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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이 Nov 18. 2020

귤 까먹으며 면접 보기

전 세계 1대 선사, 'Carnival Corporation' 면접 후기


Do you want some oranges?


면접 후기인 줄 알고 클릭했는데 이 무슨 생뚱맞은 소리냐고? 놀랍게도 카니발 선사와의 면접날 담당 면접관이 내게 건넸던 말이다.



상해에서의 해외 교육 과정이 본격적으로 시작된 11월의 마지막 주. 9시 수업을 듣기 위해 아침 일찍 일어나 준비를 하고, 넓디넓은 캠퍼스를 우리 집 앞마당 마냥 자유로이 누비고, 어눌한 중국어 실력으로 가게 점원에게 한 마디씩 건네보고, 식당에서 여러 가지 현지 음식들을 도전해보고, 학교 밖 근처를 샅샅이 탐방하며 그렇게 조금씩 견문을 넓혀갔던 우리.


언뜻 보면 지극히 평범한 유학생의 일상이라고 하겠지만 사실 우리 모두의 신경은 온통 한 곳에 쏠려있었다. 그것은 바로 코앞으로 다가온 해외 크루즈 선사와의 면접.


이 면접은 해외 교육과정이 진행되는 이유 중 상당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만큼 과정 참여자 대다수는 상해에 온 목적을 이번 면접에서 합격증을 받아내느냐 마느냐에 두고 있었기 때문이다.






면접날 아침, 평소에 등교할 때보다 조금 더 일찍 기상하여 거울 앞에 앉았다. 차분하게 마음을 가다듬고 메이크업을 완성했는데 어쩐지 오늘따라 어피에 쏟는 시간이 자꾸만 길어져갔다. 혼자서 낑낑거리고 있으니 자꾸만 불안감이 나를 엄습하는 것 같았다. 다행히도 룸메 언니들이 한걸음에 달려와 깔끔하게 매만져주었고, 나는 만족스러운 모습을 하고 방을 나서기 전 주문을 외웠다.

'그래, 잘할 수 있을 거야. 걱정하지 말자.'

 

오늘 진행될 카니발 크루즈 선사와의 면접은 상해 시내에 위치한 화양이라는 에이전트에서 보기로 되어 있었다. 면접장소가 학교와는 조금 거리가 있어 우리는 기숙사 건물 앞에서 대형버스로 다 함께 이동하기로 했다. 오랫동안 기다려왔던 면접이라 그런 걸까, 버스 창밖 너머로 비치는 내 모습은 내 마음은 긴장보단 설렘으로 가득해 보였다.


에이전트 대표인 Roger가 대기실에 입장하여 환영의 인사를 건넸다. 옆자리에 앉은 중국인 친구들과 이런저런 대화를 주고받으니 그제야 분위기가 화기애애하게 전환되는 듯했다. 하지만 대기시간이 생각 이상으로 길어지자 없던 긴장감도 솟아오르기 시작했다.



드디어 내 차례가 다가왔다. 문을 열자 호주 출신의 면접관인 Nathan이 나를 반갑게 맞이했고, 다른 한 분께선 눈인사를 짧게 건네고는 곧바로 테이블 세팅을 시작하셨다. 그는 내 유니폼에 달린 네임 벳지를 보고 이내 질문 공세를 펼쳤다.

'한국어로 네 이름은 어떻게 발음하는 거야?'
'와, 너 카지노에서 일한 경험이 있구나? 좋아, 앉아봐!'


자리에 착석하니 그는 뜬금없이 내 손에 '' 하나를 쥐어주었다.

'우선 이거 먹고 면접을 시작하는 게 어때?'
'그래? 그럼 내 상의 단추를 좀 오픈해도 될까?'


면접이 시작되기 전 샐러드를 몇 입 먹었더니 상의가 너무 타이트 해졌다는 장난 어린 푸념을 시작으로 면접은 릴랙스 한 상태에서 진행되었다. 참여자들과 스터디를 하며 어떤 질문에도 대답할 수 있게끔 준비했던 게 무색할 만큼 그는 오롯이 경력에 관해서만 질문을 쏟아부었다. 아무래도 현장에 투입시켰을 때 얼마나 빠르게 적응할 수 있는지를 판단하는 듯했다.


영어가 스몰 토크의 주제로 근접하자 나는 영어를 그렇게 잘하지 못한다고 언급했다. 그런 내 대답에 줄곧 온화했던 그의 표정에 살짝 금이갔다.

'대체 왜 그렇게 생각하는 거야? 너는 이미 충분히 2개 국어를 구사하고 있잖아. 나는 영어밖에 할 줄 모르는데, 이 정도면 네가 나보다 낫다고 생각하는데?'


빨려 들어갈 것 같은 그의 화술에 고개를 끄덕이다 보니 어느덧 대화는 막바지를 향하는 듯했다. 그는 A4 용지에 빼곡히 채워진 계산 문제를 건네주었고 나는 빠르게 그것을 풀어냈다. 그러자 곧이어 테이블 테스트의 진행을 위해 그는 카지노 칩과 카드를 레이아웃 위로 촤르륵 펼쳤다.

'지금부터 게임 한 판 해보자.'


스타 크루즈 출신이라면 바카라(Bacarrat) 게임 정도는 자면서도 딜링 할 수 있다는 우스갯소리가 있다. 그들은 자신 있게 선보이는 나의 시뮬레이션과 외향적인 분위기가 마음에 들었는지 딜링 내내 흡족한 미소를 지어 보였고, 나는 그들의 표정을 읽을 정도의 여유를 가지며 이 상황을 즐기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심장이 빨리 뛰고 이마에 식은땀이 맺혔다. 의기양양하던 내 태도는 언제 그랬냐는 듯 순식간에 사그라들었다. 블랙잭(Blackjack) 게임에서의 계산 실수가 자꾸 발생했기 때문이다. 핑퐁 토크로 오가는 '질문→답→질문→답'의 과정에서 그의 질문이 내가 예전에 근무했던 테이블의 단위에서 상당히 벗어났던 게 그 이유였다.


스타 크루즈는 블랙잭보다는 바카라 테이블의 비중이 월등히 높기 때문에 블랙잭 딜링 경력이 부족할 수밖에 없다. 몇십 개의 바카라 테이블 중 블랙잭 테이블은 단 한 개뿐이라 그곳으로 배정되기가 쉽지 않았기 때문. 그렇지만 이 모든 건, 어디까지나 내가 노력을 덜 했던 탓이겠지 하며 나를 꾸짖었다.


매끄럽게 흘러가던 면접이 턱- 하고 막히자 입 안이 바짝 마르기 시작했다. 할 수 있으니 조금만 기다려달라고 우선 말은 뱉었지만 두 눈에 초점을 잃고 버벅거리는 내 모습에 Roger 또한 당황해하며 왜 이런 걸 모르냐고 중국말로 마구 쏘아붙였다. Nathan은 가만히 이 상황을 지켜보다 이내 입을 열었다.

'딜링 스킬이나 영어 실력, 모든 게 다 괜찮은데 너 왜 이걸 계산 못해? 이렇게 해서는 네 이름을 합격자 명단에 올릴 수는 없어. 그럼 나도 경고 먹을지도 몰라. 난 그러기 싫어!'



결국 5분 뒤에 다시 들어오라는 그의 호통에 나는 고개를 푹 숙인 채 문을 열고 나섰다. 그 외침이 무서웠다기보단 이런 걸로 전전긍긍하고 있는 어리숙한 내 모습이 너무 답답했다. 대기실로 돌아가니 아니나 다를까 여기저기서 참여자들의 궁금증이 나를 멈춰 세웠다. 그 소란스러운 상황 속에서 마음을 가다듬느라 나는 필사적으로 노력했다. 정해진 시간이 되자 주먹을 꼭 쥔 채 다시 면접실로 향했다.


떨리는 심장을 부여잡고 조심스럽게 손잡이를 돌렸다. 고개를 들고 Nathan을 지긋이 응시하니 그는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다시 해보자는 그의 말에 나는 크게 심호흡을 한 후 말문을 틔었다.



이게 무슨 일이지?


조금 전 꽝꽝 얼어붙어 녹을 기미조차 보이지 않던 머리가 갑자기 팽팽 돌아가기 시작했다. 그가 던지는 질문마다 대답이 술술 나왔지만 그 이유는 나도 알 수가 없었다. 당황해하고 있는 내 앞에는 휘둥그레진 세 사람의 눈망울만 반짝이고 있을 뿐이었다.

'도대체 아까는 왜 대답을 못했던 거야?'
'너 지금 나한테 장난친 거야?'


Nathan과 Roger가 나를 향해 번갈아가며 이야기를 하는데 어안이 벙벙했다. 심지어 Nathan은 대답해 줘서 고맙다며 악수를 건네기도 했다. 이 아이러니한 상황이 너무 우스워 그만 넷이서 한참 동안이나 배를 잡고 꺄르륵 웃었다. 그제야 긴장이 풀려 안도의 한숨을 내쉬고 있는 내게 Nathan은 진심 어린 조언을 전했다.

'승선해서 실수하거나 제대로 안 하면 너 찾아가서 괴롭힐 거야. 여기에 적힌 네 이메일, 번호로 연락할 거니까 가서 꼭 잘해.'






면접 당일 승선 날짜와 크루즈 선사, 선박명을 모두 받게 된 우리. 그전에는 한 번도 이런 케이스가 없었다며 Roger가 그날 합격자들을 향해 축하의 인사를 전했다. 아시아 리딩 크루즈 선사인 스타 크루즈에서 전 세계 1대 선사로의 이직은 이렇게 성공적으로 마무리되었다.


면접 후 받게 된 합격자 명단

카지노 부서 합격자들은 본인이 승선하게 될 선박과 지역이 마음에 들었는지 얼굴 한 가득 함박웃음을 띄고 있었다. 그들로부터 종이를 건네받은 나는 얼굴의 온 근육이 경직된 채 두 눈을 껌뻑거렸다. 뒷걸음질 쳤던 자세를 바로잡느라 엉거주춤한 상체를 꼿꼿이 세우고는, 쨍하게 빛나고 있는 형광등을 슬쩍 손으로 가리며 다시금 공중에서 종이를 펄럭거려보았다.


'이번에는 나도 미주 지역에서 승선할 수 있을까?' 하는 기대와 설렘이 순식간에 와르르하고 무너져 내렸다. 내 이름 옆으로 배정된 선박명은 다름 아닌 ‘Hong Kong’으로 표기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불과 몇 달 전에 홍콩에서 한국으로 겨우 돌아왔는데 다시 홍콩으로 가야 한다니. 혹시 이대로 또다시 아시아 크루즈만 주구장창 하게 되는 걸까, 무언가 형언 못 할 기분이 나를 압도하기 시작했다.



다른 참여자들은 전부 ‘Regal Princess, Caribbean Princess, Carnival Splendor, Carnival Freedom' 등 카니발 크루즈와 프린세스 크루즈로 선박을 배정받았다. 그러나 나는 전공자에게도 낯선 이름인 홀랜드 아메리카 라인의 'Volendam'호로 결정이 난 듯했다.


왜 나 혼자만 다른 곳으로 가게 되는 걸까, 순간 멀찌감치 동떨어진 느낌이 싸하게 들었다. 왜 그랬는진 잘 모르겠지만 필히 함께 동고동락한 다른 합격자들과 같은 선사로 승선하고픈 마음이 크게 요동쳤을 테다.



에이전트 직원들, 그리고 우리 과 학생들과 함께

하지만 좋은 의미로 해석해 보면 홍콩은 내가 스타 크루즈와 쉽지만 않았던 시절을 보냈던 두 번째이자 마지막 계약의 추억들이 머물러 있는 곳이다.


그러니 이다음에 다시 방문하게 되면 분명 반가움과 그리움에 못 견딜 거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더욱이 이제는 전혀 다른 선사와 계약을 진행하게 되는 거니까 아무런 걱정 말고 편하게 마음을 먹어보리라 다짐했다.

'앞으로 좋은 일이 더 많이 일어날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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