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선 크루즈승무원의 가장 큰 장점 중 하나는 바로 급여를 $US로 지급받는다는 것이다. 이 돈은 해상법에 의해 세금도 떼지 않는다.
크루즈승무원은 대게 한 달에 두 번 급여를 지급받는다. 아주 예전에는 선사를 불문하고 현금으로 지급되는 형태가 빈번했는데, 요즘은 대게 선사에서 제공하는 샐러리 카드로 급여가 들어오고 체크카드의 형태로 사용이 가능하다. 행여 돈다발을 잃어버릴까 고민하지 않아도 된다는 점을 고려해본다면 훨씬 안전해진 것이다.
크루즈승무원이 되고 나서 회사로부터 공식적으로 받게 된 첫 월급, 그러니까 내 이름과 포지션이 찍힌 급여 봉투를 처음 만져 본 그 여름을 나는 아직도 잊을 수가 없다. 크루즈승무원이 되기 전 한국에서 직장 생활의 경험이 없던 나는 아무래도 남들보다 더 들뜰 수밖에 없었다.
크루 카드(crew card)와 샐러리 슬립(salary slip=pay slip)
스타 크루즈 승무원들은 크루 카드로 급여를 지급받는데 급여날 샐러리 슬립도 함께 받게 된다. 이 샐러리 슬립 안에는 급여의 세부내용을 확인할 수 있는 내역서가 들어 있다.
크루 멤버들은 페이 데이(pay day)에 급여가 들어온 크루 카드와 샐러리 슬립을 챙겨 선내 파이낸셜 오피스(financial office; 스타 크루즈 월급/환전 관리 사무실)로 직접 찾아가야 한다. 그 후 원하는 금액을 요구하면 그에 해당하는 돈을 바로 건네받을 수 있다. 얼마를 인출하느냐는 본인의 선택이지만 하선 시에는 크루 카드 안에 있는 돈 전부를 인출해야 한다.
정해진 시간에 방문해야 한다는 번거로움이 있었지만 그럼에도 우리는 월급이 들어오면 오피스를 찾아가 $US를 인출해 $HKD(홍콩 달러)로 환전하여 사용했다. 환율이 나쁘지 않았기 때문이기도 하겠다. 이곳에서는 홍콩 달러만 환전이 가능하였으며 방문할 시 샐러리 슬립은 반드시 소지하지 않아도 됐던 걸로 기억한다.
대기하는 사람이 많은 탓에 기다릴 시간이 넉넉하지 않을 때면 해당 기항지의 로컬 환전소에서 그 나라의 화폐로 바꾸어 사용하곤 했는데, 사실 크루 멤버들은 이를 더 선호했다. 주로 도보로 접근 가능한 곳에 환전소가 위치하고 있어 이용하기에 간편했기 때문이다.
고강도의 근무에 피로가 누적될 때면 나도 모르게 기운이 쭉쭉 빠지곤 했는데 그럴 때마다 우리를 구원해준 건 역시 월급날이었다. 크루즈에서 근무하기 전 한국에서 아르바이트를 할 당시의 최저시급은 5,210원. 일반적으로 손을 스치지 않고 통장으로 급여가 들어오는 게 지극히 당연할 때였다.
그런 나를 놀라게 한 건 크루즈에서 맞이한 월급날. 일한 대가로 받게 된 급여는 외국계 회사인 만큼 벤자민 프랭클린이 새겨진 미국 달러였고 마음만 먹으면 현금으로 소지가 가능한 시스템을 갖고 있었다.
휴가를 맞이해 귀국한 나는 돈 봉투를 들고 곧바로 은행으로 향했다. 쭈뼛거리며 갖고 있던 $US 뭉치를 직원에게 건넸다. 그녀는 얼마 안 가 환한 미소와 함께 초록색 지폐 한 뭉텅이를 내 손에 쥐어주었고, 나는 그제야 실감이 났는지 한참을 그 자리에서 킁킁거리며 돈 내음을 맡았다.
스타 크루즈 버고호 하선 후(쓸만큼 쓰고 남은) 손에 남은 현금
고된 노동의 시간에 비례하면 $1000이 안 되는 급여는 부족하기 그지없었지만 그런 건 크게 중요하지 않았다. 바다 위에서 내가 겪은 모든 일들은 결코 돈으로는 살 수 없는 진귀한 경험이었기 때문이다.
처음부터 완벽한 사람은 없다고 하지만 나의 처음은 왜 그렇게 서툴렀던 걸까. 그렇지만 감사하게도 그런 내 옆에는 괜찮다며 다독여준 사람들이 참 많았다. 주머니는 가벼웠을지언정 마음만큼은 누구보다 풍요로웠던 나의 20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