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가 '크루즈승무원은 여가시간에 뭐 해요?'라는 질문을 받아 스스로에게 되물어본 경험이 있다.
크루즈라는 특수한 환경은 먹고, 자고, 놀고, 일하기의 조건을 모두 충족시켜준다. 따라서 집이 직장이고 직장이 집인 셈이다. 그렇다면 거주지와 일터의 경계가 없는 공간에서 생활하는 크루 멤버들은 어떻게 여가를 보내는 걸까?
우선 크루즈 내부의 공간이 어떻게 구성됐는지에 대해 어느 정도 인지하고 있어야겠다.
크루즈를 탑승하게 되면 누구나 발을 디딜 수 있는 공간 즉, 승객들이 주로 이용하는 Passanger area가 있고 크루 멤버들만 이용할 수 있는 Crew area가 있다.
대부분의 크루 멤버들은 승객 구역을 자유로이 넘나들 수 있지만 그럴 시 반드시 네임 텍을 착용해야 한다. 하지만 승객들은 승무원 구역의 입장에 제한이 걸린다. 이따금 승무원 구역을 체험하는 투어가 있기는 한데 이런 경우가 아니라면 절대 출입이 불가능하다.
그리하여 근무가 없는 여가시간에는 때때로 유니폼을 훌훌 벗어던지고 멋지게 옷을 차려입는다. 시간에 쫓기지 않아도 되니 뷔페에서 느긋하게 앉아 식사를 하거나 레스토랑을 예약해 동료들끼리 오붓한 시간을 보낸다. 여유로운 오후에는 승객들처럼 기항지 투어로 크루즈승무원만이 누릴 수 있는 혜택을 톡톡히 본다. 공연이 있는 날이면 극장으로 발걸음을 하고, 오픈덱에서 영화를 상영하는 날이면 바닷바람을 맞으며 팝콘을 우적우적 씹어먹는다. 단, 이 모든 행위는 물론 승객들에게 피해가 가지 않는 선에서 이루어진다.
물론 매번 이렇게 의미 있게 계획해서 시간을 보내는 것은 아니다. 일반적으로는 같은 부서 동료들끼리 캐빈 파티를 열어 맥주 한 잔 혹은 와인 한 잔을 기울이는데, 앉아서 하하호호 수다를 떨거나 야식을 먹거나 영화를 보곤 한다. 반대로 이 시간을 틈타 체력 회복을 위해 달콤한 휴식을 취하기도 한다.
크루바에서는 매달 이러한 이벤트 캘린더를 안내한다
크루바에서는 소파나 의자에 둘러앉아 저마다의 방법으로 하루의 스트레스를 날린다. 가라오케 나잇이면 너도나도 앞에 나와 노래실력을 뽐내고 퀴즈 나잇 혹은 빙고 나잇이면 사회자의 진행에 온 집중을 쏟으며 그 분위기를 즐기며, 디스코 나잇에는 정신이 몽롱해질 때까지 몸을 흔든다.
한동안은 각자의 듀티가 끝나면 어김없이 게스트 엔터테이너(=Guest Entertainer; 승객들의 공연을 담당하는 크루 멤버)인 케테이 방에 속속히 모여들었는데, 케테이는 언제나 환한 미소로 우리를 환영해주었다. 어느 누구도 특정한 시간을 정해 만나자고 하지는 않았으나 암암리에 약조라도 한 듯 이곳은 어느새 크루바와 같은 아지트가 되어버렸다.
오늘 하루는 어땠는지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으로 시시콜콜한 잡담을 주고받으며 밖에서 구매한 과자를 나눠 먹거나 맥주를 마시고 게임으로 승패도 가리며 오프 듀티의 행복한 기분을 만끽하곤 했다.
케테이 방에서 테트리스 위너와 루저를 가른 날
크루바는 다른 부서 동료들과 친해지기에 제격인 공간!
혼자 보내는 시간을 조금 더 선호하는 나이지만 이렇게 마음 맞는 친구들과 함께할 땐 시간 가는 줄 모른다.
우리도 사람인지라 승객을 응대하다 보면 종종 스트레스도 받고, 화도 나고, 속상하고. 내 맘이 내 맘 같지 않은 그런 복잡 미묘한 감정을 다분하게 겪는다. 하지만 프로라면 그럴 때일수록 스스로를 잘 컨트롤해야 할 테다.
가끔은 이 방법 저 방법 모두 먹히지 않아 한 없이 우울해지고 무기력해지는데, 그럴 때는 정말이지 속수무책이다. 그렇지만 나만 힘든 게 아니라 누구나 그런 거니까 라고 생각하면 왠지 모르게 안도의 한숨과 옅은 미소가 입가에 번지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