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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이 Oct 28. 2020

바다야 잠시 안녕

스타 크루즈 카지노 딜러의 이직 준비


언젠가 이 직업을 그만두게 되면
그땐 분명 이 모든 게 사무치게 그리울 테야



2015년 말 스타 크루즈 버고호가 호주 크루징을 할 당시, 포트 케언스(Cains)에서 기항지 관광을 위해 하선한 나는 순간 알 수 없는 이끌림에 걷던 걸음을 잠시 멈추어 세웠다. 앞의 일행들을 제쳐두고서 정박해있는 버고호를 물끄러미 올려다보니 오늘따라 그녀가 유독 새하얗고 기품 있게 다가왔다.


'그립겠지'

불현듯 떠오른 이 네 글자는 그 후로도 종종 내 머릿속을 헤집으며 도돌이표처럼 같은 말을 되뇌게끔 했다.



오늘은 어느 테이블로 배정이 될까 내 이름이 불리길 기다리던 애타는 시간, 이번만큼은 결코 실수하지 않겠노라 다짐하던 불안한 용기, 양 손 두둑이 카지노 칩을 움켜쥐고 기필코 승부를 보겠다는 플레이어의 살벌한 눈빛을 담담하게 받아들이려는 마음가짐, 페이 실수로 서베일런스 첵*을 위해 매니저를 부르는 긴장되고 민망한 순간, 새벽 네시 경 남몰래 졸린 눈을 비비며 쏟아지는 잠을 물리치려던 정신력, 원활하지 않은 의사소통에 삐걱거리는 자신의 모습이 실망스러워 잠들기 전 베갯속에 파묻혀 하염없이 흘리던 눈물.

*Surveillance Check: cctv 판독; 스타 크루즈 카지노 업장에서는 어떠한 이유로든(ex. 돈, 칩, 카드, 페이) 문제가 생길 시 해당 구역에서 가장 가까운 cctv로 그 상황을 되감아 판독하는데, 이를 일컫어 '서베일런스 첵'이라고 한다.


사실 크루즈승무원이 되고서 누렸던 즐겁고 행복한 기억들도 넘쳐나지만, 단기간에 급격한 성장을 했던 만큼 뼈를 깎는 고통은 이루어 말할 수 없었다. 언젠간 이마저도 그리워질 순간이 올 거란 걸 알기에 힘들고 지칠 때마다 나를 더욱 더 몰아세웠다.



스타 크루즈 버고호 deck7에서 바라본 홍콩 야경

그런데, 정말이었다. 하선을 결심하고 귀국을 한 나는 공백기 동안에도 크루즈에 대한 생각을 좀처럼 떨쳐 낼 수가 없었다. 그렇게나 힘들었는데, 그렇게나 많이 울었는데. 왜 또다시 돌아가고픈 마음이 드는 건지. 그 당시의 나는 해답 없는 문제를 붙들고 한참 동안이나 머리를 싸맸다.


그 말의 의미를 어렴풋 맛보았을 때였을까, 문득 아무렇지 않게 너스레를 떨던 때가 뇌리를 스쳤다.






살면서 가장 열정적으로, 그리고 최선을 다해 살았던 순간순간들.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고 있다는 즐거움을 안겨주었던 바다 위의 삶은 내 인생의 많은 부분을 바꾸어 놓았기에 더없이 소중한 곳임에 틀림없다. 하지만 동시에 돌아가고 싶지 않은 곳이기도 한 건, 모든 걸 쏟아부었기 때문이 아닐까.



'한 템포 느리게 걷기'

앞으로 나아가기에도 모자란 시간이지만, 지금은 잠시 멈출 때. 욕심은 조금 내려놓고 새로운 도약을 위해 잠시 숨을 고르어야 할 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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