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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이 Nov 25. 2020

별 거 아닌 질문은 없다

크루즈전문인력양성과정 4기 모집 설명회

전 세계 1대 선사인 카니발 크루즈 선사와의 면접에서 당당히 승선자 명단에 이름을 올린 나는 그 후로도 좀처럼 기쁨을 주체할 수가 없었다. 새로운 선사에서 더 넓은 세계를 보게 될 거라는 기대감이 한 번씩 잠을 설치게 만들기도 했다.


바다 위 삶에 대한 간절함이 점차 깊어질 때쯤, 어느덧 홀랜드 아메리카 라인*의 6만 톤급 중소형 크루즈인 볼렌담호로의 승선이 코 앞에 다가왔다.


이번이 첫 번째 승선은 아닌 만큼 승선 전 하루하루가 얼마나 소중한지 나는 알고 있었다. 무엇보다 남은 시간을 즐겁고 알차게 보내자고 결심했는데, 그러던 와중 우연히 설명회 진행 제의가 들어오게 되었다.


*홀랜드 아메리카 라인(Holland America Line): 전 세계에서 가장 큰 선대, 카니발 코퍼레이션(Carnival Corporation&plc)의 자회사 중 하나로 네덜란드 국적의 선사이다.

프리미엄 크루즈의 선두주자인 홀랜드 아메리카 라인은 대중적 크루즈의 성향을 띄는 로열캐리비안 크루즈, 프린세스 크루즈, 스타 크루즈 등과는 다르게 주요 고객층의 연령대가 비교적 높다. 따라서 반드시 격식을 차려야 한다는 무언의 인식이 자리하고 있지만, 140년 이상의 풍부한 크루즈 항해 역사와 다양한 노하우로 모든 고객에게 최고의 감동을 전달하는 선사인만큼 그런 걱정은 조금 접어두어도 좋을 것 같다.



내가 과연 잘할 수 있을까?


부끄러움도 많고 수줍음도 많이 타는, 외향적이면서도 한 없이 내향적인 성향을 가진 나는 처음에 무진장 당황했지만 분명 즐겁고 색다른 경험이 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고심 끝에 제안해주신 교수님께 감사하다는 인사와 함께 한번 해 보겠다고 말씀을 드렸다.


서울, 광주, 부산에서 진행되기로 한 이번 설명회는 해양수산부와 고용노동부가 주관하는 사업인 '크루즈 전문인력 특별 양성과정'과 관련이 있다. 얼마 전 3기로 이 과정을 수료한 내게 4기 모집을 앞두고 이런 귀한 자리가 주어져 너무도 감개무량했다.



첫 번째 설명회는 서울 마포구에 위치한 신라 스테이 지하에서 진행되었다. 설명회 시작까지 아직 시간적 여유가 있었으나 관계자와 청중 분들께서 이미 빼곡하게 자리를 메꿔주고 계셨다.


본격적으로 설명회가 시작되었고 이 교육과정 프로그램에 대한 전반적인 소개와 더불어 일반인들에게 있어 크루즈와 크루즈 승무원에 관하여 생소한 부분을 시원하게 긁어주는 질의응답 시간이 차례로 이어졌다. 서울 참여자 분들의 적극적이고 시원시원한 자발적 참여 덕분에 설명회는 내내 화기애애하게 물 흐르듯 흘러갔다.






여태 이렇게 많은 청중들 앞에 서본 경험이 전무한 나는 준비 과정에서부터 나사가 삐걱거리기 시작했다. 무대체질이 아니기에 중요한 자리인 만큼 차질 없이 진행하고 싶었지만 야속하게도 좀처럼 소스가 떠오르질 않는 것이었다.


준비를 하며 '청중에게 어떤 이야기를 들려주는 게 좋을까'에 대해 끊임없는 고안을 했다. 오래도록 타협점을 찾지 못하던 와중 길고 긴 고민의 끝에서 무언가 뇌리를 스쳤다.

'그래, 내 이야기를 쓰자!'


대체 어떻게 하면 좋을지 모르겠는 나와, 어떤 게 궁금한지 조차 모르는 그분들의 입장을 고려하니 '잘 모르는 사람들도 쉽게 이해할 수 있게'를 중점으로 두고 이야기를 만들어나가면 되겠다 싶었다.


말주변도 하나 없는 내가 주변의 아무런 도움 없이 혼자서 준비를 하려니 이건 뭐 거의 달걀로 바위 치기의 수준이었다. '내가 지금 잘하고 있는 건가?'라는 의문에 대답해 주는 이는 아무도 없었고, 확인차 교수님께 초안을 제출했을 땐 번번이 실패를 맛보았다. 하지만 약한 소리는 금물, 이 일은 발표 이전에 어디까지나 내 이야기를 정리하는 시간이기도 하므로 시작한 만큼 꼭 끝을 보고 싶었다.



나는 누구, 여긴 또 어디?


내 차례가 가까이 다가올수록 어디선가 째깍거리는 시곗바늘 소리가 들리는 것 같더니 덩달아 심장이 빠르게 뛰기 시작했다. 시작 전까지 충분한 시간을 두고 나름대로 평정심을 유지했다고 생각했는데, 이게 웬걸! 갑자기 호흡은 가빠지고 손에 땀은 왜 이리 나는 건지. 극도로 긴장한 탓에 순간 쥐구멍에라도 숨고 싶었지만 이제는 그 어디에도 물러날 곳이 없었다.


마침내 내 인생 첫 발표가 시작되었다. 환한 웃음을 띄어 보인 나는 청중석을 바라보며 곧게 섰다. 올망졸망 열의에 찬 그 눈빛들을 마음속으로 꾹꾹 모아 담았다. 오늘 이 자리에서 나로 인해 무언가를 얻어갈 수 있길 바라며 꼴깍- 하고 침을 삼켰다. 나는 크루즈에서의 경험을 토대로 하나씩 이야기를 풀어나갔고 진행 중 약간 혀가 꼬이기도 했지만 나름대로 자연스럽게 마무리를 지어 보였다.


눈치도 없이 쿵쾅거리는 심장을 행여 들킬까 싶어 진땀을 뺐는데 발표가 끝남과 동시에 이렇게 후련해지다니, 에잇. 그들을 향해 연신 '감사합니다!'를 외쳐대고는 곧장 자리로 돌아와 착석했다. 남들에겐 별거 아닌 15분 스피치는 나에게 150분 동안 허공 속에서 미로를 헤매는 느낌을 선사하였다.



일주일 뒤, 부푼 마음을 안은채 우리는 전라남도 광주로 향했다. 김대중 컨벤션 센터에서 이루어지는 이번 설명회에는 광주여대 학생들이 대거 참석해 주셨다. 단정한 옷차림에 깔끔한 외모, 그리고 질서 정연한 행동들이 완벽한 조화를 이루고 있었다.


현재 그들이 꾸는 꿈은 바다 위를 누비는 크루즈가 아니라 비행하는 삶인 항공 분야였다. 하지만 서비스직이라는 공통된 틀 안에 있는 직업군인만큼 이것저것 궁금한 게 많을 것 같았는데 의외로 질문율이 높지 않아 나의 의아함을 자극시켰다.



두 번째니까 조금 덜 떨리지 않을까 싶었지만 무대에 올라 정면을 응시하니 꽁꽁 묶어두었던 긴장감이 다시 날뛰기 시작했다. 이 넓은 공간에 울려 퍼지고 있는 내 목소리를 듣고 있으니 어색하기 짝이 없는 게 아닌가.

'경륜을 조금 더 쌓으면 언젠가 나도 마이크를 잡았을 때 올곧은 소리를 낼 수 있을까?'


이날은 로열캐리비안 현직 승무원분께서 휴가 중 우연한 기회로 이곳을 방문하셨다. 놀랍게도 광주여대 출신인 그분은 말도 조리 있게 참 잘하셨는데 그 모습이 유독 후배들 앞에서 반짝반짝 빛나 보였다.


광주에서 부산으로 곧장 이동한 우리는 아름다운 광안리 밤바다를 뒤로하고 내일을 기약했다.



마지막 설명회는 부산 벡스코 중회의실에서 진행되었다. 마지막 날이기도 하고 전반적인 분위기가 너무 좋아서인지 상대적으로 부담이 덜했다. 준비해온 이야기를 전달하면서 '더 잘할 수 있었을 텐데'하는 느낌은 여전했지만 이번만큼은 즐기면서 했다는 마음에 더할 나위 없이 행복했다.



끝으로 참여해 주신 청중분들과 작게나마 소통할 수 있는 자리가 마련되었다. 일렬로 나란히 앉아있는 관계자 분들의 열정적인 모습과는 대조적으로 청중석에서는 어딘가 긴장 기류가 미세하게 흐르고 있었다. '이대로 질문이 없는 걸까' 갸우뚱하던 찰나, 조심스레 손을 들고 궁금증을 이어나가는 한 분의 용기 덕분에 꼬리를 물고 몇 가지 질문들이 무대를 향해 쏟아져 나왔다.

'나도 딱 저런 생각을 하던 때가 있었는데'



"제 경력이 이것뿐인데 저도 가능할까요?"
"죄송한데 이 부분에 대해 설명해 주실래요?"
"저는 이런 게 좀 약한데 다른 방법이 없을까요?"
"일 하셨을 때 힘들지 않으셨어요? 거긴 어때요?"


혹시라도 시간이 흐르고 흘러 본인들이 했던 질문이 무심코 떠오르는 순간, 부끄러운 맘에 별 거 아니라 치부해버릴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절대로 그렇지 않다. 나는 세상에 별 거 아닌 질문은 없다고 생각한다. 지금의 사고로 바라봤을 때 전혀 납득이 가지 않는 부분들 투성이라 하더라도 그 당시에는 그렇게 생각했어야만 하는 이유가 있었을 테다.






세 번의 설명회가 끝난 후 나는 지난날들을 찬찬히 돌아보았다. 거울 속에 비친 내 모습은 뿌듯함 속 지친 기색이 얼핏 엿보였다. 아닌 척했지만 사실 남모를 고민을 참 많이도 했던 것이었다. 고생했던 나를 다독이며 스스로에게 이 한마디를 선물하기로 했다.

'그래도 잘 해냈어, 대견해!'



우연한 기회로 소중한 경험을 하게 된 값진 순간들. 크루즈 승선을 얼마 남기지 않은 시점에서 크루즈승무원이라는 직업에 관심을 갖고 계신 분들과 소통하면서 그들에게 좋은 기운을 전달한 것만 같아 기쁨이 마구 차올랐다.


서투르고 어리숙했던 나를 밝게 비춰주기 위해 스스로 어둠을 자처하신 그분들의 성은에 다시금 고마워지는 하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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