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의 나를 있게 해 준 모든 인연들과 경험에 감사하다.
대학생 시절 4월 벚꽃놀이 기간은 나에게 그리 좋은 시간만은 아니었다.
그때 왜 그렇게 생각했는지 모르겠지만, 윤중로는 꼭 남자친구랑 가야 한다는 강박관념이 있었고 나는 그 당시 계속 싱글이었다;; 게다가 벚꽃놀이는 중간고사 시기랑 겹칠 무렵이라 그냥 시험공부해야지라는 핑계로 넘어가곤 했었던 게 기억난다.
대학교 졸업 후 컨설턴트 생활 초기에는 너무 바쁘고 몸이 힘들어서 주말에는 잠을 몰아서 자기 일수였고, 또 사람 치이는 곳 근처에도 가고 싶지 않았다. 그러다가 회사생활에 익숙해질 무렵, 그 당시 사귀던 남자친구가 서울대 뒤편에 너무나 아름답게 피어있는 벚꽃길에 드라이브를 데려갔다. 그때가 아마 처음 좋아하는 사람과 제대로 벚꽃을 즐겼던 날인 것 같다. 그날 입었던 옷, 자동차 창문을 열었을 때 느껴지는 바람, 해 질 녘 아름답게 흩어져 내리는 벚꽃들이 생생하게 기억이 난다. 물론 그 사람과는 헤어졌다.
회사를 그만두고 페루에 다녀온 뒤로부터는 훨씬 내 마음에 여유가 생겼던 것 같다. 우리 집에서 걸어서 10분 거리인 작은 하천길이 나름 유명한 벚꽃 명소였고, 20여 년 동안 살면서 한번 가지 않았던 그 길을 가족들과 자주 걸으면서 너무 행복했다. 더 이상 벚꽃은 꼭 남자친구와 윤중로를, 남자친구가 소개한 곳을 드라이브하거나, 걸어야 하는 게 아님을. 그냥 혼자 걷거나 그때 옆에 있는 사람들, 가족들, 친구와 걸어도 벚꽃은 그냥 벚꽃이고 그걸 받아들이는 사람은 바로 나 자신임을 알았던 것 같다. 뒤늦게서야, 남들이 정해놓은 룰이나 그 어떤 고정관념과 틀도 중요하지 않고, 그냥 나만 잘 즐기면 된다는 걸 깨달은 다음에서야 나는 사소한 것에도 행복했다.
싱가포르로 오기 전 1-2년은 당시 만나던 남자친구가 일본에 거주하고 있어서, 벚꽃 기간을 도쿄에서 보냈다. 너무 아름다웠고, 너무 화창했고, 행복했다. 그 당시 사업 초창기 여러 가지 고생들로 자존감도 떨어지고 꽤 힘든 시기였는데, 그날의 봄이, 꽃들이 그리고 그가 해준 말들이 너무도 힘이 되었고 나에게 용기를 주었다. 그 사람에게 지금도 참 고맙다. 그해 여름 싱가포르로 오게 되면서 그 사람과도 헤어졌다.
내가 살고 있는 싱가포르는 일 년 내내 여름이라 벚꽃은 구경도 못하지만, 매년 이맘쯤에는 내 마음에 우리 집 앞에서 본 벚꽃길이, 도쿄 마구로 강에서 샴페인과 함께 즐긴 화사한 벚꽃들이 눈에 펼쳐지고 내 마음은 환해진다.
벚꽃을 받아들이는 나의 마음이 해마다 바뀌어가는 걸 보면서, 지금 내가 가고 있는 방향이 옮음을 그리고 그렇게 실행할 수 있었음에 기쁘고 감사하다. 지금의 나를 있게 해 준 모든 인연들과 경험에 감사하다. 가장 아름다운 꽃은 결국 내 마음에 있음을.. 늘 감사하고 화사하게 활짝 핀 마음을 갖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