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사로운 햇살 아래 갓 스무 살이 된 풋내 나는 친구들과 삼삼오오 모여 앉은 강의실에는 끊이지 않는 수다 삼매경 사이사이로 싱그러운 봄바람이 스며들었다.
그렇게 전국에서 가장 덥다는 지역에서 쨍한 여름을 나고, 농염하게 물든 새빨간 단풍잎이 하나 둘 떨어져 지저분해진 거리에 어느덧 가을이 왔구나를 직감했다. 옷깃 사이로 스치는 바람의 세기가 점차 강해지면서 옷자락을 여미다 보니 어느새 내 주변에는 새하얀 눈이 소복하게 쌓여있었다.
'CRUISE'라는영문이니셜이 큼지막하게 새겨진 남색 과잠을 입고 학교를 다닐 때가 엊그제 같은데, 지난 1년이라는 시간이 무색하게 어느덧 햇병아리 새내기 타이틀을 품에서 떼어낸 우리였다.
여전히 많은 이들에게 크루즈는 친숙한 범주에 포함되지 않고 있다. 그러나 놀랍게도 몇 년 전까지만 해도 크루즈가 무엇인지 조차 모르는 사람들이 더 많았다는 사실. 크루즈에 넘치는 사랑을 갖고 있는 나 또한 열아홉에 크루즈를 처음 알게 되었다. 크루즈 여행 문화, 그리고 제대로 된 국적선 하나 없는 우리나라에서 어쩌면 이것은 당연한 인식으로 자리하고 있을 수밖에 없겠다.
사회적 분위기가 이렇다 보니 본과생으로써 해야 할 일, 그리고 앞으로 헤쳐나가야 할 길을 생각하다 보면 때로는 막막하기도 했다. 설상가상으로 2014년 4월에는 전 국민이 애도했던 세월호 대참사, 이로 인해 크루즈산업의 앞길은 더욱더 까마득해져 가는 듯 보였다.
관광업계의블루오션이라 불리는 크루즈승무원을 꿈꾸며 입학한 친구들이 해가 바뀌자 본격적으로 하나둘씩 각자의 길을 찾아 나서기 시작했다.
우리 학과는 크루즈를 제외하고도 관광 과정을 함께 다루기에 비교적 다양한 방향으로 꿈을 키워나갈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그렇다 보니 주위를 둘러보면 꼭 크루즈 승무원이 되고 싶어 하는 친구들만 존재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이렇게나 많은 친구들이 진로 결정에 있어 나와 다른 길을 걷게 될 줄은 미처 알지 못해서인지 조금은 의아했다.
좀 더 많은 친구들이 나와 같은 꿈을 꾸며 함께 나아가길 내심 바랬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았던 것이다. 진중하게 진로를 고민하는 친구, 중도에 포기하는 친구, 어쩔 수 없는 상황에 현실과 타협하는 친구, 이보다 더 하고픈 꿈을 찾은 친구 등 그 이유는 제각각이었다.
감사하게도 크루즈승무원을 꿈꾸는 나를 포함한 몇몇 친구들은 이 분야를 개척하기 위해 끊임없이 힘써주셨던 분들 덕분으로 마침내 동남아시아최대선사인 스타크루즈(Star Cruises)와의 면접 기회를 가질 수 있게 되었다.
그토록 기다렸던 해외 선사와의 면접이 코 앞에 다가오게 된 것이다. 떨리기도 하고 설레기도 하는 알 수 없는 감정에 사로잡혀 우왕좌왕하는 내 모습에 절로 웃음보가 터져버렸다.
선원의길을 걷게 될 내 모습을 상상하다 이내 골똘한 생각에 잠겼다. 무슨 일이 있어도 끝까지 해 내고야 말겠다는 굳은 의지는 복잡 미묘한 감정선 위에서 단 하나의 안식처를 마련해 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