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폭의 그림 같은 드넓은 푸른 하늘 위로 무심한 듯 턱-하고 걸쳐진 새하얀 뭉게구름들이 질서 없이 물결처럼 두둥실 떠있다. 그 사이로 작렬하는 태양열은 이글거리는 자연의 열기를 마구마구 뿜어내는데 그 모습은 흡사 달궈진 아스팔트 위로 불꽃같이 아른거리는 아지랑이를 연상케 했다.
그날은 그런 여느 때와 다름없는 더위가 기승을 부리는 평범한 여름날이었다. 열아홉의 나는 정말 우연의 계기로 내 인생을 송두리째 바꾼 사건을 마주하게 되었다.
점심식사를 마친 여느 때처럼 평범한 점심시간. 5교시 수업이 시작되기 전, 잠을 보충하는 친구, 삼삼오오 모여 수다를 떠는 친구, 공부를 하는 친구, 노래를 듣는 친구 등. 교실이라는 작은 공간 안에서 우리는 저마다 다양한 모습을 그리고 있었다. 책상과 의자들이 어지러이 놓인 교실 한 중앙에 우두커니 서 있던 나는, 순간 나도 모르게 시선이 교실 왼쪽 구석에 위치한 컴퓨터 책상으로 이끌린다는 느낌을 강력하게 받았다.
그때의 감정과 기분을 세세하게 떠올리고 싶은 마음에 흩어진 기억 퍼즐을 맞추어보려 했으나 번번이 실패했다. 찰나의 순간, 내 두 눈은 그곳을 향했고 그렇게 나는 영문모를 이끌림에 시선이 다다른 곳으로 뚜벅뚜벅 걸음을 옮겼다는 그저 그런 기억만이 흐릿하게 남아있을 뿐이었다.
그로부터 몇 년이 흘렀지만 여전히 답은 구해지지 않고 있다. 오히려 아리송하기만 하다. 진로를 선택해야 하는 인생의 갈림길 위에서 어쩌다 내 삶 속으로 파고든 크루즈. 우연인 걸까, 아님 운명인 걸까. 운명이라면 정말 그런 게 있기는 한 걸까?
내가 만약 그 시간, 그곳에 있지 않았더라면 지금쯤 내 삶은 어떤 모습을 그리고 있을까? 나는 크루즈승무원과는 무관한 전혀 다른 길을 걷고 있을까? 나는 그녀(크루즈)와 사랑에 빠지지 않았을까?
한 번씩 이러한 망상의 늪에 빠져 허우적댈 때면 등골이 서늘하게 시려오거나 오싹하게 소름이 끼치고 나서야 정신을 되찾곤 한다.
그렇게 10대 마지막 시절의 나는 오직 크루즈승무원 하나만을 꿈꾸며 과감하게 진로를 결정하였다. '우연일까 아님 운명일까?' 열아홉 그 시절의 나는 뭔가에 홀린 듯 마냥 크루즈의 마력에 풍덩 빠져버렸고, 그 웅덩이에서 쉽사리 헤어 나올 수가 없었다.
감사하게도 시간이 흐름에 따라 스스로 내리게 된 결정이라는 화분에는 자그마한 확신이라는 새싹이 고개를 빼꼼하고 내밀었다. 그리고 그 의지가 꽃봉오리를 피울 때쯤 나는 가까운 미래를 디자인하기 시작했다.
'크루즈가 아니면 안 돼!'라는 확고한 집념은 희망 대학교 1 지망이자 마지막 지망으로 크루즈 승무원학과만을 써넣었다. 무모했던 결정이었을지 모르나 후회는 없다. 그래도 이따금 그 시절을 회상할 때면 쿵쾅대는 심장을 주체하기란, 쉽지 않다. 그로부터 수많은 시간이 흘렀지만 여전히 덤덤해질 수 없는 이유는 아마 운명처럼 다가온 그 찰나에 인생을 뿌리째 뒤바꾼 선택을 하였다는 사실이 아닐까.
크루즈가 없는 인생은, 크루즈승무원이었기에 경험할 수 있었던 이 모든 것들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치부해버리는 건, 외람된 말이지만 상상도 할 수 없고 상상하기도 싫다.
내가 살아가고 있는 이 세상에서 지금의 '나'라는 사람을 곱게 빚어 준 아주 사소한 그 해프닝처럼 지금의 그들을 있게 해 준 사건은 대체 무엇일까?
오늘따라 예비 크준생(크루즈승무원 준비생)분들의 크루즈 승무원을 꿈꾸게 된 이야기가 무척이나 궁금해지는 하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