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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이 Feb 24. 2021

우리 크루즈 구경하러 올래?

육지인들의 크루즈 방선 이야기

일본 나가사키에서 승선한지도 어언 한 달이 흐르던 시점. 마제스틱 프린세스호는 아시아 크루징으로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하루를 보내고 있었다.


맡은 업무가 익숙해져 갈수록 기항지 관광의 욕구 또한 자연스레 증가했다. 아이터너리(=itinerary; 크루징 일정표)를 들여다보니 조금은 낯선 일본의 지명들이 눈에 띄었다. 일반 사람들은 잘 알지 못하는 숨겨진 보석 같은 포트들을 기항한다는 사실에 나의 기대는 한껏 솟아올랐다. 게다가 조만간 성대하게 진행될 차이니즈 뉴 이어 행사로 크루 멤버들 모두가 분주히 움직였는데, 이렇게 그녀는 내게 한동안 흥분이 가라앉을 틈을 주지 않았다.


그렇게 일과 여행을 병행하는 매력적인 크루즈 생활에 즐거움을 느끼던 생활이 계속되는 와중 드디어 마제스틱 프린세스호가 부산항에 입항하는 날짜가 코 앞으로 다가왔다.



크루즈승무원이 된 이래로 부산을 기항하게 되는 건 내게 있어서도 역사적인 순간이었다. 일정표에서 'Busan'이 새겨진 네모 칸에 다다를수록 행복감에 온 몸이 부르르 하고 떨려왔다. 여태껏 중국, 베트남 등을 기항할 때면 그 틈바구니 사이에서 부러움의 눈빛으로 그들을 바라보곤 했었는데, 이번에는 모두로부터 내가 그 부러움을 사게 된 것이다.


CIQ의 직원들과 택시기사 아저씨가 한국인이라는 사실, 한국 음식들로 가득한 자갈치시장, 우리말 간판으로 쓰인 각양각색의 상점들이 줄지은 남포동 거리 등. 익숙한 공간으로부터 받게 될 안정감이 머지않았다는 사실에 한동안 밤 잠을 설치기 일쑤였다.






부산 입항을 열흘 앞두고 나는 카지노 매니저 스티브를 찾아갔다. 그것은 다름 아닌 가족과 친구를 크루즈로 초대하는 데에 있어 선사 측 동의를 얻기 위해서였다.


호텔 부서에서는 스티브에게 내가 초대하고자 하는 지인들의 여권번호, 그리고 나와의 관계를 묻는 이메일을 보내왔고, 나는 그에 따른 폼을 꼼꼼하게 작성하여 기안 내에 제출하였다.




우와, 신기하다!


14만 톤의 마제스틱 프린세스호를 처음 본 그들이 내뱉은 말. 내가 오래전부터 누누이 말했던 터라 그 크기는 대략적으로 예감했었다고 한다. 하지만 실물로 그녀를 접하는 순간, '엄청 비싸겠다', '진짜 크고 높다' 등의 심플한 감탄사가 연발되며 자동반사적으로 입이 떠억- 벌어졌다는 비하인드 스토리를 전해 들으며 얼마나 웃었는지 모른다.


나는 가이드를 자처하며 마제스틱 프린세스호의 선내 곳곳을 소개했다. 극장, 카지노, 가라오케, 메인 로비, 오픈덱, 마작룸, 샵, 카페테리아, 레스토랑, 캐빈, 짐, 각종 편의시설 등. 이 모든 공간을 소개하려니 상당한 시간이 소요되었다.


마치 미로 같다며 길을 헤멜 것 같아하는 그들의 불안한 눈동자를 바라보고 있자니 그 시절의 내 모습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다.

'나도 처음엔 딱 저랬었는데'


그 후에는 호라이즌 코트(뷔페)에서 간단하게 점심을 먹고, 메인 로비로 내려와 커피와 디저트를 즐기며 담소를 나누었다.



부모님은 내가 일하고 있는 공간을 두 눈으로 확인한 후에야 비로소 안도하시는 듯했고, 친구는 멋있는 직업인 것 같다며 나를 열렬히 치켜세워줬다. 그동안 알게 모르게 그들의 뇌리 속에 심어져 있던 크루즈에 대한 어떤 편견이 이 순간을 통해 조금은 사그라든 것만 같아 내심 기분이 좋아졌다.




또 다른 친구는 개인적인 사정으로 지난번 부산 일정을 함께하지 못하여 일본 오키나와에서 초대하기로 했다. 크루즈에서 근무를 하며 의도치 않게 연락의 빈도가 들쑥날쑥해도 언제나 반갑게 맞이해주고 나를 생각해주는 친구라 꼭 초대하고 싶었는데, 마침 이렇게 기회가 된 것이다.


처음이 아니라 수월하게 폼을 작성하고 일사천리로 승인까지 받은 나는 오매불망 그 날만을 기다려왔었다. 나를 보기 위해 오키나와 여행을 자처한 친구의 마음에 감동받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조금 아쉬웠던 건 친구의 어머니께서 바쁘신 이유로 함께하지 못했다는 점. 함께했더라면 의미 있는 추억이 되었을 텐데, 지금까지도 두고두고 마음이 쓰인다.


오키나와 포트는 근무가 없고 밤늦게 출항하는 일정 덕분에 선내 구경을 충분히 한 후 친구와 함께 다시 밖으로 나왔다. 여기까지 와 줘서 고맙다는 말과 함께 늘 그렇듯 우리는 시시콜콜한 이야기 보따리를 풀어놓았다. 시원한 맥주를 한 잔 기울이며 깊어져만 가는 오키나와 거리에서 평범한 저녁을 조금 색다르게 추억해보았다.






이번 기회로 가족과 친한 친구들을 크루즈에 초대할 수 있어 매우 기뻤다. 크루즈가 무엇인지 나로 인해 알게 된 그들의 눈동자에는 신기함과 놀라움이 가득했는데, 그 눈동자를 바라보고 있자니 뭉클한 감정이 일렁이며 문득 저 눈빛을 지켜주고 싶다는 마음이 싹트기 시작했다.


방선의 경험도 좋지만 솔직한 마음으로는 크루즈 여행을 시켜주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는데, 그러기엔 내 위치가 아직은 그에 걸맞지 않았다.



뭐 어떤가, 처음부터 완벽하면 재미없잖아?


차근차근 한 단계씩 올라가다 보면 언젠가 내가 조금 더 성장하였을 때 기회는 반드시 올 테고, 그때 보란 듯이 누릴 수 있게 해 줄거니 너무 어렵게 생각 말자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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