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 크루즈에 입사한 후에도 나에게 있어 언어의 장벽은 쉽사리 깨부술 수 없는 미지의 영역이었다.
영어를 사용하는 환경에 노출되기만 하면 금세 영어실력이 일취월장하게 향상될 줄만 알았던 나의 어렸던 생각이었을까. 그것을 자각했을 땐 나의 오만함을 꾸짖을 수밖에 없었다. 어부지리로 간신히 영어로 의사소통을 해오던 나는 어느 날 또 다른 문제에 직면하게 되었다.
스타 크루즈에 입사하기 전, 그러니까 평범한 대학생 신분이었던 나는 좁았던 시야 탓이었을까? 영어를 사용하는 문화권에 가면 모두가 '영어'라는 언어로만 의사소통을 하는 줄 알고 있었다.
하지만 스타 크루즈에 막 입사하였을 때 그 환상은 와장창창 하고 보기 좋게 으스러졌다. 모두가 선내 공용어는 영어라며 누누이 말하고 다니지만 실제로 내 귀에 들려오는 건, 중국, 필리핀, 베트남, 인도 등 각양각색 동남아시아 친구들의 모국어였기 때문이다. 그중에서도 중국어의 비율은 가히 압도적이었다.
이렇게 중화권 승객을 주 고객으로 삼고 있는 스타 크루즈의 승무원은 차이니즈의 비율이 상당히 높다. 총승무원의 절반 이상이 중국인이라 하면 감이 오려나? 승선 첫날 나는 이곳이 중국이라고 해도 무방한 환경이 조성되어 있는 것을 보았는데, 정말이지 깜짝 놀라지 않을 수가 없었다. 더욱이 그 규모의 크기를 막론하고 중국인 무리에서 영어를 듣기란 하늘의 별 따기만큼 어려웠던 기억이 난다.
카니발로 이직을 한 후에도 상황은 나아졌을 뿐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첫 컨트랙이었던 볼렌담호에서는 알래스카 노선으로 인해 영어를 사용하는 환경이 주어져 큰 문제가 없었지만, 두 번째 컨트랙인 마제스틱 프린세스호에서는 크루즈가 상하이, 타이완 시즌을 반복하며 중화권 승객의 비율이 급증했고, 그리하여 사소한 부분에서 크고 작은 어려움에 직면하게 되었다.
대부분의 중화권 승객들이 영어를 구사함에 있어 어려움을 겪는다는 이유로 당시 마제스틱 프린세스호는 그들의 니즈를 맞추기 위해 선내 곳곳을 그들이 원하는 모습으로 탈바꿈시켰다. 디자인, 분위기, 스타일, 위락시설, 상품, 메뉴, 프로그램 등 크루즈 선내의 전반적인 요소들이 통째로 뒤바뀌었다.
이에 따라 크루 멤버들 또한 이와 관련 교육을 받기도 하고 중국어를 사용해 서비스를 제공하는 등 부단한 노력을 하였다. 선사는 승객들이 크루징을 하는 동안 불편을 호소하는 것을 최소한으로 낮추고자 심혈의 노력을 기울였던 걸로 나 역시 기억하고 있다.
스타 크루즈 근무경력의 영향으로 볼렌담호에서도 중국어에 흥미를 느끼며 꾸준히 학습을 유지하긴 했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그와는 조금 다른 상황이었던 것이다. 재미와 흥미보다는 생존을 위해 중국어가 꼭 필요하게 되었다는 것.
이제 겨우 영어라는 언어에 익숙해졌는데, 이제 겨우 그럭저럭 맡은 업무를 진행하는 데에 큰 무리가 없는 수준이 되어 한 단계 발돋움할 준비가 되었는데, 난데없이 중국어라니. 중국어의 중요성을 크게 깨닫지 못한 채 이직을 준비했던 그 시절의 나에게로 돌아가 꿀밤을 한방 먹여주고픈 심정이었다.
그래도 중국어를 한 마디도 하지 못하는 영미권 친구들을 보며 아직 늦지 않았다 생각하며 나는 '니 하오, 웨이션머, 씨에씨에, 니츠파라마, 워스한궈런' 등 기본적인 어휘부터 입에 붙이는 연습을 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