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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이 May 27. 2021

그녀가 변신하는 동안 2

크루즈승무원이 드라이닥을 즐기는 방법

새로이 페인트 칠한 다이아몬드 프린세스호

드라이닥 업무는 생각 이상으로 쉬웠다. 키 러너의 업무는 말 그대로 컨트락터들이 캐빈을 오가며 수리를 할 때마다 그들을 감시하는 것이었다.


한 가지 단점은 드라이닥 시즌에는 한 번씩 선내 에어컨이 가동되지 않는다는 것인데, 그 말은 즉슨 찌는 듯한 더위를 고스란히 느껴야만 하는 것이었다. 다행히 이 시즌에는 선내 유니폼을 챙겨 입을 필요가 없어 부담은 덜했지만.



키 러너들은 지정 구역에서만 머물러야 하며 교대를 하는 동료가 오지 않은 이상은 그 자리를 비워선 안되었다. 이따금 문제가 발생하면 매니지먼트 측에게 보고 후 가능한 선에서 그들의 요구사항을 해결해주었고, 그렇지 않은 시간에는 각자 핸드폰으로 웹툰을 보거나 전자책을 읽으며 시간을 보냈다.


매일 시끄러운 슬롯머신 소리와 플레이어들의 웃음소리가 가득한 곳에서 대화를 하며 근무시간을 보내다 갑자기 끝이 보이지 않는 복도 한가운데에서 가만히 쭈그려 앉아있자니, 이것 참 여간 어색한 상황이 아니었다. 때때로 핸드폰 사용이 지루하거나 시간이 무료하다고 느껴질 때면 나는 자주 공상에 빠지곤 했다.






이러한 움직임들이 쌓이고 쌓여 마침내 근무 종료시간이 다가오면 너나 할거 없이 캐빈으로 돌아가 서둘러 밖으로 나갈 채비를 하였다.


싱가포르 도심으로 나가기 위해서는 드라이닥 장소를 벗어나 'Sun Plaza'라는 곳까지 이동했어야 하는데, 다행히 셔틀버스가 운행하였고 크루 멤버들은 무료로 이용이 가능했다. 그리 멀지는 않은 거리라 기분 좋은 바람이 살랑살랑 불어올 때면 함께 외출한 친구들과 도란도란 수다를 떨며 걸어갈 수도 있었다.



우리는 싱가포르 전쟁기념공원을 둘러보고 오랜만에 그리웠던 두끼 떡볶이를 먹었는데, 오랜만의 한국음식이라는 기쁨을 누리기도 잠시 지체하지 않고 첫 번째 목적지를 향해 달려갔다. 어렵사리 도착한 그곳은 바로 싱가포르의 야경을 감상할 수 있는 랜드마크인 싱가포르 플라이어(Singapore Flyer)였다.


깨끗하고 고요한 거리, 저녁 운동을 위해 뜀박질하는 한 시민의 발소리, 옷 가락 사이사이를 시원히 통과하는 선선한 바람. 이 모든 조합이 완벽했던 싱가포르의 밤이 고스란히 전해지는 순간이었다.



다음 날, 우리는 셈바왕 정류장(Sembawang Station)에서 싱가포르 차이나타운 헤리티지 센터로 향했다. 곧 다가올 차이니즈 뉴 이어 준비에 분주해 보이던 이곳 현지인들의 모습. 탄종 파가 거리, 푸라마 시티 센터 등 높고 웅장하면서 조금은 독특한 건물 외관을 감상하며 다음 목적지인 클락 키로 걸음을 재촉했다.



싱가포르의 화려한 밤 문화를 즐길 수 있는 클락 키. 스타 크루즈 승선 당시 이곳에서 밤을 지새우던 기억이 난다. 일정상 이번에는 오래 머무르지 못했지만 아직 주어진 시간은 많으니까 아쉬워 말기로 했다.



싱가포르의 풍부한 유산과 보존된 건축 양식 등을 느낄 수 있는 부기스 스트리트에서 잠시 머무르며 목을 축일 음료를 구매하였다.


이대로 돌아가기엔 왠지 아쉬워 싱가포르에서 유럽 분위기를 물씬 느낄 수 있는 차임스를 거쳐가기로 했는데 생각보다 고즈넉하고 한적한 분위기에 마음이 사로잡혔다. 야외, 그것도 역사적인 건물 복합체에 이러한 환경을 조성한 정부 그리고 그 공간을 아름답게 유지하는 시민의식이 돋보였던 하루.



다음 날 역시 배에 머무르지 않고 밖으로 향했지만 이날은 체력 회복을 위해 선 플라자에서 간단하게 요기를 때우기로 했다. 해가 저물고 어둠이 내려 더위도 한풀 꺾였겠다 우리는 드라이닥 장소까지 산들바람을 느끼며 자박자박 걸어가기로 결정했다.



햇볕이 따가워 땀이 비 오듯이 왔던 날이자 단 시간에 많은 장소를 방문하는 일정으로 굉장히 바빴던 하루. 리틀 인디아를 시작으로 아랍 스트리트, 하지래인, 술탄모스크를 차례로 방문했다. 이 날을 위해 며칠 전부터 체력을 비축해뒀다.


예쁜 건물과 건축물, 그리고 조형물들이 참 다양한 거리였지만 길을 거닐며 한 가지 아쉽게 느껴졌던 건 주위에 수많은 자동차가 둘러싸고 있었다는 사실. 구경하기에 불편한 것은 물론이거니와 그것들이 뿜어내는 고유의 분위기를 온전히 느끼지 못했다는 점이 자꾸 곱씹힌다.



선텍시티(Suntec city)에서 오른손을 분수 물에 담그고 시계방향으로 3바퀴 돌면 부자가 된다는 속설이 있는 부의 분수(Fountain of Wealth)를 찾아 다른 관광객들처럼 빙글빙글 돌아보았다. 그 후 허기진 배를 달래기 위해 싱가포르에서 유명하다는 카야 토스트를 맛보고 다음 장소로 이동하기 위해 이곳과는 서둘러 작별을 고했다.



지난번에는 낮에만 잠깐 거쳐갔던 탓에 감칠맛 톡톡하게 났던 클락 키. 드디어 여유롭게 야경을 즐길 수 있게 되었다. 시원한 바람이 불어오는 핫스팟에 자리를 하고 맥주를 한 잔 들이켰다. 밤은 깊어갔지만 여전히 식지 않은 열기를 띄던 이곳의 사람들. 콧노래가 절로 흥얼거려졌다.



마침내 고대하던 4일 연속 오프가 주어졌다. 본격적으로 싱가포르를 즐겨볼 차례가 온 것이다.


명불허전 쇼핑의 메카인 오차드 거리를 거닐다 오랜만에 코리안 마피아들과 뉴턴 푸드 센터에서 저녁식사를 함께하기로 했다. 그 유명하다던 칠리 크랩과 망고주스를 드디어 먹어봤는데, 거품끼가 약간 있긴 했으나 정말 맛있긴 맛있었다.



드라이닥에도 간혹 크루 투어가 진행되는데 풀 데이 오프를 제공받은 나는 이 기회를 놓칠 수 없지 하며 냉큼 투어를 예약하였다. 저렴한 가격으로 모두를 감동시켰던 나이트 사파리 투어. 깜깜하고 어두워서  실제로는 기대했던 것에 미치지 못했지만 신선한 경험이 되었던 건 사실이다.



예전부터 꼭 한번 와보고 싶었던 곳이지 싱가포르에 방문한다면 꼭 가보아야 할 곳, 바로 마리나 베이 샌즈 호텔. 나도 이번 기회에 거금을 들여 입성했다.


호텔 룸 내부는 고급지고 세련됐다는 느낌보다는 무난하게 편안하고 안락한 느낌을 주었는데, 그와 반대로 57층 인피니트 풀(수영장)의 뷰는 끝내주게 아름다웠다. 노을이 질듯 말듯한 하늘이 일렁이는 물결에 반사되었는데 그것은 가히 혼자 보기 아까울 만큼 웅장한 경관을 자랑했다.



이윽고 날이 저물고 우리는 세계에서 가장 큰 기둥 없는 온실인 가든즈 바이 더 베이를 즐기기 위해 마리나 베이의 물가로 향했다. 이곳 역시 스타 크루즈 근무 시절 오벌나잇(=overnight; 한 도시에 정박하여 1박 하는 경우) 스케줄 덕분에 친구들과 함께 방문해 쇼를 감상했었는데 오랜만에 그 반짝임을 두 눈에 담을 수 있게 되어 감회가 새로웠다.


이대로 호텔을 떠나기엔 도저히 아쉬워 큰 맘먹고 인피니티 풀로 올라가 보았으나 밤공기가 너무 차가워 한 시간도 채 머물지 못하고 내려오게 되었다.


그 시간, 친구의 연락을 받은 나는 무작정 구글맵을 켜고 거리를 나섰다. 그들은 싱가포르에서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한 '1-Altitude'라는 곳에 있었는데 이 루프탑 바는 자그마치 63층의 고층 빌딩에 위치해있는 곳이다. 입장료는 $45로 금액대가 있는 편이나 싱가포르 야경을 한눈에 감상할 수 있어 많이들 찾는다고 하던데, 친구의 버프 덕분에 감사하게도 우리는 무료입장으로 남들보다 두 배로 더 신나게 즐길 수 있었다.



막바지에 다다른 드라이닥 스케줄. 싱가포르에서 머물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생각에 마음이 조급해졌다. 어제 밤늦은 시간까지 먹고 마시고 즐기는 바람에 단 세 시간의 숙면이 허용되었던 것. 짧지만 달콤한 숙면을 취한 나는 가뿐한 마음으로 머라이언 파크로 걸음을 뗐다.



머라이언 파크에서 인증사진을 찍은 우리는 그 길로 오늘의 목적지인 싱가포르 유니버셜을 향해 속도를 내었다. 이곳 역시 스타 크루즈 근무 시절 방문한 경험이 있었으나 당시에는 밖에서만 멀뚱멀뚱 지켜볼 뿐 입장은 먼 나라의 이야기 었는데, 정신을 차려보니 유니버셜의 매력에 흠뻑 취해 좀처럼 입꼬리가 내려가질 않아 히죽대고 있었다. 이곳을 언제 다시 또 오게 될까 걱정했던 과거가 무색하리만큼 내부가 붐비지 않아 웬만한 놀이기구는 다 정복할 수 있어 기뻤던 순간.



해가 지기 전에 한 곳이라도 더 방문하고자 우리는 센토사 섬으로 향했다. 실로소 비치는 예전에 가본 경험이 있어 이번에는 팔라완 비치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한적하고 고요한 분위기 그리고 다정한 연인들과 가족들이 풍겨내는 그림 같은 분위기가 마음을 몽글몽글하게 만들어 주었다.



드라이닥 풀 데이 오프의 공식적인 마지막 목적지로 리버 크루즈를 탑승하기로 했다. 워터비에서 리버크루즈 티켓을 구매한 우리는 흐르는 물결에 몸을 맡기며 천천히 싱가포르 밤 풍경을 속속히 눈에 담았다. 리버크루즈의 피날레인 레이저쇼가 시작되니 배의 시동과 전원이 전부 꺼졌는데, 이 시간 동안 나는 저 멀리 번져나가는 빛의 끝을 쫒으며 싱가포르에서 느꼈던 감정과 기분을 차례로 회상하는 시간을 가졌나.



마리나 베이 샌즈 카지노를 방문하고 뉴턴 푸드 센터에서 군것질을 마친 나는 차마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을 일으켰다. 이제는 돌아가야 할 시간. 새로이 변신한 다이아몬드 프린세스호로 무사히 돌아온 우리는 그렇게 드라이닥이 가져다주는 찰나의 행복을 가슴 한 켠에 뭍어두었다.






크루즈승무원이 아니었다면, 계약기간 중 드라이닥을 진행되지 않았다면 쉽사리 누릴 수 없는 진귀한 경험. 2주 동안 싱가포르에 머물면서 제대로 된 관광 및 여행을 할 기회가 주어져 너무 감사했다. 지금부터는 새롭게 리뉴얼한 공간 속에서 마음을 다잡고 다시금 힘을 내야 할 차례이다.

곧 마주할 시즌 근무도 프로페셔널하게 하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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