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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영 Feb 25. 2022

일단 울고 시작해




목과 허리가 아파 빨래를 할 수가 없을 때가 있었다. 깊은 통돌이에 허리를 숙여 빨랫감을 빼야 하는데 허리도 고개도 숙일 수가 없었다. 통증이 심할 땐 설거지도 쉽지 않았고, 프라이팬에 무언가를 오래 볶기도 어려웠다. 한동안 집안일은 약간 멀찌감치 떨어져 볶거나 허리와 목은 꼿꼿이 펴되, 다리를 굽혀서 높낮이를 맞춰 해야 했다. 자연스럽지 않은 움직임에 손목이나 어깨에 힘이 들어가서 집안일은 조금만 해도 지쳤다. 머리를 말려도 어깨가 빠져나갈 듯이 아팠다. 나는 그 시절 몸바보였다.






지금은 허리와 목의 가동성이 좋아지고 있다. 좋아진다는 정도는, 몸의 움직임이 하루 딱 1mm씩 나아지는 기분이랄까. 할 수 있게 된 집안일이 신나는 상태랄까. 무거운 냄비를 드는 것도 신기하고, 비록 아직은 집게로 하지만 빨래를 꺼낼 수 있어 스스로 대견하고, 고구마를 잔뜩 삶아 냉동하는 것도 즐겁고, 김치 썰어 양파 썰어 파기름 내서 김치볶음밥을 '할 수 있다'는 것이 눈물 나게 좋은 거다. 아프기 시작한 지 1년, '1년이나 앓았으니 이제는 괜찮겠지' 하는 마음 때문인지, "나아지지 않으면 어떡할 건데?" 하는 대범함도 생겼다. 재활운동을 하는 곳을 알아본 지도 1년.  그동안 물리치료, 도수치료, 약물치료, 휴식 모두 해봤다. 휴식 중에 몸은 천천히 회복되었고, 운동을 할 수 있을 만큼의 체력은 된 것 같았다. 결국 찜해둔 운동 센터에서 온라인 상담을 두 번 정도 받았다. 몸 상태를 알리고, 비용을 묻느라 두 번. 그런데 알다시피 1대 1 레슨은 비싸다. 남편이 벌어오는 월급으로는 현상 유지도 어려운걸. 나도 일을 해야 할 텐데, 출퇴근하는 회사는 어렵고, 몸이 상전이라 카페 알바도 어렵고. 내 나이 35살, 앞으로 과연 인간으로서 생산적일 수 있으려나 고민하며 또 몇 개월이 흘렀다. 그 기간에 쭉 글을 적어 내려갔다. 그때 내가 할 수 있는 거라곤 책을 읽고, 몸을 살피고, 살살 집안일하며 글을 쓰는 일이었다.






그리고 어느  함께 일했던 동료에게서 연락이 왔다. 지독하게 일했던 기억에 전화가 반갑기도, 불편하기도 했다. 동료는 전에 함께 만들던 어린이 교재의 추가 집필을 의뢰했다. 퇴사하고는 근처에도 가기가 쉽지 않은 마음이었다. 혀를 내두르고 나온   교재를 다시 한다니. 절대 싫지! 하지만 나는  궁한 상태지고민해보겠다고 말했다. 그런데 잠깐, 집필이라고?  편집자인데? 상대 전화기 너머로는  고민하는  들렸을지 모르나,  꼬리는 올라가고 있었다.  쓰고 싶었잖아! 게다가  돈이면 운동도 신청할  있어! 죄다 내가 간절히 바라던 거였다.  그리고 일을 시작하기에 앞서, 교재 판권에 적힌 동료 이름을 보며 울컥하기도 했다. '우리 함께 개고생을 해서 만든  교재를 누가 쓰기는 할까 했는데, 쓴단다. 얘들아.' 나는 일도 하고 운동도 신청할  있었다.






집에서 20분 정도 버스를 타면 도착하는 그곳은 나처럼 근골격계 통증이 있는 사람들이 재활 치료 겸 운동을 하는 곳이었다. 대부분 1대 1 수업이라 사람도 적고, 쾌적한 장소였다. 첫날 나는 바닥에 누워 두 발을 들고 쩔쩔맸다. 물 밖 바닥에 떨어진 붕어가 간신히 숨을 할딱할딱 쉬는 모양이 아니었을까. 코어 근육을 강화한다는 운동들은 대개 제자리 운동이었음에도 집에 오는 길에 온 몸이 저렸던 것 같다. 허리를 절대 굽히지 않고 생활하다가 운동 쌤이 '접어도 된다'하며 내 허리를 뒤에서 앉아 요추를 살살 접어주었을 때 나는 사실, 아찔했다. 갑자기 뻑 소리와 함께 허리 디스크가 돌출하는 상상을 했다. 하지만 그 동작 이후에도 사고는 발생하지 않았다.






두 번째 수업에서는 나 스스로 허리를 굽혀보는 자세를 취하게 하고 쌤이 영상을 찍어줬다. 집에 돌아와 자기 전 영상을 보고 든 생각은 하나. '전혀 움직이지 않는데?' 쌤이 분명 박수를 치며 잘하고 있다고, 되고 있다고 응원을 해줬던 것 같은데 영상 속 내 요추는 휘지 않는 딱딱한 엿가락일 뿐. '선생님, 전혀 움직이지 않는데요?' 하고 답을 했더니, 요정 같은 쌤은 점점 나아질 거라 응원해줬다. 애초에 내가 아프다고 느끼는 사실이 뇌로부터 전달받은 것인데 때로 검사 결과와 자료상으로는 문제가 없는 경우도 많다며. 사람이 어떻게 고개나 허리를 굽히지 않고, 돌리지 않고 살 수 있겠냐며. 나 또한 노력하면 보통의 사람이 될 수 있다는 용기를 심어줬다. 실제로 재활 치료에서 이런 걸 인지 훈련이라고 하더라. 생각해 보면 겨우 운동 이틀째지만, 꼿꼿이 허리를 세운 자세 외에 (내 기준에) 허리를 굽혀 보기도 하고, 고개를 상당히 돌려보기도 하는 등 다양한 자세를 시도하는 건 꽤 고무적인 것 같다. 즉석 떡볶이 가게에서 사리 추가를 여러 개 한 듯한 뿌듯함 정도랄까. 몸 부자가 된 기분!






실제로 몸이 많이 아팠다. 잠을 잘 수도 없었다. 아파서. 그런데 아파서 움직이지 않아 몸이 굳고, 굳어서 몸이 아픈 연쇄적 고통이 이어졌다. 이 과정을 일일이 적던 때도 있었다. 그렇게라도 내 몸의 상태와 마음의 상태를 풀어내지 않으면 정말로 '미쳐버릴' 것 같아서. 당시 내 글을 보고 어느 문우는 "네가 몸을 읽어 내려가는 듯했어"라고 말해줘서, 그때 적어 내려간 글을 한 데 묶어 '앓고 읽는 시간'이라고 가제를 붙이기도 했다. 속을 풀어내야 했던 그 기간에 쓴 글의 대부분은 아픈 몸 이야기와, 내가 본 책과 드라마, 그리고 사람들이다. 안부를 물어주거나 실질적으로 상담이나 재정으로 도움을 주거나, 병원과 치료 방법을 소개해준 사람들도 있다. 연차까지 내가며 집에 찾아와 함께 시간을 보내준 친구들도 많다. 덕분에 나는 지독하게 앓되 늘 세상과 가느다란 실 하나는 놓지 않았던 것 같다. 언제든 도움을 요청할 사람들이 곁에 있는 것은 밤새 아파서 세상 참 억울해도, 다음날 기운을 차려야 하는 이유가 되었다. 사람들과의 약속은 지켜야 하니까.






살살 일하고 살살 운동하는 요즘은 잠도 잘 온다. 잠을 위해 먹고 있는 약을 하루쯤은 패스해볼까 하는 객기를 부리고 싶을 정도로. 하지만 난 의사와 약사와 운동사의 처방 외에 멋대로 행동하고 싶진 않으니까. 꼬박꼬박 잘 챙겨 먹는다. 내게 주어진 상황이 처음에는 억울했고, 화가 났고, 무기력했고, 지금은 적응했다. ‘적응한다’는 건 왠지 긍정적이기보다 수동적이고 답답하게 느껴지는 말 같긴 한데. 현실에 적응하는 것 외에 달리 할 수 있는 게 없을 때가 있지 않나. 때로 내 아픔을 아는 모든 이들을 떠나, 새롭게 시작하고 싶은 때도 있다. 하지만 내가 이곳을 떠나 주변 사람들 도움 없이 살 수 있나. 갑자기 굳었던 몸이 하루 만에 부드러워질 리 없고, 출퇴근할 수 없으니 외주 재택만큼 최선의 선택도 없고, 남편이 일하는 교회 사택을 뒤로하고 새로운 곳에서 시작할 상황도 아니라면. 지금 내가 살고 있는 이곳에서, 남편과 나의 아픔을 함께 오롯이 느낀 성도들과 함께, 일주일에 한 편씩 원고를 쓰고 소정의 금액을 받으며, 그 돈으로 운동을 등록하는 현상 유지 같은 이 일상에 적응하는 것이 지금 나의 최선이 아닐까. SNS에선 늘 건강한 몸으로 새로운 것에 도전하고 잘되는 몇몇 사람들의 이야기가 주목을 받고 '좋아요'를 얻지만. 사실 현실에선 매일 자기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는데 일상에 변함없는 사람이 더 많지 않나. 여기에 최선을 다할 수도 없는 연약한 몸과 마음인 사람들도 많고.






누가 내 이야기에 손을 뻗고 누가 이런 심심한 최선에 공감을 할까 싶은 생각조차 많은 사람이 할 테니까. 오늘도 나는 어제보다 허리가 약 2mm 정도 더 숙여졌고, 목 돌림이 시원해졌다. 네 번째 재활 운동 치료에서는 쌤과 시작 전에 둘 다 보라빛 운동복에서 서로 내적 아미임을 확인한 덕분에 좀 신이 났다. 우리 세뚜, 세뚜라고요. 그리고 짐볼을 등에 대고, 두 팔을 벌려 앞에 사랑하고 퉁퉁한 그 누군가가 있는 것처럼 크게 끌어안는 연습을 했다. 이때 등도 허리도 목도 편안하게, 복부에 힘은 들어가지만 몸을 이완해가며. 옆에 "그렇지! 목에 힘 빼고 날깨 뼈만 뺀다고 생각하면서, 명치에 바람을 넣는다고 생각하며 둥글게-" 하고 나를 열렬히 응원해주는 사람이 있는 것만으로도 기운이 났다. 새로 시작할 기운. 이러다 또 갑자기 아파서 울지도 모르지. 그렇지만 이제는 다시 뭐든 시작할 것 같다. 누군가에겐 시작하는 것조차 어렵다는 걸 안다. 그럼에도 뭐든 시작할 수 있다고 응원하고 싶다. 일단 울고, 시작하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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