리고 당장 화가 치밀어 올랐다. 지금 내가 뭘 본 거지?


남편이 발뒤꿈치 각질을 떼어 수박 페페 화분에 던졌다이건 일종의 실수 같은 거야. 원래 행동하고 생각하는 사람이니까. 나쁜 의도로 한 게 아니잖아. 내가 수습할 수 있을 거야. 코딱지 아닌 게 어디야. 

나는!!! 각질을 찾아 버릴 수 있을 거야. 찾아낼 거야!!!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